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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통치론 ㅣ 나의 고전 읽기 5
박치현 지음, 존 로크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학교 다닐 때 삼권분립에 대해서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저 앵무새처럼 입법, 사법, 행정만을 외웠었지.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이며 왜 그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왜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였었다. 단지 독립적이라는 사법권이 정치와 권력 앞에서 무너지거나 권력에 빌붙는 모습을 보며 한심해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었다. 아니 진작에 읽었어야 했던 책인데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통치론>을 읽고 저자가 서평을 쓰듯이 풀어 놓은 책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원전을 읽었다면 아마도 끝까지 읽지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첫 부분에서는 로크의 삶을 다루고 있어서 그가 <통치론>을 쓰게 된 배경이라던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단순히 그 작품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살았던 삶과 시대적 배경도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훨씬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견해에 공감하는지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 적어도 인신의 자유는 보장된다. 그러나 이 책을 썼을 당시만 해도 이런 생각 자체가 엄청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노예무역이 당연시 되고 있던 시대니까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이 보기에는 로크의 이 책이 얼마나 위협적인 책이었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러면서 작금의 어떤 사태가 오버랩된다.(출총제와 종부세라고 말 못한다.) 위협을 무릅쓰고 이 책을 출간하였기에 인류는 한 걸을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저자도 이야기하듯이 시대적인 차이로 인해 지금의 현실과 안 맞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로크에게 떠밀 수는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한 것인 만큼 읽는 이가 보정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
국가에 대해서, 그 의미에 대해서 아무 생각없이 있다가 로크가 명쾌하게 정의해 놓은 글을 보니까 '아!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전제정치 시대가 아니며 독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로크가 주장했던 것들을 너무 당연시 했었나보다. 특히 다수결의 원리와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에 대한 설명을 보니 지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고 놀랐다. 여기서 발전되어 나간 것이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국가와 권력에 대한 것이라니... 다만 로크는 지나치게 자본주의를 강조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그쪽만 너무 발전시킨 '덕분에' 여러가지 폐해와 문제점이 발생했지만 말이다. 이 또한 로크의 논리적 허점을 악용한 후세 사람들로 인한 결과니까 그에게 뭐라 할 수는 없겠다.
<통치론> 원문을 중간중간 삽입하여 해석해 놓았기에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간혹 원문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임에도 다시 설명을 해 놓아서 반복된다는 느낌과, 우리와 다른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공감이 잘 안된 부분이 조금 있긴 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뒷부분에서는 우리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현대사(최근)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조건 통치론을 신봉하거나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과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어서 덜 괴로웠다.(극단으로 가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괴롭다.)
로크가 이 책을 썼을 때가 1690년경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이다. 이 시대에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렇게 논문과 책으로까지 펴내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왜 서구의 민주주의가 우리보다 더 발달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50여 년이 조금 넘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의 이 후진적인 정치제도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경제제도도 언젠가는 성숙기에 접어들리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그 날이 언제쯤 될까나...
아! 그리고 마지막 뒷표지의 저자 소개가 재미있었다. '집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없었던 관계로' 저자(박치현)다운 표현이다. 저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읽고 나면 느껴지는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소개글이라서 웃음이 절로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