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력 - 나를 지키는 가장 똑똑한 까칠함
필로소피랩 지음 / 각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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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책 <무례력>은 저자의 이름 석자 대신 '콘텐츠 연구소'라 쓰여져 있다.


연구소라는 표현 때문일까. '전략적으로 무례해져라'는 책 띠지 문구조차 똑똑해 보인다.

나를 지키는 가장 똑똑한 까칠함이라니!!!

이건 뭐 읽지 않고 지나치기 힘든 문장이다. MBTI에 T의 지분이 1%도 없는 나에게 할 말은 하면서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관계의 기술은 푸우의 꿀단지마냥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목차

호의는 왜 권리가 되었나

당신의 위치가 당신의 대우를 결정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선을 긋는다

상황별 무례력 실전 템플릿

무례력의 완성, 그 후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된 책의 두께는 얇다.

크기도 문고판 사이즈다. 가지고 다니면서 이동 중에도 한 번씩 펼쳐볼 수 있고, 간략하면서도 적은 쪽수는 독서의 피로감도 덜어낸다.




우리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집중력, 인내심, 감정 조절 능력은 무한하지 않다

누구의 말까지 신경 쓸지, 어디까지 맞춰줄지,

어떤 관계에 내 에너지를 쓸지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힘을 빼앗긴다

P9


무례

타인의 기분과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거리와 태도를 정하는 힘


무례력 자가 진단 테스트 pare 2 : p58 ~ p105


짧은 예시가 있는 10개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a/b/c/d 중 해당 사항을 선택한 뒤 가장 많이 나온 알파벳을 확인하면 된다.

다행스럽게도 '전략적 무례력자'의 결과를 얻었지만 '호구'의 숫자도 비슷하게 나온 걸 보면

상황에 따라 극과 극의 대응방식을 택해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재미있었던 '무례력 자가 진단 테스트'는 내가 어떤 유형인지 알아보는 재미도 있지만

호구/민폐/빌런/전략적 무례력자와 마주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 또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유익했다. 상대에 따른 대처법까지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은.

<무례력>은 이론이 살짝 곁들여진 실천편처럼 적혀 활용도 또한 매우 높았다.

관계가 걸러지는 것은 손해가 아니지만 축소되는 인맥에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나?'라는 회의감이 들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어느 새 회사 내에서 만만한 직원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서글픔이 몰려올 때, 가족 내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될 때 조용히 펼쳐보기 좋은 멘토북이다.

건강하게 까칠해질 권리를 보장해주는 마음건강서랄까.




무례력은 공격이 아니라 항체다 p37

무례력은 지식이 아니라 근육이다 p167

무례를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받아치는 게 아니라

동요하지 않는 것 (p117)이라고 했던가.

책 속에 등장한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 /조나단 프리드먼과 스콧 프레이저','시그널링 이론 /마이클스펜스','벤저민 플랭클린 효과','거절할 때 꼭 바꿔야할 3가지 언어습관' 등에 관련된 내용도 좋았지만 이처럼 명언같이 기억될 짧은 문장들이 머릿 속에 더 진하게 남겨진다.

예전에 비해 제법 까칠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먼 듯 싶다.

책을 읽다 보니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보이고.

그래서 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단단함을 보완하려 한다. 포스트잇이 하나씩 떼어지고 종국엔 올클린될 때까지 손때 묻혀가며 읽을 예정인 <무례력>. 지식에 관한 책이 아니므로 몇 번을 다시 읽든 지루해질리가 없다. 그래서 나를 지키는 가장 똑똑한 까칠함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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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판사, 나쁜 판사
류기인 지음 / 펜타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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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을 어느 특별한 기록과 함께 보냈다.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류기인 부장판사가 쓴 <착한 판사, 나쁜 판사> 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그는 단일 재판부 기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년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판사이자

'걷기학교', 시집 <이제는 집으로 간다>, '북콘서트' 등의 행보를 보여준 특이한 판사다.

사실 요즘 뉴스는 좀처럼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않는다.

소년 범죄, 솜방망이 처벌, 심신미약, 학교폭력, 촉법소년, 반성하지 않는 태도... 이렇게 이어진 다음 세대, 괜찮을까? 라는 걱정과 우려섞인 시선으로 세상을 저울질 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청소년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접하는 순간만큼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착한 판사, 나쁜 판사>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다듬게 돕는다.



우리는 아이가 저지른 행동만 보고 처분을 정하지 않는다

p23



'어리다'로 끝나선 안되는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쉽게 유혹에 흔들리는 아이들, 법정을 벗어나면 다시 똑같은 환경으로 돌아가야하는 아이들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채 2차, 3차 되돌아오는 아이들만 탓할 수 있을까. 환경이 불우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니다. 물론 잘못을 행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판사인 저자는 누군가의 남은 인생을 결정짓는 순간 '선처'하는 판결이 [반성]으로 돌아올지, [학습]으로 돌아올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판결문 한 줄의 무게가 한 권의 에세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생에서 좋은 어른 한 명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나는 그동안 주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어른이었을지... 자연스레 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누군가의 성장,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닌 생각하게 만드는 에세이는 오랜만이었다.

읽는 속도는 더뎠으나 '좀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픈 마음'을 일깨우기 좋은 책이었고, 몰랐던 지식도 일부 채워져 유익했다.





책의 서문에서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은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한 판사의 진심'이라는 표현을 썼다.


<착한 판사, 나쁜 판사>가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재비행을 막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가장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애쓴 판사의 고뇌가 담겨 있어 무엇보다 감동스럽다. 나이를 떠나 범죄수법은 나날이 악랄해지고 사이코패스는 이제 너무나 흔한 것 같이 보여지지만 판결의 순간까지 고민하고 그 이후까지 살펴보는 법조인이 있어 아직은 '판사'라는 직업군이 AI로 대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반성하지 않는 태도의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와는 달리.



아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잘못을 가볍게 넘기지도 않는 것

p5


특히 "소년법정에서 내려지는 처분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가볍든 무겁든, 그 처분 안에는 아이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라는 대목의 울림이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벌을 받는 입장에선 중벌을 내리는 판사는 '나쁜 판사', 선처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좋은 판사'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선 반대가 된다. 가해자의 상황만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책의 제목은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인 류기인 판사가 바라는 아이들의 태도변화까지 더해져.





창원소년부에서 시작된 '걷기학교'에서 보여진 주된 변화는 '대화'와 '소통'이었다. 함께 걸으면서 한 올씩 풀려진 말들은 그 내용이 길지 않아도, 질문으로 점철되어도 변화의 시작같아 뭉클하기도 했다. 글로만 읽었는데도 그랬다. 법을 집행함에 있어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유통성을 발휘해서 판단해야할 때가 있을 것이다. 타인의 내일을 결정짓는 그 순간을 함부로 맡길 수 없기에 적어도 '판사'라는 직업군엔 남다른 사명감이 더해졌으면 했다.

가해자의 상황만 감안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까지 어우를수 있는 판결을 원할 때는 더욱 그런 마음이 들곤 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 사과한 가해학생과 '우리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는 마음을 담아 더 힘든 친구들을 위해 합의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피해학생과 그 부모의 일화는 아이 하나가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었다. 양쪽의 아이들이 다시 건강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따뜻한 첫걸음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소년부 업무를 하면서 아이의 잘못이 먼저 보였다는 고백.

재판 한 번으로 아이의 삶이 달라지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현장의 소리를 책을 읽는 우리는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법조항이 가득하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한 권이지만 이 책은 판결의 무게를 견디면서 걸어온 한 법조인의 기록이자 좋은 어른으로 그 걸음을 디뎌온 사람의 지난 발자국이 담긴 이야기다.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은 안전하다.

소년부 판사의 솔직한 이야기는 그 반대편에 서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피해자든 가해자든) 좁은 대한민국에서 한 다리, 두 다리, 세 다리 건너면 결코 무관하지 않을 연결고리가 발견될 우리 모두의 사연 같아서 절대 가볍게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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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리더십 - 심리적 안전감을 넘어 책임 안전감을 만드는 ‘AI 시대 리더’의 조건
김유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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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판단을 빠르게 한다

데이터는 점점 정확해진다

추천 알고리즘은 인간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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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00회 이상 강의하고 있는 기업교육 전문가의 책 서문의 첫 발자국은 강렬했다. 작법서에 흔히 등장하는 "첫문장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사로잡아라" 식의 충고는 비단 소설쓰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나보다. AI,로봇산업 등이 육성되면서 인간의 설자리가 줄어들까봐 걱정되는 고민을 저자 김유리 대표가 제시하는 "인간을 지켜내는 기술"을 읽은 다음으로 미뤄보는 건 어떨까.




AI가 주도권을 쥔 시대에 인간을 지켜내는 기술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리더십','조직문화','팀십'을 강의해온 해피투게더컨설팅의 김유리 대표는 리더의 존재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능력 부족이 아니라 바뀐 역할 탓에 흔들리고 있는 리더들. '결정하는 리더'에서 '결정을 해석하는 리더'를 필요로하고 있는 시대, 그녀가 제시하는 '보이는 리더십'은 어떤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AI시대 리더는 자칫 기술에 통달한 관리자로 오인되기 쉬운데, 책에서는 이를 부드럽게 바로잡는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더 좋은 기술을 찾기 전에 사람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먼저 살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책은 마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면서 표 or 그림/사진을 활용해서 이해를 돕고 마지막으로 핵심 정리를 통해 메시지를 간략하게 복습하는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특히 7장은 현업에 있는 리더들이 셀프체크해보기 좋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왜 AI시대에 '리더는 존재 자체가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시이기도 했고.

1 on 1 미팅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130페이지에 정리된 표를 참고하자. 상담 진행 시 나의 몸짓과 태도가 상대에게 어떤 신호를 제공했는지 비교할 수도 있고, 당시 팀원이 받았을 심리적 메시지를 기억해 두면 다음 미팅에서는 실패율을 상당히 줄일 수도 있게 된다. 게다가 꽤 많은 내용이 한 눈에 볼 수 있게 표로 정리되어 있어 복습용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리더의 역할이 바뀐 시대, 보이는 리더십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자체가 좋은 리더감의 자세가 아닐까.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AI시대 리더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선 보이는 리더십의 실천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결국 AI가 주도권을 쥔 시대에 인간을 지켜내는 기술의 해답은 바로 '보이는 리더십'이었던 것.

기업내 인간 윤활유처럼 존재하기 위해선 판단의 몫은 AI에게, 조율의 몫은 리더가 맡아야 하며 리더는 태도로 존재감을 드러내야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읽어 보면 책에서 제시한 방법들은 한 번에 통달할 수 있는 쉬운 방법들이 아니지만

보이는 리더십이란 리더가 존재하는 방식이 조직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다 P250

라는 저자의 충고를 마음에 새기면서 하나씩 시도해보는 일은 해봄직하지 않을까. 보이는 리더십은 반복되는 선택의 결과이므로.





꽤나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제목의 <보이는 리더십>은 중간중간 셀프 체크 해 볼 수 있는 문항들이 있어 재미있었는데,

[책임 안전감 리더십 체크리스트]

[PATH 진단]

[반복 장면 진단표]

[리더의 감정 운영 성숙도 체크리스트]

로 스스로를 진단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도움받을 수 있는 항목들이었다. 또한 예쁜 표현보다는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리더를 선호한다는 Z세대에게 '안전하고 신뢰받는 리더'로 인정받는 방법이라든지, 팀원 유형별(내향형/외향형, 신입/경력, 고성과자/저성과자) 맞춤 소통 전략 등도 현장 리더들에게 보탬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보이는 리더십>을 읽으면서 과거의 상사들을 주르륵 떠올려 보았다. 물론 AI시대가 아닌 소통이 중요한 시대의 리더들이었지만 지금의 현장에서도 '남다른 리더십'으로 자리를 단단히 다져갈 사람은 누구일까? 상상하면서. 딱 한 사람만 떠올랐는데, 아마 그가 내게 했던 충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씌우기 보단 "내일 출근을 하게 되면, 일반 사원일 때와는 다른 시선/다른 입장으로 일하게 될 거야. 당연한 일들이니 혹시 힘들게 느껴지면 언제든지 면담 요청해."라고 말하던 상급자가. 업무 뿐만 아니라 인력관리에서도 고무줄처럼 유연성을 지녔던 리더가 갓 진급한 초짜에게 해 준 충고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은 것처럼 <보이는 리더십>을 참고할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이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과연 어떤 리더였던걸까? <보이는 리더십>을 다시 펼치며 '인간을 지키는 기술'을 잘 이해해보려 노력중이다.



#보이는리더십 #책추천 #리더십향상 #리더십향상추천 #AI시대리더의조건


*본 포스팅은 위아더월드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과 원고료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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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프리다 맥파든 지음, 박지현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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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 내용이 포함된 리뷰임을 알려드립니다*

끊임없이 출간되는 신작을 따라잡기 힘든 다작 작가 프리다 맥파든.

하버드대 출신의 현직 의사라는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줄줄이 이어지는 신작 소식에, 부지런히 읽어도 아직 따라잡긴 역부족인 작가다.

'반전'이라는 트릭을 교묘하게 잘 활용하는 작가여서 일단 소설 중반쯤까지 읽은 내용도 '곧 뒤집힐 사실들일거야' 의심하며 읽게 만든다.

올 5월에 출간된 번역도서 <이혼> 역시 다르지 않았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

파렴치한 바람남 제레미

순진한 컨셉의 나오미.

그리고 내연녀를 숨겨놓은 채 양육권과 재산 모두를 빼앗고자한 남편 제레미.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싶어한 나오미를 끊임없이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로 몰고가는듯 보이는 제레미의 파렴치한 행각들은 눈살을 찌푸리기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리모델링 핑계로 나오미를 작은 집으로 몰아낸 그는 최고의 이혼 변호사들을 선임한 채 이혼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지만 남편과의 재결합을 꿈꾸던 나오미는 "여전히 그는 나를 사랑해. 다만 나쁜 여자의 꾐에 빠졌을 뿐이야."라고 믿으며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기만 한다.

아름다운 내연녀 베로니카의 비밀

동안 외모의 돈 많은 유부남과 바람피는 중인 베로니카. 어느 장소에서건 남자들이 눈길을 줄 정도로 아름다운 20대 베로니카가 40대 유부남 제레미를 유혹한 건 '아이' 때문이었다. 과거 마약커플이었던 그녀와 남친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 베로니카. 6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던 그녀 앞에 나타난 6살 아이와 그의 아버지. 베로니카는 알아야만 했다. 그들의 아이가 맞는지, 아닌지.

남편의 본심을 몰랐던 바보같은 아내에서 집착녀로 변해가는 나오미

혼자만 행복한 결혼생활이라 여겼던 가정이 깨지고 치사한 이혼공방이 오가면서 밝혀진 각자의 비밀들.

프리다 맥파든의 작품이라 크게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작가의 시그니처인 화자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달리 보이는 상황이 동일하게 연출된 점이 흥미롭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쁜 놈도 덜 나쁘게 보이고, 나쁜 년의 입장도 헤아리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라니. 사람의 심리변화를 잘 이용해, 입장따라 해석의 온도변화를 추구하는 소설 구조가 동일하다보니 질릴 법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신작 소식에 구해 읽을 만큼 개인적으로는 브랜드 네이밍이 떨어지지 않은 작가다.

순진하게만 보였던 아내 나오미가 실제로는 평범하지 않은 여자였고, 직업 역시 평범한 의사가 아니었음이 남편의 입장에서 읽는 순간 밝혀진다. 또 콩콩팥팥처럼 그녀의 어머니 역시 불법적인 일을 많이한 사람으로 과거 나오미의 잘못을 바로잡기는 커녕 도와준 것으로 드러났고.

결말 그리고 반전

인간적으로는 호감을, 직업적으로는 끝까지 돕고자 했던 변호사마저 해친 나오미.

그리고 이후 밝혀진 남편의 또 다른 만행. 결국 끼리끼리 잘 만났던 부부였는데, 남은 인생은 더 나쁜 놈이 계속 잘 살게 된 것만 같아서 찝찝한 상태로 끝났다.



반전의 여왕 프리다 맥파든의 <이혼>은 결국 '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 주목하며 읽었던 소설이다.

작가의 반전이야 이젠 당연히 서너 차례 등장할 줄 알고 읽게 되어 놀랍진 않지만 또 다른 지옥을 시한폭탄처럼 심어놓은 채 마무리될 줄이야.

갈등, 비밀, 반전, 매력요소가 드라마급이라 생각했는데 이 작품 역시 "하우스메이드"처럼 판권이 팔린 상태였다. 영화화 예정이라니 어떤 배우들이 캐스팅될 지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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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회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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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불명의 시신이 많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시신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경찰과 의사가 너무 많아

시신은 말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한데 경찰과 검시관이 귀를 막고 있어

다른 하나는 돈이야

다른 하나라기보다 이게 제일 큰 원인이지

P23~24

미쓰자키 교수가 TV프로그램에서 한 발언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빗발치는 항의전화와 예고살인 1건.

친애하는 미쓰자키 교수

인터뷰에서는 아주 대단하게 말하던데

시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당신의 귀를 시험해 보지

앞으로 나는 사람을 딱 하나 죽일 거야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말이야

그러나 시신은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겠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들어봐(P34)

살인범의 트리거가 된 지점은 어디일까?

나카야마 시치리의 법의학 시리즈는 '히포크라테스'가 붙여져 출간되고 있다.

국내 출간 기준으로 3번째인 <히포크라테스 회한> 이전에 <히포크라테스 선서>,<히포크라테스 우울>이 번역된 바 있다.

시신은 사람을 속이지도, 거짓말하지도 않아요

'사이타마의 빨간 귀신과 파란 귀신'으로 불릴 정도로 유능하면서도 동시에 괴팍한 미쓰자키 교수와 와타세 경부가 중간중간 카리스마 있게 등장하지만 소설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끌어가는 건 고테가와 형사와 마코토 조교 콤비다. 미쓰자키를 향한 살인예고장을 공개적으로 보낸 범인을 잡기 위해 총 5건의 죽음을 수사하면서 일본 사법해부의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은 가미된 범죄추리장르로만 읽기엔 너무 훌륭했다. 짧지만 묵직했고 간간이 유머러스한 대목까지 포함되어 지루함없이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게다가 앞장엔 등장인물의 삽화까지 더해져 문고판같은 느낌도 살짝 얹어진듯한 <히포크라테스 회한>.


열중증으로 죽은 90세 노인의 죽음

간암 파열로 진단 받은 베트남 실습생의 죽음

오토바이 사고사로 꾸며진 아들의 죽음

피웅덩이를 만들며 갑자기 쓰러진 필리핀 여성의 죽음

생후 5일된 유아 돌연사


이 중 어느 죽음이 범인의 솜씨(?)인지 열심히 수사한 고테가와 마코토 콤비.그리고 귀신같은 부검으로 죽음의 원인을 알아낸 미쓰자키 교수. 

결국 범인이 밝혀지고 살인의 동기와 범행수법까지 다 까발려지지만 다섯 건의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진실은 씁쓸하기만 했다. 차별, 악의, 거짓이 난무하는 가운데 과거의 복수를 핑계삼아 자신의 욕구를 채운 범인에게 강한 일침을 한 미스자키 교수의 마지막 대사에서 100%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엔 부족했지만.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국과 일본은 너무 다르면서도 때로는 비슷한 구석이 많은 나라다는 점이다.

특히 범죄소설이나 법정소설에서 그 느낌이 강한데, <히포크라테스 회한>에서 다루어진 에피소드들도 그런 의미에선 배경을 한국으로 고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 실정이 비슷했다. 사람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일까.

미쓰자키 교수의 부검보다는 수사콤비의 공조가 탁월했던 만큼 다음 권에서는 뛰어난 부검실력에 비중을 둔 에피소드들이 더 많았으면하는 바램을 갖고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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