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담긴 찬장 좋은책어린이문고 7
캐시 케이서 지음, 김난령 옮김, 원유미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상하게도 순수한 허구보다는 진실에 입각한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고 공감되곤 한다. 아마 있을 수 있는 일을 상상해서 쓰는 일보다 겪었던 일이라고 하면 그 상황에 나를 대입시키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래서 이 책도 어찌보면 문학성이니 작품성이니 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실제 겪었던 이야기라는 것 때문에 감성적인 면은 훨씬 많은 자극을 주었다.

가비 할머니가 손주인 베라와 폴에게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읽는 동안 안타깝고 불쌍하고 화도 나게 한다. 이미 알려진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제3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생생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이야기하는 당사자가 현재 가비 할머니로 그 학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기에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담담하고 순수하게 가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지나치게 무겁거나 침울한 분위기가 느껴지진 않는다. 그 또래의 여자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친구와의 우정에 대한 갈등이나 부모에게 느끼는 사랑 등이 더 부각되고 있어서 오히려 성장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가비 할머니는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지도 않고 감정에 휩싸이지도 않으면서 침착하게 이야기한다. 부당한 것이 있어도 그것은 비켜간다. 오히려 읽는 내가 더 화가 났다.

학교도 다니다 말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엄마와 농장 일을 하고, 군인의 눈을 피해 찬장에 숨었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기억을 떠올리며 여전히 그 찬장을 소중하게 간직한 가비 할머니. 그 이야기를 꼼짝 않고 듣고 있는 베라와 폴. 가비 할머니는 나치의 잔혹한 만행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이 어떻게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따스하고 끝없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마 그래서 이 이야기가 씁쓸하고 아픈 추억을 이야기함에도 온기가 도는 이유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한 일 보다는 당한 일을 더 깊이 오래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나치에 의해 억울한 핍박과 죽임을 당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도 여전히 이야기 되고 있는 것 아닐까. 하긴 일본도 자신들이 저지른 잔악한 행위에 대해서는 입 꾹 다물고 있다가도 원폭피해에 대한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지금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고통만을 생각하고 현재 다른 종족에게 행하고 있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할까가 문득 궁금해진다. 이 책의 주제와 소재와도 전혀 상관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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