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조은별 그림 / SISO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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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속 '서소'씨는 남자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에 휘말려 4개월간 정직 상태고, 사귄 지 2 주만에 상견례를 거쳐 결혼했던 여자와는 이혼했다. 현재 망원동에서 강아지 꿀단지와 함께 살며 근처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반려견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매가 추억이 가득한 카페를 접던 날까지.


회사를 다니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첫 장부터 고백한 서른 여덟 서소씨의 출근 시계는 멈춰 있다. 이 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건 책을 읽어나가는데 중요한 쟁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는 갑자기 맞이하게 된 휴식같은 시간을 그가 어떻게 보내게 될 지, 근사한 일이 생기거나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건 아닌지 슬쩍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산문집'이라고 적힌 표지의 장르와 다르게 '소설'인듯 '에세이'인듯 어느 시점부터는 헷갈리기 시작했으며 '디디'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부터는 로코 or 스릴러로 장르로 변환되나? 복합장르인가 싶기도 했다.


누군가의 4개월이 그것도 사회적으로는 회사에서 질책을 당했고, 개인적으로는 '이혼'이라는 큰 일을 겪은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재미있게 펼쳐질줄 몰랐다. 카페 B-망원동&카페에서 맺어진 인연들-카페 사장 자매, 이렇게 동일하게 일상은 바퀴돌듯 돌고 있는 것 같지만 이야기는 지루할 틈도 주지 않으면서 늘어지지도 않는다.



중간중간에 가족들 이야기도 등장하고, 회사 다니던 시절의 에피소드들도 현재와 교차된다. 절대 유출하면 안되는 서류를 거래처에 팩스로 보내놓고 발을 동동 굴렀을 서소씨와 동기 신입사원들의 얼굴이 글로만 읽어도 사진이 실린 것 마냥 떠올려진 건 나 역시 서툰 신입 사원 시절을 거쳐봤기 때문일테고, 앞으로 몇 십년을 '오늘 같은 내일'로 출근할 생각에 몸서리를 치는 대목에선 3/6/9년 차 마다 마주하던 퇴사병이 떠올려져 묘하게 공감이 되어 마치 교집합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비록 <회사원서소씨의일일>은 출근하지 않는 동안의 에피소드를 나열한 에세이지만 반대로 힐링이 필요한 '직장인'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그간 지인들이 에세이추천, 소설추천을 해 달라고하면 그들에게 도움될만한 책들을 골라주곤했는데, 생각해보면 꼭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한 순간 몰입해서 읽으면서 지금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글도 책추천할만한 좋은 내용이 아니었을까. 인위적인 감동이 더해지지 않아도 책의 내용이 따뜻하게 느껴진 건 반려동물인 강아지가 등장하고, 새롭게 알게 된 이웃들과도 소통하면서 서서히 치유되는 것 같아 보여서일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감동 신간에세이로 기억에 남겨졌겠지만 갑자기 '김디디'라는 여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재미는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


그가 쓴 블로그 글이 재미있다며 메일을 보내온 발신인 '김DD'. 가명같은 본명의 그녀가 페이스타임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왔고 자주 통화하면서 그들은 연인 비스무리한 상태가 되어간다. 조직폭력배의 딸과 결혼해서 한량으로 살아가는 남자에게 지원과 감시를 동시에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연의 그녀는 10억을 갚으면 남자와 이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남자와 디디의 관계는 소비할 순 없지만 소유하고 있는 상태이며 서소씨와 디디의 관계는 계속 통화하며 마음을 주고 받는 사이지만 만날 순 없는 사이다. 아, 뭐지? 이 여자의 정체!!!


읽는 나도 궁금할 지경인 디디의 정체를 주인공 서소씨가 시원하게 확 밝혀주면 좋았을텐데....아쉽게도 그는 실패했다. 서소씨의 감정이 이입되어 함께 디디라는 여자가 한 말들이 다 사실인지, 평생 만날 수 없는 건 아닌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그 사이 앞서 읽었던 카페 자매 이야기나 비뇨기과에서 겪었던 일, 실패했던 연애, 퇴사한 멘토와의 만남 등등은 까맣게 지워졌다. 그만큼 알고 싶었는데 결국 기회는 오지 않았다. 책 소개의 어디 즈음엔 분명 '평범한 서른여덟의 회사원 서소씨의 이야기'라고 적혀 있지만 다 읽고나니 서소씨의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고 독특했다.



P364 선택이 쌓여 인생이 되었다

라고 했던가. 서소씨가 고른 선택지들은 무난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센세이션하다거나 일탈적인 것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중간한가? 그렇지도 않았다. 다만 계속 궁금하게 만든다. 뒷 장을, 이야기를, 마지막을.



<<레뷰 도서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지원받아 읽어본 후 올리는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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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1-10-2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같은 에세이인가 봅니다.
재미있겠네요^^

마법사의도시 2021-11-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하면서도 읽으면읽을수록 계속 궁금해져서 빠른 속도로 읽게된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