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7
스탕달 지음, 손현숙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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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나서 아니 세상에 눈을 뜨고 나서는 거의 소설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읽지 않았던 고전을 읽어보리라 마음 먹은 지가 몇 해가 지났다. 그 결심을 요즘에서야 조금씩 풀고 있다. 한때는 나도 소설을 읽으며 잠 못 이루던 밤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는 했었다. 그러나 앞부분에서 너무 힘들어 그만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던 때로 기억이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제인 에어>나 <테스>, <데미안> 등은 생생히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 위에 언급한 책들은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책들이었으니까...

그때의 두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펼쳤던 책... 그러나 의외로 책장이 잘 넘어갔다. 징검다리 클래식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조금은 틀이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우기고 싶다. 완역을 읽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조금 바꿔도 쉽게 풀어 쓴 것을 읽는 것이 좋은가는 대상에 따라 그리고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너무 어려워서 선뜻 집어들 수 없는 책이라면 이처럼 쉽게 풀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실은 이런 책들은 완역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덕분에 이런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읽었잖은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쥘리엥의 짧은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야기는 줄곧 쥘리앵의 시선을 따라가며 진행이 된다. 때로는 너무 이기적이고 속물 같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순진하고 혈기 넘치는 청년이 된다. 잘생긴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이건만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배경. 쥘리앵은 그것을 좇으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곳곳에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때론 잘 넘기기도 하지만 때론 부딪치기도 한다. 아마 가장 큰 암초가 바로 사랑이 아니었을까. 진정으로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모두 잃고 나서야 겨우 깨닫고 모든 것을 포용하고 당당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기도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죽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그의 외모와 재능이 아까워서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적은 군인을 상징하고 흑은 성직자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제서야 스탕달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하게 혼자서 알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눈치챘다. 그것은 바로 그림에서 보여지는 강렬한 붉은 색 제복을 입은 모습과 검은 색 사제복을 입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삽화가 하나도 없는 책으로 보았다면 그렇게 쉽게 눈치챌 수 있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가장 뒷부분에 나오는 '제대로 읽기' 부분은 유용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작가에 대한 설명과 작품 배경 등 필수적인 것과 당시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어서 작품을 보는 범위가 넓어졌다고나 할까.

뒤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탕달은 아마도 당시의 사회를 비꼬고 싶었을 것이다. 읽는 나도 화가 날 정도였으니... 그러나 아직도 그런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어느 나라나 어느 사회에서나 돌아가는 매커니즘은 비슷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오만과 편견>을 읽었을 때는 연애소설이구나라는 생각이 확연히 들었지만, 이 책은 비록 쥘리앵의 사랑을 많이 다루고는 있지만 그것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락하고 부패하고 속물들인 귀족과 성직자들을 은근히 꼬집으며 독자로 하여금 무언가 끓어오르게 하려는 장치를 위해 주인공 쥘리앵과 드 레날 부인을 죽게 설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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