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큰 고구마
아카바 수에키치 지음, 양미화 옮김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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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니 아이들 유치원 다니던 때가 새삼 생각난다. 감자 심기, 고구마 심기에 이어 여름이나 가을이면 그것을 다시 거둬들이는 과정이 꼭 꼭 들어갔다. 더구나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은 따로 밭이 있어서 항상 그런 체험을 했었다. 물론 요즘은 초등학교 현장체험도 한 두번은 그런 곳으로 가서 고구마를 캐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농장에 돈을 내고 가는 것이므로 약간의 의미에 차이가 있는 셈이다. 아이가 캐 온 감자나 고구마는 어찌나 잘 챙기는지 평소에는 잘 안 먹던 감자라도 자기가 캐 온 것이라면 맛있다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또 감자나 고구마 캐러 가기로 한 날 비라도 오면 얼마나 실망을 하던지... 

여기에는 그러한 과정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마 현재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읽으면서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고구마 캐러 가기로 한 날 비가 와서 못 가는 바람에 아이들은 싫다고 비옷 입고라도 가자고 무작정 조른다. 그럴 때 선생님의 해결방법은? 바로 잘 달래는 방법 밖에 없다.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고구마는 점점 자랄 것이라고. 그래서 너희들이 캐러 가게 되는 다음주에는 엄청 많이 자랄 것이라고... 그 때부터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밭에 있는 고구마는 어디로 가고 상상 속의 고구마가 자라기 시작한다. 어디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게 한두 번인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고구마의 크기를 가늠하고 아주 커다란 종이에다 그리기 시작한다. 종이가 부족하다고 하면 어느새 다른 친구가 종이를 가져와서 이어준다. 선생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그리고 붙이고 색칠하고... 그림을 다 그려서 고구마를 보여주는 장면은... 진짜 아주 아주 큰 고구마다. 규격이 정해진 작은 책으로는 그렇게 큰 고구마를 표현할 길이 없어 결국 여러 장에 나누어 보여줄 수밖에 없다. 계속 넘어가는 책장을 보며 아이는 탄성을 지른다. 대개 이렇게 긴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할 때는 책장을 접어서 표현하는데 이렇게 장을 넘기며 크기를 가늠하는 맛도 꽤 괜찮다. 아이들은 이 커다란 고구마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안다. 이렇게 마음껏 그리고 상상한 아이들의 마지막 기분은 어떨까. 정말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지 않을까. 

글과 그림을 한 작가가 한 것이지만 뒤에 보면 또 다른 한 명이 소개되어 있다. 바로 유치원 교사로 이책의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이다. 직접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의 활동 보고서를 기초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나보다. 윤곽만 대충 그린 그림에 색이라고는 오로지 고구마 색만 있는 단순한 그림책. 두께가 상당해 보이지만 글이 얼마 없어서 두께에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고 나서 책을 덮을 때 쯤이면 아마 아이는 분명 다른 어느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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