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목을 친 남자 - 프랑스혁명의 두 얼굴, 사형집행인의 고백
아다치 마사카쓰 지음, 최재혁 옮김 / 한권의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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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하면 머리를 산발하고 지저분 하게 생긴 뚱뚱한 남자가 몇번의 춤사위 끝에 큰 칼로 사람의 목을 "댕강"잘라내는 모습이 연상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사극을 열심히 본 까닭에 그 외의 모습은 왠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양의 그 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다만 삼총사를 읽으며 미라디가 사형집행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에서 우리네와 좀 다른 사형집행이겠거니 생각해 봤을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양의 사형집행인 또한 업을 대물림한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서양이나 동양이나 할 것 없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직업은 천대받았다. 처음부터 물려 받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사형집행인의 딸이기에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사형집행인이 되어 버린 조상탓에 대대로 사형집행관으로 살아야했던 앙리 상송. 그는 실존 인물이며 프랑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점인 루이 16세 말기를 살아낸 인물이었다.

 

그 격동의 시기엔 귀족이든 일반인이건 할 것 없이 어수선한 시절에 대한 연민과 고뇌가 있었을테지만 [왕의 목을 친 남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느꼈을 고통과 회의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가장 유명한 사형집행인이었던 앙리 상송은 루이 16세 부부의 처형을 도맡았던 인물로서 끝까지 왕가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국왕부부에 대한 회고도 실려 있다. 이부분은 역사와 다르지만 역사는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마지막은 숭고하면서도 단아하게 비춰진 것 같다.

 

또한 의사들이 고안했다는 기요틴 또한 앙리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듯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희대의 단두대 역시 처음에는 사형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면서 만들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마지막 숨을 앗아가는 도구가 사실은 그들의 목숨을 단 한 칼에 끊어 고통을 감해주기 위해서라는 내요잉 포함되어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삶과 죽음은 이렇듯 종이한장 차이면서도 잔인함과 인정 사이를 오가고 있기도 했다.

 

비교했을때 동일 직종의 타인보다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가서도 아니고 가장 매력적이어서도 아닌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목숨을 죄다 앗아야만 했던, 그래서 더 유명해진 앙리 상송의 고뇌는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어서 더 공감이 갔다. 사실 현대의 간수들 역시 사형집행 이후에는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떠안는다고 한다. 그들의 고통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직접 그 목숨을 끊어야했던 과거의 사형집행인들 역시 스트레스와 죄책감 그리고 공포를 맛보며 매일매일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단 한번도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고 그들의 직업이 갖는 어려운 점을 상상해 본 일이 없기에 앙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 그리고 이후의 사형제도에 이르기까지의 내용들은 인간적으로 고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충격적이기도 했다. 고통분담을 위해 잠시 상상해 보는 것 만으로도 도망치고 싶을만큼의 직업군이 바로 그의 일이 아니었을까.

 

과연 내게 맡겨진다면 나는 과거 역사속에서 그 일들을 행할 수 있었을까. 100% 도망가고 말았을 그 일들에 대해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 제발 더이상 상상하는 것만은 멈추어지기를 기도했다. 재미있게도 프랑스인이 아닌 일본인의 손에 의해 쓰여진 [왕의 목을 친 남자]는 색다른 역사 읽기, 직업 읽기, 사람읽기 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고 이 특이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줄지 고민하면서 나는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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