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에리히코 아저씨! - 가문비그림책 4
에블린 다비디 지음, 이옥용 옮김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에 어떤 강연회에서 뜨끔한 소리를 들었다. 무릇 그림책이란 어린이들이 보는 것이건만 어른의 잣대로 평가해서 미리부터 차단한다는 것이다. 이건 그림이 단순해서 안 되고 저건 내용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되고 또 저건 아이들이 배울 게 없어서 안 되고... 결국 어른의 취향, 아니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에 부합되는 것만 남는 것이다. 철저하게 아이는 소외시킨 채로 말이다.

만약 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이 책을 보았다면 아마도... '별로네' 하면서 옆으로 밀쳐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순수하게 아이의 눈으로 돌아가서 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보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코가 길어서 빨래줄도 되어 주고 우산도 되어 주고 사다리도 되어 주니 말이다. 남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거나 도움을 주면 나중에 도움을 받는다는 그런 교훈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아이들은 재미있어 할 것이다. 코를 이렇게 쓸 수도 있다고 깔깔대기도 할 것이며 자신도 그런 코가 있었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읽고 즐겁고 재미있어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갑자기 그림이 어떻고 글의 플롯이 어떻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감상만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결심이 오래 가지 않아서 그렇지...

둘째가 볼이 유난히 통통하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씩 꼬집어 볼 정도로... 그래서 한때는 그게 싫었는지 볼이 커서도 통통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냥 인정했는지 별 말이 없다. 이처럼 아이들은 자신의 신체 중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부분이 꼭 있다. 하긴 어른들도 그런데 아이들이라고 다를까마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 예민한가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을. 아마 이 책도 그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보아왔던 외국의 그림책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영미권 책을 많이 보아온 탓일 게다. 처음에는 아저씨가 자신의 코에 대한 열등감이나 소외감을 느끼는 부분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처음부터 바로 아저씨가 코가 길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 예상이 빗나갔다. 이게 바로 문화의 차이인지... 다양한 방식의 책을 접한다는 것만으로도 좋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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