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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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웰빙 프랑스 영화 한편이 계속 영화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관심을 받았다. 상위 1%의 장애인인 남자와 하위 1%의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가난한 남자의 별난 우정과 동거가 시작되면서 벌어지는 헤프닝들이 쉽게 풀려지며 재미와 대중성과 작품성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쾌거를 이룩해 냈다.

 

좋은 영화가 재미있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지.....!

 

그렇게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는 반면 가진 자가 없는 자의 것을 빼앗으며 미래의 싹을 잘라내는 소모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이야기도 있다.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처럼.

 

역사속에서 이룬 남자들은 불로장생을 꿈꿔왔다. 진시황이 그러했듯이. 욕망의 노인들이 역사 속에서 걸어나와 소설로 기어들어가면 스타터스에서처럼 돈으로 젊음을 사려할 것이다. 하지만 20대,30대가 사라진 소설 속 현재 속에서 10대의 싹을 싹둑 자르는 이같은 행위는 미래를 망치는 어른들의 망각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중간 연련이 사라진 현재. 노인과 10대만 있는데 그들을 잘 건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의 젊음을 망가뜨리다니.....! 한 세대를 잘 살아낸 어른으로서 할 행동이 아닌 것이다.

 

스타터스는 그런 막장속에서 돈 많은 엔더들에게 젊음을 렌탈하는 10대의 철없는 방황기를, 어쩔 수 없이 내어놓아야하는 가난함을 직시하게 만든다. 우리네 현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나이를 떠나 가난한 자의 것을 착복하는 부유함이란 어떤 명분을 갖다 대어도 허울 좋은 거짓일 뿐이다.

 

스타터스는 그것을 바라보게 만든다. 약간 시시하게 종결지어지는 디스토피아의 가까운 미래는 그래서 희망적이기보다는 맹물처럼 시시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단호하게 칼을 대는 선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날카로운 칼을 쥐고 맹맹한 요리를 내어놓은 요리사의 그것마냥 우리를 허무하게 만든다. 한참 재미를 기대했다가 거품이 꺼지는 느낌이랄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작품이 스타터스였지만 읽고 후회하는 편이 읽지 않고 왈가왈부하는 것보단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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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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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이후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하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들이 쉬지 않고 출판되면서 언제나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읽은 [파파라치]도 그러했고 [시간을 파는 상점 ]또한 그러했다.

 

제목만으로는 외국의 어느 소설인가 싶었으나 놀랍게도 소설은 우리 작가의 작품이었고 제 1회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작이었다. 청소년 소설이 이토록 매력적일수가. 추리기법을 가지고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몇해 전에 본 일이 있다. 3교시였던가. 생각보다 좀 밋밋해서 실망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시간을 파는 상점이 주는 재미는 그 실망감을 덮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좋은 기폭제가 되고 희망이 되었다.

 

소방대원인 아빠를 잃은 백온조. 아이는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카페를 열어 고민해결에 나섰는데 학교내에서 pmp사건을 도맡게 되면서 사건은 풀리기도 꼬이기도 해가며 재미를 안겨준다. 훔친 pmp를 제자리에 놓아두어달라는 의뢰는 쉬워보이기만 했는데, 의뢰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전개되고 온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의뢰를 해결했고소중한 시간을 지켜냈다.

 

지금의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엔 우려가 많이 섞여 있다. 사상 초유의 왕따 사건을 비롯해서 아이들이 저질렀다고 믿기지 않을만큼 잔인한 범죄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세상이 점점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싶어질만큼 걱정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이 아직 덜 여문 인격임을,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임을,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임을 잊고 있는 어른들의 마음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설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이 읽혀서 아이들이 아이들다운 마음을 갖기를, 어른이 되기보다는 좀 더 순수한 세상에 머무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추리기법으로 인해 궁금증을 가득 유발시켰고 가독성으로 인해 첫장부터 막장까지 쉼없이 읽게 만든 [시간을 파는 상점]을 좀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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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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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라는 소설은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몇해가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사람을 짜내어 그 속에서 향을 찾는 사내라니...그것도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사이코 패스의 취미 생활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향에 미친 남자의 일생이 불쌍해서였다. 그런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향수]보다 더 잔인하게 태어났다. 바로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였다.

 

좀비는 영화상에서 나오는 괴물쯤으로 느껴졌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좀비처럼 무서워진 것은 소설을 읽고나서였다. 죄책감 없이 사람을 닭잡듯, 당당하게 잡아내린 이 남자는 중산층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백인남자였다. 31살의 쿠엔틴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내고자했다. 어쩌다가 이런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 것일까. 이 남자는.......!

 

[신드롬]에서처럼 뇌를 맘대로 조정해서 병을 정복하고자 했던 어느 의사의 망상도 아닌 것이, 그저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는 노예가 필요했던 백인 남자의 망상은 살인을 야기시켰고 결과적으로 무시무시한 일들이 자행되어졌다. 하지만 이야기는 심각하기 보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 이야기를 풀어내듯 추적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쓰여졌다. 짧고 간단하지만 무언가 단서를 남기는 형식으로.

 

"좀비를 가지고 있었다."

 

라는 남자의 소망은 엉뚱하게도 살아있는 시체를 만들기 위해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을 골라내어 실험을 하고 갖다 버리곤 했다. 그를 보며 인간성의 상실을 너머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가치를 역으로 생각해내게 만드는 똑똑한 공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깨달아가는 것 중에 사람에 대한 것들이 있다. 사람이 때로는 희망이 되고, 사람이 때로는 의지가 되지만 반대로 사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이웃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공포를 현대인이 가지는 까닭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옛말은 쿠엔틴의 이웃들이 떠올릴 교훈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제일 무섭다. 하지만 사람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서글픈 존재같다. 공포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서글퍼진 적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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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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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읽기전부터 무척 기대감을 갖게 만든 작품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다시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라는 찬사도 찬사지만 촉망받던 우등생의 자살 뒤에 밝혀진 그 죽음의 의미가 세월이 지난 후에야 편지 한 통으로 밝혀진다는 줄거리가 추리심을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죽음을 역추적해 나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당연히 따랐을 거라고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책은 약간 지루하게 전개된다. 에드리언 핀의 죽음을 밝혀내기보다는 앤서니 웹스터가 살아가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앤서니 웹스터. 원래는 셋이었다가 에드리언의 합류로 넷이 된 불평불만 그룹의 일원으로 "토니"라고 불린 앤서니는 평생의 우정을 다짐했던 그룹 내 친구들과의 우정이 삶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 시절엔. 게다가 자신도 기억치 못하는 한 통의 편지로 소중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버린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우정이란 그 순간을 벗어나면 이토록 빛을 잃고 퇴색되어 버릴 때도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여자친구 베로니카 포드의 집에서 푸대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그녀와 지속적으로 만나왔다. 그녀는 그에게 평생을 통해 가장 의미있는 여자였고 가장 상처를 준 여인이었으며 마지막까지 보고파한 여인이기도 했다. 애증의 산물격인 베로니카를 에드리언으로 인해 잃고 난 후 다시 만나게 될때까지 한 참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예순의 나이가 되어서야 변호사를 통해 에드리언의 유언 집행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베로니카가 연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녀와의 만남을 꽤했으니까.

 

1등급 성적, 1등급 자살을 원했을 에드리언의 로마식 죽음, 욕조에서 손목을 그어 죽음을 꽤했으면서도 사후의 일들에 대해 글을 남겨 정리정돈을 원했던 에드리언. 그의 죽음을 두고 신문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 청년의 비극적인 죽음"이라고 표현했지만 우정으로 뭉쳤던 혈맹들은 그 죽음의 끝조차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가족끼리 조용히 치러진 장례식 속에서 그의 죽음은 그렇게 묻혀져갔다. 베로니카 라는 이름이 토니의 인생에 다시 거론되기 전까지.

 

토니는 이제 안다. 자신의 기억도 못하는 편지가 불러 일으킨 에드리언의 죽음을. 그리고 오랫동안 오해했던 그의 연애대상을. 진실을 알고 나서도 돌이킬 수 있는 건 없었다. 비밀은 밝혀지고 나면 면죄부를 쓰는 것도 아닐텐데, 그저 밝혀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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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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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를 처음 알게 된 때는 그 소녀 만한 나이였다. 그리고 나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갔다. 하지만 안네의 나이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젠 안네 만한 나이의 아이들에게 안네의 이야기를 들려줄 나이가 되어버린 내게 안네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든다. 어른으로서의 시선.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이외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로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한 시각.

 

베르테 메이에르는 동생과 단 둘만 살아 남은 안네 프랑크의 이웃이다. 안네와 그의 언니 마르고와 같은 막사에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시기에 죽은 그녀를 기억해내고 있다. 안네가 살았다면 베르테처럼 살았을까.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전쟁 후 유대인 고아원에서 자라났을 것이고 그 시기를 지나 저널리스트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예술가로 살았을 것 같았다. 그렇다한들 그 트라우마가 극복되진 않았을 것이다. 평생.

 

고려시대, 환향녀들의 삶이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선택이 아니었지만 그 불행한 삶이 온전히 그녀들에게 내려졌던 것처럼, 나치의 만행 속에서 살아남은 유대 소녀들의 삶도 치유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야했다는 것을 60여년이 지난 베르테의 고백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안네의 일기 속, 숨어 산 삶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았지 살아남았을 때 주어졌을 잔인한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질 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생존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남은 것이 더 잔인한 것인지, 죽음을 맞이한 것이 더 잔인한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p.14  네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렴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는 죽음의 시간은 잔인하며서도 무섭고 또 공포스러웠다. 직접 겪지 않았지만 전해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부히 끔찍했다. 이 시간들을 지울 수 없었기에 60년이 지난 지금 베르테는 다시 꺼내 세상에 내어놓았을 것이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 배웠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여인의 고백은 지나온 인생의 것이 아니라 아직 멈추지 않은 삶에 대한 고백이며 고통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도 [사라의 열쇠]라는 책도 실존을 넘어서진 못했다. 살기 위해 견뎌왔던 시간에 대한 고백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살아남은 상처를 치유해보고자 했던 시간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이들의 삶을 이토록 어긋나게 만들었는가. 한 사람의 그릇된 생각이 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역사에 남겨놓았는지............! 읽는 내내 멈추고 싶은 순간들을 견녀낸 것은 역시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끝까지 읽어달라는 당부 때문이었다. 그 당부로 인해 멈추지 않고 알아야 할 것들을 끝까지 알고자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무사히 덮고 서평을 쓰고 있다. 참 많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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