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 PDE
이혜경 지음 / 북레시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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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 치유가 목적이 아닌 상담

정신과 의사 이수현에게는 따로 보관 중인 파일이 있다.

병원용인 하늘색 파일에도, 개인 연구용인 검은색 파일에도 똑같이 PDE라고 적혀 있지만 그 의미는 간호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Patient Diagnosis & Evalation(환자 진단 및 평가)가 아닌 Psychic Domination Experiment(심리/지배/실험)의 약자.

​

상담 중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남몰래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는 죽음의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

​

그리고 수현이 친 거미줄에 너무나 쉽게 걸려든 선영은 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결국 살해했다.

​

​

분명 수현은 결코 살인을 명령한 적이 없다

그저 죽음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그 사후의 풍경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선영에겐 범죄 이후에 대한 공포는 소멸하고

오직 죄에 대해 벌하는 행위로서의 차가운 계산만이 남을 것이었다

이 모든 지식은 선영이 인지조차 못 한 채 무의식의 밑바닥에 자리 잡아, 오직 그녀의 선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p203

​

​

선영 자신이 수현의 살인 유도 실험 세 번째 성공작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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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석을 살해한 전선영의 이야기는 <처방> 안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울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소설의 분위기를 장악해 버리면서.

고아로 자란 선영은 같은 대학 선배인 민석을 만나 결혼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수현의 병원에서 상담을 받을 무렵 결혼생활은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은 잘 안 변합니다. 특히 타인의 고통을 양분 삼아 사는 악인들은 더욱 그렇죠. 하지만 선영 씨, 지옥을 끝내는 방법이 꼭 본인의 소멸일 필요는 없어요."(p161)라는 위로 속에 담긴 악의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선영은 벼랑 끝에 서 있었고 등 뒤에 온 손이 두드리는 손인지, 떠미는 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두 목숨이 끊어졌다.

​

그에 비해 존속살해범 김지우의 이야기는 비중이 높진 않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독톡히 해낸다.

복역 중에 계속 편지를 보내오던 지우가 출소 후 아빠를 죽였고, 탐욕과 목적을 드러내며 수현을 찾아와 칼을 휘두른다. 자신이 심신미약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면서. 환자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다정하고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온 수현. 모든 판이 그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선영와 지우의 사건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으면서 소설의 후반은 갑자기 나타난 약혼녀 혜리의 주도하에 흘러가게 된다. 사랑하는 남자를 향한 강한 의심은 그녀를 코난급 추리녀로 거듭나게 하고 너무나도 쉽게 그의 가면을 벗겨내면서 철옹성 같던 수현을 무너뜨리고 만다.

​

<처방>은 가장 농밀한 지옥 속에서 점점 더 강도가 쎈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으로 전개된다기 보다는 다른 농도로 반전되는 분위기라 살짝 이질감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권선징악의 결말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오히려 소재가 강렬했던 만큼 그 결말 역시 지독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한니발급 캐릭터의 여운을 남긴다거나.


<처방 PDE>는'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은 반드시 선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진 이야기여서 흥미롭게 탐독했던 소설이다. 물론 책을 읽기 전부터 도덕적으로는 답이 정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소설적 허용 아래, 스토리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캐릭터 같의 케미가 얼마나 녹진할 것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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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이야기가 여러 독자에게 남기는 인상의 갈래는 다양하겠지만 '지배','자살','파멸'의 향이 짙었던 <처방>은 매혹적인 금기의 향으로 가득 채워져도 괜찮았을 법한 소설이라 살짝 아쉽다. 타인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 마리오네뜨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자만. 잔혹하게 묘사되는 범죄소설보다 이 대목이 더 무서운 건 어쩌면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이 될까봐서다. 있을 법한 사실이 몇 년 뒤 뉴스를 통해 진짜 사실로 들려오게 될까봐. 그정도로 소설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

사람을 자살하게 만드는 명령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에겐 생존 본능이라는 최상위 제어 장치가 있기 때문이죠

본능을 이길 수 있는 암시는 존재하지 않아요

P292

악인의 폭주를 내 인내심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며 끝까지 견디는 거에요

하지만 그건 인내가 아니라 방조입니다

자신을 해치는 존재에게 자비로운 건, 미덕이 아니라 자학일 뿐이죠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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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경계선 위에 서 있다 - ‘범죄 사냥꾼’ 이대우 형사가 퇴직하면서 남기는 마지막 수사 보고서
이대우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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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장인정신'을 검색해 보면,

'일 자체에 깊은 보람을 느끼면서 주체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는 태도와 의식을 의미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

예술가들에게 자주 붙여왔던 표현이지만 <우리는 모두 경계선 위에 서 있다>를 읽어보니 저자에게도 해당되는 단어 같이 느껴진다. 한 분야에서 40년을 버텨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게다가 저자는 '형사가 진행하는 수사를 종합예술'로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형사가는 직업군을 장인정신에 빗댄다는 건 살짝 이상해 보이긴해도 그 의미만큼은 일맥상통할 수 있을 듯 했다.





경찰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

정의와 불의 사이에 서 있는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봐왔기에 익숙한 그의 말과 표정 대신 이번에 책을 통해 본 그는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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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팀장이 되어 첫 발령받았던 서대문경찰서를 '서대문 레전드'로 만든 이대우 형사는 형사과, 사이버범죄팀, 지능범죄팀, 경제팀 등을 골고루 거친 베테랑이었고 '범죄 사냥꾼'으로 불리면서 3000여 명의 범죄자를 체포한 강력계 형사의 전설이었다.

​

<<다시 태어나도 경찰>>을 출간한 것 외에도 '경찰청 사람들','시티 헌터','도시 경찰','히든아이'등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출연하며 얼굴을 익혀온 그는 퇴직을 앞두고 옛 부임지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두 건의 미제 사건해결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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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가는 편한 길을 두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걷는 사람. 행동 하나에서도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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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안전을 걱정하는 긴장된 상태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늘 안심하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P112

해방 후 80여 년을 성장해온 역사깊은 전문 조직 경찰

제주 여성 실종 사건,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 등 잇따라 터지는 사건 속에서 경찰의 신뢰는 한없이 무너졌다. 강력한 총기 규제, 즐비한 CCTV, 뛰어난 과학수사기법...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무색할 정도로 "지금, 여기가 한국이 맞아?" 싶게 만드는 사건들이 뉴스를 장식하며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강해지던 시점에 '범죄 사냥꾼'이라 불리던 이대우 형사의 마지막 수사 보고서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을 읽게 되었다. 어쩌면 한 순간에 '불의'를 선택한 경찰보다는 사명감을 갖고 현장에서 뛰는 '정의로운' 경찰들이 더 많다는 희망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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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깊은 전문 조직 중 하나인 '경찰'로 재직했던 그가 책에 담은 내용들은

한국판 화차사건인 '보험금 존속 살해 사건', 끝내 미제로 남은 '홍은동 분식점 여주인 살해 사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결된 '다이아몬드 반지 도난사건','제주 노부부 살인사건','슈퍼 주인 살인사건' 외에도 가정폭력사건, 보이스피싱,로맨스캠, 성폭력 사건 등 다양했다. 범인이 잡혔지만 씁쓸한 경우도 있었고 미제로 남아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좀 특이한 건 시점이었는데, 검거를 목적으로 한 경찰의 시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아 잔혹한 묘사나 범죄 자체의 상세 설명이 덜해 읽는 동안 마음이 힘들지 않아 편했다. 객관적이면서 심플하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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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대우'에서 '시민 이대우'로 돌아온 그가 서문을 통해 언급한 것처럼 경계선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한 순간의 선택으로 아동 학대범이 될 수도 있고 사기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퇴직 후의 삶 또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안전한 영역으로 붙잡아주는 일을 하며 살겠다는 포부를 담은 전직 형사의 남다른 사명감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앞으로도 우리는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 것처럼.


퇴직 전 남은 60일 가량도 허투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던 뼛속까지 강골형사였던 그는 이제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과 경찰의 가교 역할을 해나가고자 한다.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범죄사냥꾼'도 추진 중이고, '형사를 체포하는 강아지'로 불리는 반려견 풍순이와의 일상도 유튜브에 담아내는 등 여전히 바쁘게 생활하면서.



나는 현장을 떠나지만 너를 쫓는 형사들의 추적은 계속될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완전 범죄는 없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p27


잘 숨어 있는 것, 호의를 가장해 다가오는 것,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익숙한 것들에 의해서 우리가 늘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17




책 속엔 인상적인 대목이 많았지만 경험은 퇴직하지 않는다 와 혼자만 잘 살 수 있는 사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문장은 강렬했다. 평범한 말도 누가 내뱉느냐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 걸까. 전직 경찰의 입에서 나온 두 문장은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에게 든든함과 경각심을 동시에 갖게 한다. 

​

<우리는 모두 경계선 위에 서 있다>가 다르게 읽힌 까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범죄를 분석하고 범인을 파헤치기보다 그들을 검거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점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은 마음', 애쓴 결과 그리고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했던 시선 덕분에 형사의 마지막 수사 보고서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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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데 왜 피곤할까 - 혈당 리듬을 되찾는 4주 실전 프로그램
양혁용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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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병원에서 "혈압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 '혈당'과 '혈압'에 급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겁을 주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래서 좀 더 희망적이면서 건강한 생활에 보탬이 되는 책을 찾다가 읽게 된 <정상인데 왜 피곤할까>에서는 혈당 리듬을 되찾는 4주 실전 프로그램에 관해 언급이 있어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인슐린 저항성은 생활 습관 교정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혈당의 급격한 변동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우리 세포는 손상을 입기 마련인데, 이렇듯 당뇨 합병증의 본질을 이야기하며 산화 스트레스의 개념, 인슐린 저항성, 제 2형 당뇨병으로 진행되는 과정 등을 짧은 글과 그림으로 쉽게 보여준다. 


굳이 '탄수화물 민감도 자가 진단법'을 체크해보지 않아도 나의 혈당 타입이 '반응형'인지 '고정형'인지 내용만으로도 알 수 있었는데 지표로 정리된 요인들에 다 해당되는 것 같아 책을 펼친 초반에는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정상인데 왜 피곤할까>는 물고기를 던져주는 책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글루코핏 회원들의 성공사례들을 참고삼아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잡한 식단도 없고, 힘든 운동을 권하지도 않아 마음만 먹는다면 루틴만들기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인슐린 저항성은 생활 습관 교정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이 힘이 된다. 



공복 상태에서 먹는 과일은 건강식이 아니라

혈당 스파이크의 주범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뿐 아니라,

'언제','어떤 순서로','무엇과 함께' 먹느냐입니다

p29



혈당은 숫자가 아닌 리듬이다


책은 '혈당 리셋'의 핵심을 하루 24시간 중 17시간 정도를 건강한 혈당 범위 안에서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혈당을 숫자가 아닌 리듬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강조한다. 공복 혈당이 정상이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높은 수치는 약만 잘 먹는다고 해결될까? 처럼 평소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은 파트 1 -3장에서 확인하고, 이어진 파트2에서는 식전 방어템으로 활용하기 좋은 것들과 식후 15분 운동의 중요성까지 체크해본다. 


파트 3에서는 혈당 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예시들이 등장하는데, 

좋은 지방 vs 나쁜 지방, 혈당 관리하며 먹기 좋은 과일과 주의해야할 과일들, 혈당이 잘 잡히는 간식, 영양제 섭취 루틴, 도움되는 근력프로그램이 실천하기 쉽게 도표화 되어 있다. 부록으로 실린 레시피들과 함께. 


계획 세우는데 소질이 없는 파워P형 인간에겐 무척이나 고마운 장이 아닐 수 없었다. 쉽고 간단하고.... 




국내 최초 CGM 기반 혈당관리 서비스 <글루코핏>대표 양혁용 원장의 <정상인데 왜 피곤할까>는 혈당 관리가 필요한 시대,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데 참고하기 좋은 책이다. 4주 실천 프로그램으로 혈당의 리듬을 되찾는 일은 이제 더이상 미뤄둘 일이 아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면, 책을 읽은 후엔 '한 번 해 볼만 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달까. 


건강을 위해 제시된 여러가지들을 하나씩 해나가다보면 24시간을 건강하게 잘 조율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당장 1주차 기초다지기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당장 끊을 수 없는 것들은 줄여나가면서 4주차까지 단계별로 실천하다보면 정상 리듬을 유지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으면서.


 작년부터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보다 건강관련 책들을 가까이하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와의 관계보다는 나 자신과 잘 지내는 일에 힘 쓸 나이가 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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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력 - 나를 지키는 가장 똑똑한 까칠함
필로소피랩 지음 / 각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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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책 <무례력>은 저자의 이름 석자 대신 '콘텐츠 연구소'라 쓰여져 있다.


연구소라는 표현 때문일까. '전략적으로 무례해져라'는 책 띠지 문구조차 똑똑해 보인다.

​

나를 지키는 가장 똑똑한 까칠함이라니!!!

​

이건 뭐 읽지 않고 지나치기 힘든 문장이다. MBTI에 T의 지분이 1%도 없는 나에게 할 말은 하면서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관계의 기술은 푸우의 꿀단지마냥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


목차

호의는 왜 권리가 되었나

당신의 위치가 당신의 대우를 결정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선을 긋는다

상황별 무례력 실전 템플릿

무례력의 완성, 그 후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된 책의 두께는 얇다.

크기도 문고판 사이즈다. 가지고 다니면서 이동 중에도 한 번씩 펼쳐볼 수 있고, 간략하면서도 적은 쪽수는 독서의 피로감도 덜어낸다.




우리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집중력, 인내심, 감정 조절 능력은 무한하지 않다

누구의 말까지 신경 쓸지, 어디까지 맞춰줄지,

어떤 관계에 내 에너지를 쓸지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힘을 빼앗긴다

P9


무례력

타인의 기분과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거리와 태도를 정하는 힘


무례력 자가 진단 테스트 pare 2 : p58 ~ p105


짧은 예시가 있는 10개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a/b/c/d 중 해당 사항을 선택한 뒤 가장 많이 나온 알파벳을 확인하면 된다.

​

다행스럽게도 '전략적 무례력자'의 결과를 얻었지만 '호구'의 숫자도 비슷하게 나온 걸 보면

상황에 따라 극과 극의 대응방식을 택해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

재미있었던 '무례력 자가 진단 테스트'는 내가 어떤 유형인지 알아보는 재미도 있지만

호구/민폐/빌런/전략적 무례력자와 마주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 또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유익했다. 상대에 따른 대처법까지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은.

​

<무례력>은 이론이 살짝 곁들여진 실천편처럼 적혀 활용도 또한 매우 높았다.

관계가 걸러지는 것은 손해가 아니지만 축소되는 인맥에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나?'라는 회의감이 들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어느 새 회사 내에서 만만한 직원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서글픔이 몰려올 때, 가족 내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될 때 조용히 펼쳐보기 좋은 멘토북이다.

​

건강하게 까칠해질 권리를 보장해주는 마음건강서랄까.




무례력은 공격이 아니라 항체다 p37

무례력은 지식이 아니라 근육이다 p167

무례를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받아치는 게 아니라

동요하지 않는 것 (p117)이라고 했던가.

​

책 속에 등장한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 /조나단 프리드먼과 스콧 프레이저','시그널링 이론 /마이클스펜스','벤저민 플랭클린 효과','거절할 때 꼭 바꿔야할 3가지 언어습관' 등에 관련된 내용도 좋았지만 이처럼 명언같이 기억될 짧은 문장들이 머릿 속에 더 진하게 남겨진다.

​

예전에 비해 제법 까칠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먼 듯 싶다.

책을 읽다 보니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보이고.

​

그래서 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단단함을 보완하려 한다. 포스트잇이 하나씩 떼어지고 종국엔 올클린될 때까지 손때 묻혀가며 읽을 예정인 <무례력>. 지식에 관한 책이 아니므로 몇 번을 다시 읽든 지루해질리가 없다. 그래서 나를 지키는 가장 똑똑한 까칠함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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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판사, 나쁜 판사
류기인 지음 / 펜타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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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을 어느 특별한 기록과 함께 보냈다.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류기인 부장판사가 쓴 <착한 판사, 나쁜 판사> 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그는 단일 재판부 기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년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판사이자

'걷기학교', 시집 <이제는 집으로 간다>, '북콘서트' 등의 행보를 보여준 특이한 판사다.

​

사실 요즘 뉴스는 좀처럼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않는다.

소년 범죄, 솜방망이 처벌, 심신미약, 학교폭력, 촉법소년, 반성하지 않는 태도... 이렇게 이어진 다음 세대, 괜찮을까? 라는 걱정과 우려섞인 시선으로 세상을 저울질 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청소년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접하는 순간만큼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

하지만 <착한 판사, 나쁜 판사>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을 다듬게 돕는다.



우리는 아이가 저지른 행동만 보고 처분을 정하지 않는다

p23



'어리다'로 끝나선 안되는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쉽게 유혹에 흔들리는 아이들, 법정을 벗어나면 다시 똑같은 환경으로 돌아가야하는 아이들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채 2차, 3차 되돌아오는 아이들만 탓할 수 있을까. 환경이 불우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니다. 물론 잘못을 행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판사인 저자는 누군가의 남은 인생을 결정짓는 순간 '선처'하는 판결이 [반성]으로 돌아올지, [학습]으로 돌아올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판결문 한 줄의 무게가 한 권의 에세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생에서 좋은 어른 한 명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나는 그동안 주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어른이었을지... 자연스레 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

누군가의 성장,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닌 생각하게 만드는 에세이는 오랜만이었다.

읽는 속도는 더뎠으나 '좀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픈 마음'을 일깨우기 좋은 책이었고, 몰랐던 지식도 일부 채워져 유익했다.





책의 서문에서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은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한 판사의 진심'이라는 표현을 썼다.


<착한 판사, 나쁜 판사>가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재비행을 막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가장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애쓴 판사의 고뇌가 담겨 있어 무엇보다 감동스럽다. 나이를 떠나 범죄수법은 나날이 악랄해지고 사이코패스는 이제 너무나 흔한 것 같이 보여지지만 판결의 순간까지 고민하고 그 이후까지 살펴보는 법조인이 있어 아직은 '판사'라는 직업군이 AI로 대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반성하지 않는 태도의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와는 달리.



아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잘못을 가볍게 넘기지도 않는 것

p5

​


특히 "소년법정에서 내려지는 처분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가볍든 무겁든, 그 처분 안에는 아이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라는 대목의 울림이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벌을 받는 입장에선 중벌을 내리는 판사는 '나쁜 판사', 선처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좋은 판사'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선 반대가 된다. 가해자의 상황만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책의 제목은 다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인 류기인 판사가 바라는 아이들의 태도변화까지 더해져.





창원소년부에서 시작된 '걷기학교'에서 보여진 주된 변화는 '대화'와 '소통'이었다. 함께 걸으면서 한 올씩 풀려진 말들은 그 내용이 길지 않아도, 질문으로 점철되어도 변화의 시작같아 뭉클하기도 했다. 글로만 읽었는데도 그랬다. 법을 집행함에 있어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유통성을 발휘해서 판단해야할 때가 있을 것이다. 타인의 내일을 결정짓는 그 순간을 함부로 맡길 수 없기에 적어도 '판사'라는 직업군엔 남다른 사명감이 더해졌으면 했다.

​

가해자의 상황만 감안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까지 어우를수 있는 판결을 원할 때는 더욱 그런 마음이 들곤 했다.

​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 사과한 가해학생과 '우리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는 마음을 담아 더 힘든 친구들을 위해 합의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피해학생과 그 부모의 일화는 아이 하나가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었다. 양쪽의 아이들이 다시 건강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따뜻한 첫걸음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소년부 업무를 하면서 아이의 잘못이 먼저 보였다는 고백.

재판 한 번으로 아이의 삶이 달라지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현장의 소리를 책을 읽는 우리는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법조항이 가득하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한 권이지만 이 책은 판결의 무게를 견디면서 걸어온 한 법조인의 기록이자 좋은 어른으로 그 걸음을 디뎌온 사람의 지난 발자국이 담긴 이야기다.

​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은 안전하다.

소년부 판사의 솔직한 이야기는 그 반대편에 서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피해자든 가해자든) 좁은 대한민국에서 한 다리, 두 다리, 세 다리 건너면 결코 무관하지 않을 연결고리가 발견될 우리 모두의 사연 같아서 절대 가볍게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디캣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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