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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라겠어요
임길택 지음, 정승희 그림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임길택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괜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주로 산골 마을이나 탄광 마을로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아이들에게 단순한 지식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 '생활'했던 선생님. 게다가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기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아이들 가슴 속에 남기고 이 땅을 떠나셨다. 어디 아이들에게만 남기셨을까. 너도나도 도시로 향하는 시기에도 오직 시골이나 외진 곳만 고집하셨던 그 분의 마음은 이 땅의 어린이 문학과 관련된 사람들 모두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지나치게 분석만 하며 보았던 기억 때문에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를 읽으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꼭 꼬집어 내야만 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괜히 괴롭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를 위한 시들을 보면 정말 공감가는 것들이 꽤 많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된 시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임길택 선생님의 시를 보면 그렇다. 시란 삶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건만 아직도 함축과 은유를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하는 경직된 사고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여기 있는 시를 보며 그 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는 자연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시 속에는 자연이 있고 아이들이 있으며 삶이 있다. 특히 작가의 시를 보면 아이들 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것은 꾸며낸 것이 아닌 그대로의 모습을 시라는 형식으로 빌려 썼을 뿐이다. 또한 예쁜 말로 치장하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가슴 아픈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불편을 토로하기도 한다. 은근슬쩍 비꼬기도 한다. 자기 집 일이라면 밤낮 가리지 않는 성순이 아버지가 마을 부역인 다리 놓는 일을 할 때는 담배만 피우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다리 놓던 날'. 그렇지만 독자는 성순이 아버지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도 사는 형편이 썩 나아지지 않는 사회를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나.
이 시집은 작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신문지 귀퉁이나 낡은 종이 쪼가리 등에 있는 시들을 컴퓨터에 옮겨 적은 것들을 작고한 지 10년이 된 올해 펴낸 것이란다. 어디를 가든 메모를하는 습관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시들인 셈이다. 다듬어 지지 않은 글들이라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생동감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여기 있는 시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줘야겠다. 비록 나를 닮아 시를 썩 좋아하진 않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