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이라고 합니다
이와사 메구미 지음, 다카바타케 준 그림, 푸른길 편집부 옮김 / 푸른길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심심한 적이 있었던가? 문득 든 생각이다. 언제부턴가 심심할 겨를 없이 매일 바쁘게 살긴 하는데 돌아보면 이루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혼자만의 삶을 살 때는 가끔 심심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럼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기억이 안난다.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심심한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단다. 그럼 바쁜 사람은 읽으면 안 되나... 이런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작가는 바쁜 사람도 쉴 겸 읽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휴, 다행이다. 난 또 책을 읽기도 전에 자격미달로 거부당하는 줄 알았다.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은 무지무지 심심하다. 먹고 싶은 풀을 실컷 뜯어 먹는 생활이건만 따분해한다. 바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먹을 걱정, 잠잘 걱정이 없다 해도 아무런 설렘이나 기대도 없이 혼자서 똑같은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기린에게 고역이었나보다. 그러다가 문득 펠리컨의 우편배달 광고를 보고 편지를 쓰기로 한다. 단순히 광고 문구를 보고 편지를 써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 호기심의 시작은 지평선 너머에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면서부터였다. 과연 푸른 하늘과 초록색 초원이 맞닿는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펠리컨이 다른 배달부인 물개에게 편지를 전해주면서 그 편지는 고래곶에 사는 펭귄에게 전해지고 그 후로 기린과 펭귄의 편지 왕래가 시작된다. 이제 기린은 심심할 겨를이 없다. 펭귄으로부터 어떤 내용의 편지가 올까를 생각하며 설레고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이란 결국 무의미한 삶이라는 말과 비슷할테니까. 서로의 모습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고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생물의 특성으로 인해 기린과 펭귄은 상대의 모습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도 기린은 펭귄의 설명을 근거로 펭귄 흉내를 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펭귄을 찾아간다.

비록 엉뚱하게 추측해서 전혀 펭귄답지 않은 모습으로 분장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기린과 펭귄은 이미 친구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까... 친구가 되는데 있어 외형적인 기준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습으로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신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펭귄과 기린처럼. 아니 펭귄과 기린, 펠리컨과 물개처럼 말이다.

여기 친구가 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결코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도 않고 상대의 마음에 들도록 기를 쓰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상대의 참모습만을 보는 친구... 사실 기린이 이상한 펭귄 모습을 흉내내고 찾아갔을 때 펭귄의 반응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궁금했었다. 만약 펭귄이 기린의 갸륵한 정성을 생각해서 그래도 비슷하다는 등의 접대성 발언을 했다면 느낌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자기와 똑같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모습'을 보고 그저 고맙다는, 기쁘다는 말만 하는 펭귄을 보고 둘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과연 속편에서 고래는 누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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