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이 누나 사계절 아동문고 65
권영상 지음, 허구 그림 / 사계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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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습관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내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앞표지를 보고 뒤표지를 보고 작가 소개를 보고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모두 읽는다. 그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괜히 책을 다 읽은 것 같지 않은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괜한 강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의 말을 읽으면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나의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한 줄 때문에 읽는 내내 착각을 했다. 이건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 것이구나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래도 이건 소설이잖아'하며 사실적인 사건을 뼈대로 허구적 요소를 집어 넣은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왜 다른 자전적 소설과는 다르게 이 책은 자꾸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일까. 이유를 모르겠다.

책에서는 시대를 구체적 숫자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한국전쟁이 난 지 10년이 넘었다는 것에서 60년대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 당시의 농촌 생활이야 뻔하다. 모두 힘들고 신산하게 사는 삶. 그렇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더 인간적이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철 없는 소리한다고 한심해 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이라고 그때의 문제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니까. 단지 나아진 것이 있다면 먹고 지내는 것에서 확실한 발전을 한 점이라고나할까... 나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이 보다는 훨씬 뒤에 자랐으니 책 속의 상황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어린 시절도 하나씩 떠올라서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했다.

지금은 여름에 너도나도 달려가는 경포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무슨 안 좋은 일만 생겼다 하면 머리 식히러 도피하는 단골 명소가 바로 강릉이나 속초다. 그런 경포대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동경의 장소이며 관광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도 처음에는 그저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마을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 책이 상기시켜 준다. 처음으로 경포대를 관광지로 만들면서 기차를 놓던 시절이 바로 주인공이 자란 시절이란다. 이렇게 또 나는 내 위주로 상황을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지금은 대관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다니지만(오히려 한계령이나 미시령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 고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다.) 이 때만 해도 대관령은 교류를 막는 거대한 고개였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넘을 수 없는, 문명과 가까이 갈 수 없는 벽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문명과 거리가 먼 시골에서 그래도 끼니 걱정 없이 그럭저럭 초등학교를 다니는 주인공은 이제 5학년이다. 그러나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마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한다. 게다가 주인공의 형은 어려서 시력을 잃어 학교도 못 다니고 있다. 결국 중학교에 다니던 맏이인 누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 일을 도맡는다. 열 다섯, 열 여섯 살의 나이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하긴 닥치면 어떻게든 되게 마련이긴 하겠지만 지금의 그 또래 아이들을 보면 둥글이 누나가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짐을 떠안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주인공인 '나'는 누나의 보살핌으로 천진하고 나름대로 즐거운 시절을 보낸다. 누나가 업어 줄 때는 도대체 몇 살이길래 업어줄까 궁금했다. 나중에 보니 5학년이란다. 그런데도 누나에게 업히다니... 누나인 내 입장에서 보니 왜 그리 얄미운지 모르겠다. 누나는 입원한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는데도 도와주지는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도 너무 얄미웠다. 그래도 둥글이 누나는 일 시키지 않고 정말 어른인 양 동생들을 돌본다. 그 시절에는 이런 일이 흔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개 딸은 동생들 뒷바라지 하고 장남은 공부시키는 모습.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장남이 공부를 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 역할을 주인공인 신해가 하게 된 것이다.

둥글이 누나는 집안 일 뿐만 아니라 논일과 밭일까지 모두 하고 나중에는 양계장까지 한다. 물론 그 양계장은 돈을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첫째 동생인 시구의 희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겠지. 무언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고자... 그래서 병아리 돌보고 모이 주는 것도 신구에게 일임을 한 것일 터다. 주인공 신해는 서울에서 포도농사를 짓기 위해 온 경섭이 아저씨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왜 항상 시골에 서울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의 역할은 모두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길을 터 주고... 하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시대였으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모두 같은 시간 속에서 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물리적 시간은 같았어도 논리적 시간은 같지 않았겠지.

뒤에 남은 책장이 줄어드는데도 병아리 키우는 일이 잘못되었다느니 엄마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마도 작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결말에 연연했을 것이다.(그래도 이건 소설인데...) 비록 둥글이 누나는 이상적인 방향인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엄마도 퇴원하고 졸업식에서 선생님께 받은 희망나무인 호두나무도 잘 자라고 형도 삶의 빛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덮을 수 있었다. 과연 그 후에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무척 궁금하다.

성장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의 변화를 겪는 아이들의 심리나 상황을 다루었다기 보다는 가족애를 다룬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가족이 같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회상하며 형과 누나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난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이해도 안 가고 공감도 안 되겠지만 그것도 지금과 연결선 상에 있는 생활 모습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늘의 아이들도 반드시 알고 지나야 할 생활모습인 것이다. 어찌보면 어른들이 더 좋아할 책이 아닌가 싶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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