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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 속으로 ㅣ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한번 공포를 경험한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엘리자베스 헤인스의 [어두운 기억 속으로]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범죄소설의 경우, 범인을 잡는 것에서 종영되거나 공포소설의 경우 그 공포가 해소되는 시점에서 끝맺음된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헤인스의 소설은 리얼을 겸비한다.
경찰 정보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작가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직업적 경험을 살려 범죄를 겪은 이후 공포가 어떻게 한 여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마치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현관문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집안의 모든 것들을 체크하고도 불안에 떠는 여자, 캐시. 그녀의 불안증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이해와 애잔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고 이해의 시점에서 "리"를 만나는 순간. 캐시와 함께 공포를 가슴에 떠안고 소설을 읽게 만든다.
추리소설도 아닌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소설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이 소설은 그랬다. 아마 캐시가 여성으로 그려져 있고 그녀가 겪은 일이 비단 서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시 되고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 느껴졌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기에.
종국엔 그녀의 친구들까지 캐시에게서 등돌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 "리". 마치 하늘에서 그녀를 위해 준비해준 남자같던 그가 연인이 되면서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남자로 돌변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데려다놓았다가 데려오곤 하던 그는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르는 정도의 폭력은 가소롭다는 듯이 대하는 남자였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도와주지 않았다. 그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법정에 섰을 때도 그녀는 불리했다. 모든 폭력의 증거들이 그녀의 "자해"로 돌려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를 돌보려했던 자상한 남자로 자신을 꾸며낸 "리"의 가증스러움에 치를 떨어야했다. 매력적인 남자로 그려진 "리"가 공포스럽고 징그러운 대상이 되는 일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를 감옥에 보내기까지의 2003년과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캐시의 현재인 2007년이 교차하면서 시작되는 소설은 처음보다 중반을 지나 결말로 갈수록 몰입하게 만들고 그의 출옥으로 공포가 극에 달하는 순간 숨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공포.
"사랑해.
언젠가 다시 자유로워지면 당신을 찾아갈 거야."
라는 그의 메시지.
업이 계속되는 카르마의 고리처럼 그의 집착은 끝이 없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녀를 놓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소설은 현실의 일처럼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져 읽는 내내 공포와 불안을 함께 느끼게 만들었지만 이런 사건을 인생에서 겪고난 여성에게 있어 "극복"이라는 단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준 좋은 본보기가 되는 소설이기도 했다.
사람의 겉모습처럼 속도 훤히 잘 보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가 보여주는 것만큼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모두가 극찬하던 "좋은 사람"의 뒷모습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밤을 불안으로 지새야하는 것일까.
소설이 너무 현실 같아서 도리어 불안해져 버렸다. 그 어느 뉴스보도보다 사실감 있게 와 닿은 소설 한 권 [어두운 기억속으로]는 2012년이 지나도 결코 잊혀질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