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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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아침에 나보다 먼저 일어난다. 무려 30분 씩이나... 먼저 일어나서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것은 순전히 엄마의 순진한 바람이다. 아이는 일찍 일어나서 전날 미리 챙겨 놓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는다. 가끔은 잘 안 묶인다며 신경질도 내 가면서... 그렇게 몸단장 하는데 그 30분을 쓰는 것이다. 아무리 내 딸이지만 나와 성격이 전혀 딴판이라 어떨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가끔은 내게 충고도 한다. 옷 좀 신경써서 입으라는.

이 책 표지를 보자 퍼뜩 딸 아이가 생각났다. 그래, 이 책을 읽으라고 해야겠군. 뭐... 얇기도 하니 금방 읽겠지. 그런데 요즘 시험기간이라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기에 내가 먼저 읽었다. 책은 무지하게 얇은데 '반올림'책이네. 그럼 청소년들이 읽는 건데... 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에구... 딸 아이가 안 읽기를 잘 했다. 책 두께로 읽을 대상을 결정하는 무식을 범했다. 괜히 반올림책이 아닌 것이다. 내용이 상당히 수준이 있고 행간에 숨겨진 의미도 아무리 독서력 좋은 초등학생이라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행동들이 아직은 이런 걸 몰랐으면 하는 '순진한' 엄마의 바람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제목이 특이하다. 아니 뭔가 냄새를 풍긴다. 대단히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사실 딸에게 권한 이유도 옷이라는 것은 도구(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제목을 보면 딱 그 의도였으니까. 내용도 별반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옷장을 열고 옷을 고르거나 진열된 옷 속에서 내게 맞는 옷을 고르는 행위가, 어쩌면 그 중에 어느 한 옷이 나를 고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도록 작가는 교묘하고 천연덕스럽게 속삭인다. 마치 주인공에게 속삭이는 '그 녀석'처럼... 작가는 어쩜 이리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 젊은 세대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등장인물들이 특이하게도 별명으로 불린다. 그들의 이름이 더이상은 의미 없다는 뜻인가. 여하튼 재미있고 신선하기도 했는데 워낙 두 글자 이름에 익숙해져서인지 무지하게 헷갈렸다. 각각의 특징에 맞게 지어진 별명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 뒤엉키기 일쑤였다. 단언컨대 청소년 독자들은 절대 헷갈리거나 뒤엉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세대 차이라는 것인가보다.

이 책은 '나'를 중심으로 하지만 결코 주인공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의미있게 시작을 했는데 뒤에 가서는 결론으로 갑자기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세일러문 놀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당한 것도 그동안 가졌던 잔잔하면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어떤 마음을 지속하는데 방해를 했다.

청소년들이, 특히 옷과 치장하는데 목숨 거는 아이들이 읽으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딸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꼭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작가의 말, 압권이다.
"아, 글쎄, 옷이 나를 입었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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