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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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처]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랬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지? 하고. 전개도 전개려니와 그 전개에 따라 정신없이 읽어대고 있는 정신빠진 독자였던 나의 모습에도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몰입. 책은 나를 그런 지경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제프리 디버 식의 전문성을 동반한 꼼꼼한 스토리텔링도 아니었고 온다리쿠 식의 몽환성이 뒤섞인 것도 아니었으며 요 뇌스뵈처럼 공포스러움을 동반하지도 않았는데 저 산꼴 위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려와 종국엔 큰 강을 이루듯 더글라스 케니디의 글은 그리 읽혀졌다.

 

그래서 후작들을 꾸준히 읽어댔는데 [모멘트],[위험한 관계],[파리 5구의 여인]까지 읽으면서 "어라?왜?"라는 의문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템테이션]을 단숨에 읽으면서 전작만한 후작이 없는 작가로 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안타까운 결론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독자가 책을 읽는 기분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내게 재미있으며 그 이야기는 최고로 기억되고 내게 실망스러우면 작가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세간의 평과 상관없이. 독자의 잣대는 그래서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템테이션]까지 읽고나니 나는 도리어 [빅픽처]가 그리워졌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생각지도 못했던 장대의 높이를 넘어놓고 그 이후부터는 자신의 한계높이 언저리에서 맴도는 높이 뛰기 선수 같게 느껴졌다. 내게는.

 

물론 템테이션은 훌륭한 작품이다. 다만 더글라스 케네디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져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자라 한국적 정서에 길들여진 내게 미국적 블랙 유머나 정서를 100% 이해하라고 요구하면 그건 무리일 것이다. 그런 시트콤을 한 편 본 것처럼 재미를 그저 재미로만 흡수하지 못하게 만드는 저해 요소가 페이지 어딘가에 스며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불쌍한 인물이다. 11년 만에 가난을 딛고 성공했으나 이혼하고 샐리와 함께 함으로써 그간 고생했던 가족을 지켜내지 못했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을 한껏 충족시켜주는 헐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순진하게도 이용당하며 버려졌다. 다행스럽게 인맥이 부실하지는 않아 재기에 성공할 수는 있었으나 그 통쾌한 복수 뒤에 그에게 남겨진 것은 돈 외에는 없었으니 그마저도 허무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겠다. 이혼한 부인은 딸과 함께 살면서 다정한 새 남편을 찾았고 힘든 순간 자신을 외면했던 샐리와는 쫑났으며 이해할 수 없이 갑자기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 마사도 "사랑했다 하지만 남편 곁으로" 를 선언했다.

 

데이비드의 성공은 "일장춘몽"이 되어 거품욕망의 결과를 우리 앞에 내어놓는데 이는 파리 5구의 여인에서 "그 여자"가 귀신이다라고 밝혀진 순간보다 더 한숨짓게 만들어 버렸다. 아무리 헐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어머니라도 팔아야한다지만 성공을 위해 이제껏 이뤄왔던 자신의 삶을 잊고 탑승한 남자의 인생이 이토록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변해버리다니.......!아메리칸 드림은 자국민에게조차 너그럽지 못한 것인가 싶어졌다.

 

그래서 그의 막판 복수가 그리 통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나보다. 인간이기에 그의 욕망과 선택은 이해되었으나 감정과 몰입은 되지 못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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