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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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와 80년대 반공교육을 너무나 '잘' 받은 덕분에 북한이라는 곳은 보통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줄 알았다.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이 알게 모르게 남아 있다. 얼마 전에 대동강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어른들과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와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방송에서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너무나 '잘' 받은 반공교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의식 깊은 곳에서는 그저 서로 감시하고 고된 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휴, 이 무서운 이념교육의 잔재라니...

우리 신화에 대해 조금씩 흥미를 갖게 되었을 때 처음 접하는 것이 바로 바리데기 또는 바리공주 이야기다. 그러고보니 어렸을 때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도 한다. 아마 그저 옛날 이야기로만 생각했지 신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신화를 현대판 이야기로 바꾸어, 아니 적절히 섞어서 재구성해 낸 이야기 바리데기. 신화 속 바리데기가 그렇듯이 여기 나오는 바리도 결코 순탄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제목만으로도 알겠다.

비록 딸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기도 한 어린 시절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뭄과 기근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고 설상가상 외삼촌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기가 어려워진 바리.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의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어린 여자아이의 몸으로 어찌 그리 험한 삶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읽으면서 내심 놀랐다. 이게 과연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글쎄... 어찌보면 이 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고 탈출하거나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간중간 나오는 할머니의 바리데기 이야기와 현재 시대 바리의 삶을 왔다갔다 하는 구성에 그나마 바리의 고통을 잠시 잊기도 했다. 사실 북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하는 말을 읽을 때는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권의 이야기 속에 온갖 인간사가 들어 있는 듯도 하고 세상사의 이치가 들어 있는듯도 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있어 왔던 여러 사건들(특히 북한의 기근과 이슬람 문제-왜 하필 북한 소녀 바리는 이슬람교도인 알리와 결혼했을까. 이것은 작가의 명확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이 녹아 있어서 자꾸 소설이 아닌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작가는 이런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내 일이 아니라고 멀찌감치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라고 작정한 듯하다. 분명 알리가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서 기뻐해야 할 결말임에도 어딘지 먹먹하고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 때문은 아닐런지... 신나는 살풀이 굿판을 벌여서 액을 물리쳤건만 또 다른 액운이 어디선가 밀려오는 것만 같다. 설마 아닐 거야. 알리와 바리는 이제 행복하게 잘 살거야라며 행복한 결말이라고 애써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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