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촌놈 생일이에요 - 놀이 유물 우리 유물 나들이 3
이명랑 지음, 배현주 그림, 김광언 감수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보름은 큰 행사였기에 봄부터 준비한 나물을 꺼내서 삶고 볶아 놓고 오곡밥을 해 놓는다(이건 대보름 전날 하는 행사다). 우리는 아침부터 설레서 누가 그릇을 가져오고 누구네 집에 모이는 지를 미리 정해 놓고 얼른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밤이 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몰래 밥과 나물을 정리하고 어쩔 겨를 없이 그냥 한 곳에 몽땅 담는다. 간혹 격식을 차린다면 밥과 나물을 따로 담는 것 정도. 그렇게 훔쳐온 밥과 나물을 화로에 올려 놓고 썩썩 비벼 먹으면 꿀맛이 따로 없었다. 워낙 아무 생각없이 퍼 온 덕분에 밥과 나물은 남고 남아 몇 날 며칠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놀이는 사라지고 시골에 가도 쓸쓸함과 적막감만이 감돈다. 동네에 어린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당연한 것이고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 몰랐는데 점점 커가면서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물건으로 된 것은 잘 보존하고 관리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러한 무형의 유물은 그것을 찾는 이가 없고 배우는 사람이 없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제는 재래시장도 사라지고 있어서 일부러 멀리 찾아다녀야 할까.

이 책은 표제가 우리 유물 나들이 중 놀이 유물이라고 되어 있다. 윷놀이나 연날리기가 유물이라니... 우리가 어려서 그냥 놀았던 것들인데 말이다. 하긴 요즘에는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놀이는 아니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교에서 조금씩 접해 본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금순이는 촌놈 생일인 장날 아침에 엄마를 따라 가려고 하지만 엄마는 매정하게 떼어 놓고 가 버린다. 하긴 엄마가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떡을 팔러 가는 것인데 금순이까지 데리고 가면 얼마나 신경쓰일까. 그러나 어린 금순이는 그저 엄마가 야속할 뿐이다. 금순이 엄마의 고단한 삶이 내겐 더 안스럽게 느껴진다.

금순이 혼자 집을 보고 있는데 돌이가 놀린다. 그렇찮아도 화가 나 있는데 돌이까지 놀리니 약이 오른 금순이는 돌이를 쫓아간다. 이름도 참 정겹다(?). 금순이와 돌이라니... 그렇게 쫓고 쫓기는 아이들은 논길에서 장으로 가는 농악놀이패를 만난다. 겨울 들판의 모습이 내 어린시절을 연상케 한다. 얼떨결에 시장까지 달려 온 아이들은 시장에서 윷놀이도 구경하고 줄타기도 구경하며 엿도 얻어 먹는다.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금순이는 집으로 가려다 탈춤을 보고는 눌러 앉는다. 그러나 어린 금순이가 보기에는 무리였던지 혼자만 무서워한다. 간신히 엄마를 만나 어둑어둑한 저녁길을 걷고 있는 모녀의 모습과 뒤로 보이는 저녁 연기 피어오르는 마을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을 끌고 가야 하는 엄마는 몸은 비록 힘들겠지만 딸과 함께 가는 길이기에 마음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금순이의 눈을 따라 가며 보여지는 놀이에 대한 설명이 본문 중간중간 나와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바로 그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알 수있는 구성이다. 줄거리가 중요한 이야기라면 이런 구성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겠지만 이 책은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되어 있어서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록 지금이야 논에 불놓는 모습을 볼 수 없고(그랬다가는 금방 경찰이 출동한다.) 동생을 업고 연날리는데 가는 오빠도 없겠지만 이런 모습도 간직해야 할 우리의 모습이다. 아마 요즘 아이들이야 이 책을 보면 그저 이야기 속의 일로만 생각되겠지만 어른들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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