새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지하다. 사실 우리 옛그림에 흔히 나오는 새가 실은 두루미가 아니라 황새라고 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워낙 거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그냥 흘려들었다. 아직도 두루미가 황새라고 잘못 알려진 것인지 황새가 두루미로 잘못 알려진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면 말 다했지. 방금 읽었으므로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자면 두루미는 뒷발가락이 짧고 위쪽에 있어서 나뭇가지에 앉을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즉 소나무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것은 두루미가 아니라 황새라는 얘기다. 지금은 귀하게만 생각되는 황새가 원래는 텃새였단다. 이렇듯 이 책은 사라져가는 황새에 애정을 갖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면서 쓴 것이다. 원래 작가는 사육사가 되고 싶었지만 재일동포라는 제약 때문에 꿈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동물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이미 코끼리 이야기를 그린 <사쿠라 이야기>를 통해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김황이라는 이름이, 친하게 지냈지만 이념 때문에 선뜻 다가설 수 없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즉 김황은 바로 그 친구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사라져가는 야생 황새를 복원하고 인간이 복원한 황새를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노력을 그린 것과 동시에 한일간에 황새를 교류한 자취를 그린 동화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따오기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황새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육사가 황새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관심을 유도해 달라고 슬쩍 흘린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이런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작가가 워낙 동물에 관심이 많고 황새를 좋아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부리가 잘린 황새 코우짱을 아이들이 맡아서 돌봐주었지만 결국은 보호소로 가게된 사연을 줄곧 따라간다. 한국 황새를 보기 위해 부모님과 심한 갈등 끝에 국적까지 바꿔야 했던 작가의 눈물나는 노력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지금도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과는 그런 걸림돌이 있는 것이다. 새들은 그런 것 가리지 않고 북한도 지나고 남한도 지나서 일본으로 가는데 말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일본에서 건너 온 황새가 많이 번식해서 북한으로도 퍼져가길 바라는 것일 게다. 논픽션으로써 작가가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가끔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살았던 힘든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두 나라에서 책이 나오고 있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조금은 위로받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