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둘 하나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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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려 애쓴다. 공부도 스스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시험기간이라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딱 한 가지에서 부딪친다. 바로 친구문제. 특히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부모보다는 친구에게 더 마음을 열고 오로지 친구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괜한 감정싸움을 하곤 한다.

이 책을 딸이 먼저 보았다. 나는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어땠냐고 물으니 '딱 내 얘기네.'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읽어 보니 정말 딸 얘기다. 한창 모든 촛점이 친구에게만 향해 있는 나이의 여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니 딸의 말이 정확한 셈이다.

세 편이 들어있는데 두 편은 정확히 주제가 모아진다. 모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한 친구만 그러질 않아서 오히려 자신이 그 친구에게 악착같이 다가갔으나 결국 자기 기준에 따라 친구를 내치는 이야기 <수호천사>. 어찌보면 친구란 생각을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건만 자혜와 선우 사이에는 그 기본적인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위태위태 한 것이 바로 일방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혜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했고 자신만 이해받으려고 했으니까. 상대를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선우의 상황과 마음을 읽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긴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남 보다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니 어찌보면 자혜의 모습이 바로 현재의 대다수 아이들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지막에 선우를 이해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약간 억지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 <셋 둘 하나>는 정말 요즘 아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자기 기준에 의해 친구를 사귀고 모두 자기와 같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지만 정작 그들은 서로 자신만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특히 외톨이 친구를 자신들의 무리로 받아들였을 때는 더욱 더. 셋이 하나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넷이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셋과 하나였고 더 알고 보니 하나 하나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그 시절을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작가이기에 가능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읽으며 모든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이유는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리고 두려운 두 번째 이야기. 만약 나에게 이 또래의 아이가 없다면 객관적이며 모범적인 대답을 해 줬을 것이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으니 그냥 지켜봐 줘라라고. 그러나 이미 같은 또래 딸이 있는 엄마로서 그처럼 냉혹한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회'에 합류하면 안될까.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아주 뛰어나지 않을 바에는 평범한 것이 최선인데. 이렇듯 효주 아빠가 하는 말이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이게 바로 '사회화'된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란 것일까. 그나저나 내 딸도 만만찮은 성격인데 이걸 읽고 따라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는 별별 걱정을 다한다.

그나저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어떤 판단을 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지만 초등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비록 나이는 한 두 살 차이라지만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고 취급하는 문제도 다르다. 이래서 다 '때'가 있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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