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불빛 (양장)
셸 실버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가장 자신 없어 하는 분야가 바로 시다. 이상하게 시는 읽기도 힘들고 선뜻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지난 해에 큰 맘 먹고 시집을 사서 보다가 아직까지도 진행중인 게 있을 정도다. 시를 읽다 보면 내가 공감하는 부분에서는 '어쩜 이렇게 마음을 잘 표현할까.'하고 반갑다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면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고민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학교 다닐 때 시를 분석하며 공부한 영향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그래도 뭔 소린지 모를 때는 내 자신을 책망하며 잠시 접어 둔다. 그러다가 한동안 잊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누군가가 이야기하길 시는 하나를 가지고 백 번 정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고 한다. 과연 내가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한번 시도해 볼까 생각중이다.

쉘 실버스타인 하면 누구나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릴 것이다. 길지 않은 내용과 펜으로 그린 듯한 그림으로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읽어야 하는 스테디 셀러가 된 책. 지금도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이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일 것이다. 사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는데 이런... 표제작을 읽고 다음을 넘기니 다른 작품이 나온다. 이건 시가 아닌가. 그러나 시를 이해하는데는 지금까지의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든다. 다음 장에 나오는 시가 바로 마음에 꽂히면서 말이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크게'라는 시를 읽다가 마지막 행이 되자 '아차'싶다. 그래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베풀어야 그에 대한 결과도 있는 거구나... 왜 항상 결과만을 탓했을까. 내가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대했을까. 이거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그렇게 읽어 내려 가며 때론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때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하기도 하고 간혹 날카로운 비판에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물론 내가 포함되지 않은 비판이었기에). 어떤 때는 말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지만 그렇다고 달리 표현한다면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를 읽다 보면 작가는 분명 외국인인데 우리 나라 지명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그 지역이 유명하진 않을 테고... 아마도 번역을 그렇게 한 것이리라. 과연 원작에는 어떤 지명이 있었을까 괜히 궁금해진다. 그 시에서는 그 지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는 거리감이 중요한 것일 텐데도 말이다('긴 차'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 '곱슬머리'와 은근슬쩍 꼬집는 시 '달달달 외우는 모 씨' 그리고 딸 아이가 평하길 마지막 반전이 재미있다고 한 '어질러진 방' 등 시 하나하나가 혼자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워낙 시랑 친하지 않았기에... 그래도 이 정도에 만족한다. 한 번 읽고 덮어 두었다가 다시 눈에 띄는 것을 읽으려니 전에 읽었던 때와는 느낌이 약간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반복해서 읽어 100번 정도 읽으면 지금 이해가 안 갔던 시들도 그냥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시를 읽다가 어쩜 그림도 이처럼 시와 딱 맞을까 하며 보았더니 작가가 시와 그림을 모두 그렸단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그림을 그렸다면 그림을 그린 사람의 해석에 의해 걸러진 것을 독자가 보는 것일 텐데 글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므로 작가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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