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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데비에게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나처럼 오랜 시간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수십 통의 이메일을 작성했다
하지만 나는 위선자가 아니기에,
내게 고통을 안겨준 남자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기 전에는
그 이메일을 단 하나도 보낼 수 없었다
P328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
주인공 데비는 <힝엄 하우스홀드>라는 작은 지역 신문에 상담 칼럼을 연재 중이다. '디어 데비'라는 이름으로.
소설 중간중간 데비의 임시 보관함 속 신청자들의 사연과 더불어 데비의 조언이 함께 등장한다. 설마 이대로 쓴 것은 아니겠지?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면서 도덕성은 1%도 담겨 있지 않은 복수법이 담긴 내용들이. 아마 보관함 속 충고들은 데비가 진실로 하고 싶었던 답변들이었겠지만 '디어 데비' 칼럼이 폐쇄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액면 그대로 다 실리진 않은 듯 하다.
바늘로 남편의 고막에 구멍을 내라는 내용부터 남편의 와인에 독을타고 이혼 전문 변호사를 만나라는 조언, 마음에 들지 않는 딸의 남친 자동차 브레이크 라인을 가위로 자르라는 등의 무시무시한 조언이 담긴 데비의 상담내역. 데비의 딸들이 발견해서 아빠에게 전할 때까지 그 내용은 그대로 노트북 속에 담겨 있었던 듯 하다. 타인에 대한 충고엔 브레이크가 걸려 있을 망정 데비 자신의 복수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데비 주변에는 왜 이런 사람들만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엉망인 주변인들을 향한 통쾌한 그녀의 복수는 거침 없었다. 데비의 정원 매거진 촬영을 훔쳐간 이웃, 딸의 나체 사진을 온라인에 뿌리겠다고 협박한 딸의 남친, 20년 간 남편을 부려먹고 해고한 남편의 사장, 교육수준 운운하며 데비를 깔보던 독서 모임 멤버들, 남편을 유혹한 절친까지... 모두 데비를 과소 평가했던 거다. "내 인생은 엉망 같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이 딱 보였다"(P93)는 데비는 IQ 178의 MIT 중퇴생이었던 것. 학창 시절 지나치게 똑똑했던 그녀에게 일어난 모종의 사건으로 그녀는 휴학을 해야했고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 범인과 마주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더 이상 바보같이 사는 건 그만두고 모두 되갚아주기로.
독자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반전을 항상 준비하는 작가인 프리다 맥파든이 <친애하는 데비에게>를 그냥 시시하게 흘려 보냈을 리가 없었다. 반전의 묘미는 데비를 해쳤던 범인의 정체와 쿠퍼의 외도에 관한 진실 속에 담겨 있었고 마지막 반전키는 데비의 숨은 조력자에 관한 것이었다. 데비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도덕성을 기대하기 보단 고구마 구간이 아닌 사이다 구간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시원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도록.
상처받고 고뇌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는 여주인공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자신과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복수하고 나아가 타인의 복수까지 돕는 그녀가 '블랙위도우'만큼이나 멋있어 보였다면 아마 프리다 맥파든의 손을 탔기 때문이 아닐까. <하우스메이드>부터 <친애하는 데비에게>까지 지루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쉽고, 깔끔하고, 몰입감 강한 소설들이었다. 모두.
누군가의 내연녀가 된다는 건 서열에서 항상 두 번째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남자들이 자기 아내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고 백날 말해도, 나는 늘 숨겨야 하는 더러운 비밀일 뿐이다 이제 더러운 비밀로 취급받는 게 지긋지긋하다 P304
쿠퍼가 내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외도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남편은 결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나에 대한 사랑만큼은 흔들린 적 없다 P322
쿠퍼도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데, 나라고 진실을 말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쿠퍼도 전부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가면 쿠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