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그네쥐 이야기 8세에서 88세까지 읽는 철학 동화 시리즈 3
데이비드 허친스 지음, 박영욱 옮김, 바비 곰버트 그림 / 바다어린이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은 어렵다. 사상가들에 대한 것들도 어렵고 내 생활을 철학과 결부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점점 철학이라는 분야는 삶에 있어 꼭 필요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막연히 전문가나 생각하는 것이라고 치부하던 것에 서서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지내던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아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책들을 접하게 한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도 어려워한다. 아직 자신의 생활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그걸 어른이 되고나서도 한참 후에 깨달은 사람도 있는데 이제 겨우 초등학생에게 무엇을 더 바랄까.

언젠가 논술 수업을 들으면서 레밍에 대한 비디오를 봤다. 주제가 철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여기서 접근하는 철학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쨌든 토론 수업보다 레밍 또는 나그네쥐라는 그들의 특성이 더 마음을 끌었었다. 게다가 그들이 바닷속으로 뛰어 드는 이유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고, 앞에서 뛰면 무작정 따라 달리는 쥐들의 특성과 계속 달리다 보면 거기에 쾌감을 느껴서 끝까지 달린다는 설이 있지만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단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그러려니 하는 무리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평범하게 받아들여 주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나그네쥐 점프 대축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점프를 하지만 에미는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찾아 다닌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단지 점프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왜 점프를 하면 안 되는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나그네쥐들의 특성이 그렇듯이 에미도 커갈수록 점프의 유혹을 받지만 끝내 그것을 물리치고 자신의 목표를 세워서 실행에 옮긴다. 또한 친구 레니는 에미와 이야기하면서 똑 떨어지는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그렇다. 다른 사람과 고민하고 대화를 하면 근사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될 것이지 방법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보다 적어도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왜'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벌써 몇 걸음은 디딘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이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레밍이라는 동물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그네쥐는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사실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지만 이런 책은 그런 과학이나 사실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레밍 딜레마>라는 책을 어린이가 읽을 수 있도록 한 이 책은 쉬운 듯 하면서도 역시나 철학 동화답게 곰곰 씹을수록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