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기젤라 풀빛 그림 아이 36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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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말고 아이가 '내 그럴 줄 알았어.'하고 소리친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브루노를 위한 책>에 나오는 여자와 여기 나오는 기젤라가 똑같아서 지은이를 보았더니 역시나 같은 사람이었단다. 물론 올라와 기젤라가 똑같지는 않다. 단지 분위기가 비슷할 뿐... 그래도 이제 2학년이, 그것도 그림과는 거의 남이다시피한 아이가 그런 것을 눈치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하던지...(고슴도치 엄마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중간에 글이 많은 부분은 건너뛴다. 그럼 그렇지. 그러더니 저녁에 읽어달란다.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책은(비록 두 권 밖에 못 보았지만) 특성이 있다. 환상으로 떠난다는 점이야 많은 어린이책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고... 내가 느꼈던 특성은 두 페이지에 걸쳐서 커다랗게 나오는 그림과 짧은 글로 인해 독자에게 상상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는 점이다. 그림이 커다랗게 나올 때면 대체로 글이 얼마 없다. 그러나 그림이 작아지면 다시 글이 많아진다. <브루노를 위한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초반에는 이 많은 글을 어찌 읽어주나 걱정했는데 중간 부분부터는 글이 없고 그림으로만 전개되어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이번 책은 초반에 글이 얼마 없기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림에 심취해 있었는데 갑자기 글이 많아져서 당황했다. 

책을 읽는 내내 상당히 헷갈렸다. 이게 도대체 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난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맞는 건지, 아니면 낮에 부녀가 놀았던, 아니면 다음날 놀 것을 이야기 속에 버무려서 미리 암시를 해주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여행 간 곳의 배경과 이야기 속에서 기젤라가 있는 곳 배경이 동일하니 그럴 수밖에. 어쨌든 아빠와 딸은 다른 식구들은 남겨두고 둘만 여행을 떠난다. 이 집에는 아마도 아이들이 많은가보다. 창문에 비치는 모습으로 보아 주인공까지 포함해서 5명은 되는가보다. 게다가 엄마는 어린 아기를 안고 있다. 아빠랑 둘이서 빨간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유쾌하고 즐겁다. 게다가 바닷가에 있는 커다란 호텔에서 묵었단다. 한쪽으로는 절벽이 펼쳐지고 기암괴석이 있으며 호텔 근처는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아,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며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초록색 풀밭이 끝없이 이어진 구릉은 또 어떤가.

둘은 정말 쉬기 위한 여행을 떠났나보다. 별 하는 일 없이 수영하고 뗏목에 누워 있고 밥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는... 그야말로 기젤라 같은 생활을 한다. 저녁만 되면 아빠는 딸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그 이야기가 바로 여왕 기젤라에 대한 이야기다. 굉장히 부자인 기젤라는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가 폭풍우를 만나 어느 섬에 표류하는데 거기서 오히려 자신의 시중을 드는 미어캣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했던가. 기젤라도 처음에는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아이였지만 차츰차츰 절대적 권위를 누리게 되자 폭정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에는 미어캣 가죽으로 만든 비키니 수영복을 만들어 오라는 명령을 함으로써 자신의 몰락을 자초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몰락이었을까. 미어캣들이 기젤라를 바다에서 영원히 떠돌게 뗏목에 태워서(정확히 말하자면 묶어서) 바다로 보내지만 바다에 있는 기젤라의 모습은 신나보이기까지 한다. 멋진 노와 돛도 있고 왕관도 있으며 의자도 있다. 그리고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미어캣들이 떠나보낼 때는 분명 팔과 다리가 모두 묶인 듯이 보였지만 이제는 한쪽 팔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끈들의 역할도 무용지물인 셈이다. 사실 아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기젤라가 꽁꽁 묶인 채로 바다로 떠밀렸다면 진짜 표류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모습이라면 현재의 생활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얘기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니 은근히 미어캣의 행동에 찬성하고 그런 수난을 당한 걸 고소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빠가 기젤라 이야기를 하는 내내 묵고 있는 호텔 주변에 있는 바위가 조그만 그림으로 계속 나온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기젤라가 바다로 떠나는 커다란 화면에서는 두 화면 가득한 그림 속에 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그림책이란 이래서 쉬우면서도 어렵다. 읽는 이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니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과연 내가 생각한 그게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기에 또한 어렵다. 여하튼 둘은 그렇게 신나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온 식구가 나와서 기다리며 반겨주는 집으로 말이다. 아이는 읽고 나자 기젤라가 얄밉단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직 자기 위주로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바로 아이들의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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