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는다는 것 - 하종강의 중년일기
하종강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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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과 심한 의견대립으로 늦게까지 입씨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이 내게 항상 그렇게 불평 불만만 이야기하면 뭐하냐며(주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의미한다.) 남의 아픈 곳을 찌른다. 그렇잖아도 이렇게 맨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자괴감에 빠져 있던 차에 그런 소릴 들은 것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NGO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볼까 생각중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그건 절대 반대란다. 그러면서 바로 입씨름이 끝나버렸다. 아마 논쟁이 계속된다면 내가 구체적인 결단을 내릴까 겁내한 것이리라. 누군가가 나서 주었으면 하지만 나와 관계 있는 사람들이 그런 궂은 일을 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심보다. 그런 걸로 따지자면 '난 안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오로지 한 길로만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짝 엿보았기에 저자가 하는 일련의 운동이 내겐 참 낯설다. 아니 현재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그것도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의 처지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정작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말로는 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고, 그런 공약을 내건 후보가 지지 받기를 원하지만 힘겹게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하러'라는 말부터 나온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그만 둔 사람으로부터 '아직도 그 일 하냐.'라는 핀잔을 듣고 화가 났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실은 나도 속으로 그 힘든 일을 왜 자초해서 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기에... 

거기에는 대학 총학생회장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새내기일 때는 학회장도 대단해 보이고 단과대학생회장도 대단해 보였다. 물론 총학생회장은 더 했을 것이고. 하지만 과 선배가 총학생회장이었기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노트를 빌려줬기에 다른 친구들보다는 이야기할 기회가 좀 더 많았다), 순수하게 학교를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기 보다 그 후에 있을 무언가를 위해서 내지는 경력의 일환으로 총학생회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무척 실망했었다. 그 후 정치권을 보더라도 총학생회장들이 줄줄이 정치권으로 방향을 잡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아, 세상은 그런 것이구나.

그러니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일종의 색안경을 끼고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듯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하종강의 삶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틈만 나면 가족과 여행 다니는 나에 비해 변변한 여름 휴가 한번 못 가는 사람도 있구나. 그것도 남을 위한 일 때문에. 물론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직업이라지만 내 남편이 그런 일을 한다면... 글쎄,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래서 난 아직도 멀었나 보다. 위 글을 보면 마치 책에서 노동운동에 대해 거창하게 썼거나 꼭 노동운동을 하라고 설득하는 줄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할 뿐이다. 신변잡기적인 일상을. 그러나 내겐 그 소소한 일상조차 대단하게 느껴졌다. 차원이 다른 의식체계를 가진 사람의 삶 같다고나 할까. 나(와 남편) 같은 속물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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