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뒤주 사계절 아동문고 67
이준호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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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 보고는 할아버지가 옛날의 추억 때문에 뒤주를 버리면 안 된다고 하고 다른 가족들은 버리자고 해서 벌어지는 해프닝일 거라고 생각했다. 항상 그런 식의 세대 간 갈등이 있기에...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야말로 착각. 그리고 또 읽으면서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시 추측한 것들이 보기좋게 빗나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 그러나 그 '전형적'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약간 어긋남이 있다. 우선 뒤주로 들어가면 거기서 펼쳐지는 세상은 판타지 세계로써 현실 세계의 시간과는 다르다는 것, 즉 판타지 세계에서 아무리 오래 머물러 있어도 현실 세계의 시간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개의 판타지 소설에서 현재의 인물이 판타지 세계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고 또 개입해서도 안 된다는 점인데 반해 여기서는 약간의 개입을 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것도 그렇게 예정되어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갸우뚱하면서도 수긍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현실의 인물이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면 그저 관찰자의 입장으로 다칠 염려도 없고 판타지 세계의 누군가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없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반면 여기서는 얼마든지 판타지 세계의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고 다칠 수도 있다는 설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읽으면서 더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여타 대부분의 판타지였다면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데...라는 여유가 있었겠지만 이 책은 그런 여유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실수로 인해 형이 잡혀갔다는 죄책감으로 여생을 살아가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손자 민제. 아니 나중에는 민제가 할아버지의 일을 대신 처리한다. 그래서 둘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처한 나이는 같은 것이 아닐까. 현실에서의 할아버지와 민제가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면 민제가 할아버지의 역을 하는 셈이다. 당시 열 두살이었던 할아버지로... 

각 시간에 따른 문이 따로 있다는 설정이 제법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새벽 두 시 오십 분을 기다렸다가 뒤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의 시간이 과거 시간의 연속성과는 또 별개다. 즉 세 시에 들어간다고 해서 십 분 전의 시간과 일정한 차이가 있는 시간은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할아버지는 평생을 자신이 잘못한 시간을 찾아 헤맸고, 민제는 우연히 시간대를 찾은 것이겠지. 

판타지에서 민제가 할아버지의 형을 무사히 도망가게 한 후에 현실에서 북에 있는 큰할아버지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짐으로써 더 이상 뒤주가 과거로 연결되지는 않는단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짐으로써 말도 안 되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든다. 우리 아동문학에도 이제 새로운 판타지 세계가 열리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외국의 판타지를 보며 마냥 부러워만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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