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2 펭귄클래식 13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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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이나 [지구속 여행]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들이다. 그와 마찬가지 선상에 두고 [파우스트]를 읽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틀어져버렸다. 파우스트의 행동을 공감할 수 없는 지점부터였다. 은교에서 늙은 작가가 은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욕망에 얼룩진 남자의 그것이 아니라 젊은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 사람의 것이었기에 순수해보였다. 하지만 젊어진 파우스트의 행보는 그렇지 못했다. 1권에서 목맸던 그녀는 어쩌고 이번에는 헬레네를 탐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이 그렇게 쉽게 마음에서 지워질 수 있는 감정이었던 것일까.

 

독일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칭송되는 [파우스트]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악마에게 영혼은 판 파우스트가 점점 파괴되어가고 욕망이 이끄는대로 살면서 과연 행복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첫 시작에서 신은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파우스트라는 인간이 신을 얼마나 잘 섬기고 숭고하게 살아온 인간인지 이야기했었다. 그런 그가 메피스토 같은 악마에게 휘둘리며 자신이 살아온 전 생애의 숭고함을 한순간에 잿떠미로 만들어 버리는데 왜 아무 도움을 주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백성인데.......! 물론 마지막에 파우스트는 면죄받았다. 그리고 메피스토는 공들였던 재물이 사라지자 땅을 치고 후회했다. 권선징악적 결말에 익숙했던 내게 [파우스트]는 다소 얼떨떨했던 작품이었다. 대작이고 명작이며 읽는 내내 속도감을 붙인 재미난 작품이었으나 젊음을 얻어 기껏 한다는 것이 여인들의 뒤꽁무늬나 쫒아다니며 연애만하는 것도 그러했고 자신의 판단이 아닌 악마의 휘둘림과 속삭임에서 놀아만 나는 것도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파우스트는 일생을 숭고하고 고고하게 살았으며 높은 학문적 경지에 까지 올랐으니 다시 젊어졌을때엔 그를 제외한 다른 무언가를 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악마의 유혹이 있어도 그 유혹은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이끌어내 증폭시키는 것이라 할때 파우스트에게 다시 젊어지면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을 역시 아름다운 여인과의 연애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괴테는 이 작품을 수없이 고쳐가며 전생애를 바쳐 완성해냈다. 그 어떤 작가도 한 작품에 이만큼 정성을 쏟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작품이기에 그저 재미있게 읽기만 하고 싶었으나 또 주저리주저리 생각을 담아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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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 펭귄클래식 13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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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괴테의 글에 대해 감히 그 어떤 긁적거림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어린시절 보았던 고전은 그 느낌 그대로, 성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작품들은 그 나름대로 감동을 남기고 사람과 운명,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괴테라고 하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가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데, 그의 인생 70년동안 탈고하고 완성해온 대작이 파우스트라 나는 이 소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옥을 묘사하며 다소 무겁게 전개 되던 '신곡'과 달리 파우스트는 악마가 등장하지만 그의 유혹은 누구나 빠질 수 있을만큼 달콤하다. 아마 진시황의 귓가에 속삭였더라도 시황제는 나라를 다 넘겨주고 젊음과 불로장생을 요구했으리라......나이들어 존경받고 많은 것들을 이룬 이들에게 젊음이란 그 모든 것을 주고도 획득하고 싶은 기회일테니.......!

 

얼마전 미래를 배경으로 한 한 소설 속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서 젊은 몸을 렌트하는 부유한 노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분노를 금치 못했었는데 자라나는 새싹을 잘라내고 노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세상을 파멸로 이끌고 가는 대목에서 그만 감정선이 폭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한국영화도 있었다. 노인이 젊은이에게 내기를 걸었고 젊은이가 내기에서 지자 그는 그의 젊은 몸을 요구했는데 다시 자신을 되찾고자 애쓰던 신하균 주연의 영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어질 수 있다는 소재는 이토록 매력적인 소재인가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젊어졌지만 메피스토바르토로 인해 더 불행해져야만 했다. 그가 그레트헨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죽고 친오빠가 죽어나갔다. 그녀 역시 아이를 낳아 빼앗긴채 마을 사람들의 처벌만을 기다리며 갇혀 있다.

 

마치 희곡이나 대본처럼 대사와 약간의 지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로 인해 한 편의 극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 신선했으며 1권이후 2권에서 이어질 극의 비극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오늘밤은 밤잠을 설치게 될 것만 같다. 한 여름밤에 괴테의 파우스트와 함께 하는 느낌, 생각보다 낭만적이다. 아이스커피 한잔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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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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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에서는 신분세탁을 위한 살해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서는 자신의 독특한 취미생활을 위해 살해를 일삼는 주인공들을 만났다면 피에르 르메트르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사건 속으로 몰아간다.

 

알렉스 프레보스트는 작품 속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나탈리, 레아, 줄리아 등의 여러 이름으로 변신하면서 이전과 다른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여자.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우연을 가장하며 독자를 속이는 여자. 이 여자가 어느날 길거리에서 납치 된다. 그것도 50대 남자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면서까지.

 

눈을 떴을때 여자는 발가벗겨져 몸을 펼 수 없는 아주 작은 나무 궤짝에 담겨 공중에 매달리는데 흡사 그 모습이 꼭 새장 같아 그녀는 갇힌 한마리의 새가 되어 버렸다. "니가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납치의 목적이라고 말한 납치범이 추격하는 경찰을 피하다 죽어버린 것도 모른채 알렉스는 공중에 매달려 지난 삶이 아닌 남은 삶을 위해 쥐와 사투를 벌인다. 자신의 피를 받쳐가며.

 

그런 그녀를 찾기 위해 투입된 형사는 유명화가의 아들이자 임신 8개월차의 아내가 납치 되었다가 살해된 채로 발견된 불행한 가정사를 지닌 카미유 베르호벤이다. 그는 키가 145cm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면 그의 단신인 키 따위는 머리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그에게 맡겨진 의뢰는 생각보다 복잡하면서 미묘한 것이었으므로.

 

알렉스를 납치한 장 피에르 트라리외는 자신의 아들 파스칼을 살해한 여자를 찾아 헤매다가 알렉스를 발견했고 피해자인 알렉스가 여러 남자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인 것이 밝혀지면서 베르호벤은 그녀의 과거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거 속에 또 다른 반전이 숨겨져 있다.

 

두꺼운 소설의 내용을 눈으로 따라 읽으며 급해지는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사건과 반전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대다보니 어느새 나는 알렉스라는 여자를 살인범이 아닌 내 이웃과 다름없는 한 여인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열살바기를 성푝행하고 매춘을 알선하고 종국엔 온몸을 화학약품으로 망가뜨린 걸로도 모자라 살해당해야했던 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 그녀가 그렇게 이용당하고 버려질만큼 세상이 잘못했는가? 를 묻게 만들었고 세상이 그녀를 그렇게 몰아가기 전에 무엇을 해 주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알렉스는 납치범에 관한 이야기도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도 가정내 폭력에 관한  이야기도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포괄된 우리 사회 전반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읽는 내내 뜨끔뜨끔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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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목을 친 남자 - 프랑스혁명의 두 얼굴, 사형집행인의 고백
아다치 마사카쓰 지음, 최재혁 옮김 / 한권의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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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하면 머리를 산발하고 지저분 하게 생긴 뚱뚱한 남자가 몇번의 춤사위 끝에 큰 칼로 사람의 목을 "댕강"잘라내는 모습이 연상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사극을 열심히 본 까닭에 그 외의 모습은 왠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양의 그 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다만 삼총사를 읽으며 미라디가 사형집행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에서 우리네와 좀 다른 사형집행이겠거니 생각해 봤을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양의 사형집행인 또한 업을 대물림한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서양이나 동양이나 할 것 없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직업은 천대받았다. 처음부터 물려 받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사형집행인의 딸이기에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사형집행인이 되어 버린 조상탓에 대대로 사형집행관으로 살아야했던 앙리 상송. 그는 실존 인물이며 프랑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점인 루이 16세 말기를 살아낸 인물이었다.

 

그 격동의 시기엔 귀족이든 일반인이건 할 것 없이 어수선한 시절에 대한 연민과 고뇌가 있었을테지만 [왕의 목을 친 남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느꼈을 고통과 회의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가장 유명한 사형집행인이었던 앙리 상송은 루이 16세 부부의 처형을 도맡았던 인물로서 끝까지 왕가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국왕부부에 대한 회고도 실려 있다. 이부분은 역사와 다르지만 역사는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마지막은 숭고하면서도 단아하게 비춰진 것 같다.

 

또한 의사들이 고안했다는 기요틴 또한 앙리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듯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희대의 단두대 역시 처음에는 사형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면서 만들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마지막 숨을 앗아가는 도구가 사실은 그들의 목숨을 단 한 칼에 끊어 고통을 감해주기 위해서라는 내요잉 포함되어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삶과 죽음은 이렇듯 종이한장 차이면서도 잔인함과 인정 사이를 오가고 있기도 했다.

 

비교했을때 동일 직종의 타인보다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가서도 아니고 가장 매력적이어서도 아닌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목숨을 죄다 앗아야만 했던, 그래서 더 유명해진 앙리 상송의 고뇌는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어서 더 공감이 갔다. 사실 현대의 간수들 역시 사형집행 이후에는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떠안는다고 한다. 그들의 고통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직접 그 목숨을 끊어야했던 과거의 사형집행인들 역시 스트레스와 죄책감 그리고 공포를 맛보며 매일매일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단 한번도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고 그들의 직업이 갖는 어려운 점을 상상해 본 일이 없기에 앙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 그리고 이후의 사형제도에 이르기까지의 내용들은 인간적으로 고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충격적이기도 했다. 고통분담을 위해 잠시 상상해 보는 것 만으로도 도망치고 싶을만큼의 직업군이 바로 그의 일이 아니었을까.

 

과연 내게 맡겨진다면 나는 과거 역사속에서 그 일들을 행할 수 있었을까. 100% 도망가고 말았을 그 일들에 대해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 제발 더이상 상상하는 것만은 멈추어지기를 기도했다. 재미있게도 프랑스인이 아닌 일본인의 손에 의해 쓰여진 [왕의 목을 친 남자]는 색다른 역사 읽기, 직업 읽기, 사람읽기 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고 이 특이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줄지 고민하면서 나는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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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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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에서는 자신의 현재를 위해 과거를 지우고 그 과거 속 자신의 아이까지 죽여야했던 한 엄마의 잔혹성을 드러냈다면 [디너]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부모의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다. 전 유럽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 헤르만 코흐의 장편소설은 가장 즐겁고 편안하게 즐기는 시간인 디너가 사실은 수면 위의 가장된 평화일뿐 그 이면에는 부도덕과 비도덕까지 모두 갖춘 인간들의 대화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차기 수상감인 한 유명 정치인은 아들과 딸에 입양한 아이까지 있는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사실 겉표면에 불과한 행복이며 그의 동생부부 역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지만 그들 역시 망나니 아들의 행동을 인정하지 못한 채 평화를 가장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무조건 믿는 부모는 한국에도 많다. 우리 아이는 안그런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잘못된 부모의 사랑이 그들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고 어긋난 도덕적 잣대를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 것이 아닐까.

 

로만 부부 역시 그렇다. 동생쪽 로만은 아들을 보호하려는 나머지 양심선언을 하고 수상후보에서 물러나려는 형을 저지하려하고 아들의 학교에 찾아가 교장을 구타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 정도 되면 이 부모는 새로운 형태의 사이코 패스가 아닐까.

 

부모들이 수상 후보인 형 로만을 저지하는 사이 아이들은 노숙자를 폭행하고 죽인 그들의 범죄를 세상에 알리려는 입양아를 어른들의 묵인하에 처리하기에 이르른다. 부모가 살인의 공범이라니.....! 막장을 떠나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류에 대한 최고형이 사형을 넘어서기를 바라기는 처음인데 내가 판사라면 이들 로만가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싶고 이웃이라면 절대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보호 받은 아이들이 죄책감 없이 어른이 되고 남은 삶을 산다면 그들의 인생은 뻔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도덕적 잣대가 무너진 이상 방해가 되는 사람들에 대한 제거를 당연시 여기는 어른들 만들어내는 부모라니....!

끔찍하기 이를데 없었다.

 

네덜란드 국민작가의 대표작인 [디너]는 가장 편안한 시간을 가장 잔인하게 만들며 전세계를 또 다른 공포로 몰아갔는데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바로 이때 써야하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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