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의 노란 우산 우리나라 그림동화 4
이철환 지음, 유기훈 그림 / 대교출판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간혹 아이들의 영악함에 놀라곤 한다. 반대로 순수함에 놀라는 경우도 있다. 어떤 때는 천사 같다가도 금방 악마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어쩜 그렇게 잘 변할 수 있을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서 그런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렇게 믿고 싶다.

책을 펼치면 엄마와 송이의 모습이 오를 수 없는 거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독자가 아기가 되어 엄마와 송이를 올려다 보는 느낌이다. 그렇게 서서히 눈높이가 올라가고 나면 시장에서 장사하는 엄마 옆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송이가 보인다. 그 옆에는 때가 꼬질꼬질한 인형도 있다. 그러나 그림상으로는 예쁘기만 하다.

시장에는 채소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폐인이 되어 장사도 안 하고 술만 먹고 아무데서나 잠을 잔다. 여자는 혼자 살아도 남자는 혼자 못 산다고 했던가. 물론 지금이야 남자들도 혼자 잘하고 살지만 이 할아버지 나이 정도만 되면 집안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행색이 오죽할까. 송이도 할아버지가 무섭기만 하다. 냄새까지 심하게 난다며 피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은 후로 송이는 이제 할아버지가 무섭지 않다. 아니 걱정되기까지 한다. 비가 오는 데도 우산도 안 쓰고 맨 바닥에 쓰러져 잠자는 할아버지가 너무 안쓰럽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송이는 마음을 연다. 만약 송이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면 과연 금방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무서워 하다가도 자신을 한번 도와주었다고 이처럼 마음이 쉽게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했겠지. 세상의 부조리한 모습을 아직 보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었기에...

이제 할아버지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송이에게 인형을 하나 사준다. 송이는 전에 가지고 놀던 인형과 할아버지가 새로 사 주신 인형을 나란히 앉혀 놓고 소꿉장난을 한다. 다정하게 앉아 있는 인형이 할아버지와 송이의 거리를 짐작하게 한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이제 무기력하고 의미없는 삶을 살진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제는 자신만의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생활하시겠지. 둘은 서로에게 대단한 일을 해 준 것도 아닌데도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생활이란 이런 것이리라. 별것 아닌 것에도 힘을 얻고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

제목이 <영이의 비닐 우산>과 아주 흡사하다. 그 책은 투박한 유화로 진하게 그려진 반면 이 책은 파스텔 느낌이 나는 은은한 색채다. 주제도 비슷하다. 할아버지와 아이의 말 없는 소통...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영이의 비닐 우산>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커다란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잔잔한 여운과 훈훈함을 느끼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요즘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번 읽혀볼만한 책이다. 물론 거기서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할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이런 할아버지를 어떻게 도와주냐고 할 수도 있을 테고, 송이는 참 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어쨌든 아이들이 느낀 것이라면 무엇이든 존중해 줄 의무가 있다. 또 그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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