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Gonger- Das Böse vergisst nie Gonger, 2008

  감독 - 크리스티안 티테

  출연 - 다리오 스탄케이츠, 세바스찬 스트뢰벨, 테레사 바이스바흐, 다니엘 질만



  ‘곤져’란 개펄에서 죽은 자로, 두 세대를 거쳐 유령으로 돌아와 자신을 죽인 자의 후손에게 복수하는 존재를 말한다. 그는 후손들의 꿈에 나타나 처참하게 죽인다고 한다. 왜 아무 것도 모르는 후손들에게 복수를 하는지 이해는 안가지만, 하여간 그렇다고 한다. 거기다 꿈에 나온다니! 영화 '나이트메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할아버지의 유산을 처분하러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필립. 부모님의 괴이한 죽음 이후 떠난 고향이라, 그에게 좋은 기억만 있는 곳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지만, 어쩐지 그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돌아왔기 때문에 저주가 시작되었다고 비난한다. 필립은 친구 헬마와 함께 저주를 풀기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알아낸 진실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 하긴 주인공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알고 보니 배후의 인물인 경우가 흔하긴 하다.


  곤져로 나온 소년의 무표정하면서 노려보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개펄에서 죽었기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는데, 조금 오싹했다. 거기에 주인공과 친구 주위를 맴도는 물 묻은 발자국은 긴장감을 주기에 아주 적절했다. 발자국이 다가오면서 모든 기계들이 먹통이 되고, 안개 내지는 습기가 차면서 물에 퉁퉁 불은 소년이 짠하고 나타난다. 물에 불었다고 하지만, 영화라서 보기 흉하게 표현되지는 않았다. 그냥 진흙이 잔뜩 묻은 정도?


  물 묻은 발자국만 남기고 형체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나 말고 누군가 또 있다는 느낌. 꿈에서 죽은 친구의 옆에 있던 소년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혼란스러움과 공포.


  영화는 그런 두려움이 넘치는 마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한 청년의 고군분투기였다. 그를 돕는 건, 소꿉친구 한 명 뿐. 어른들은 그가 돌아와서 잠자던 저주가 깨어났다고 배척을 하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심지어 부모님의 죽음도 저주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범인으로 몰리기까지 한다.


  나 같으면 화를 내고 난리를 치거나, 그곳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일으킨 사건이라면 끝까지 파헤치겠지만, 귀신의 소행이라면 도망칠 것 같다. 저주라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왜 곤져가 손자들에게 복수를 하는지 생각해봤다. 혹시 가해자들이 그 사실을 평생 마음에 숨기고 전전긍긍해하면서 살기를 바란 건 아닐까? 그리고 늙어서 잊을 만 할 때, 손자들을 죽임으로 더 큰 고통을 주려는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그럼으로 아이를 잃은 자식들은 사건의 원인인 늙은 부모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한 번에 3대를 망가뜨리는 일이다. 대단하다! 엄청나게 끈기 있고 참을성 있으며 집념이 강한 악령이다. 개펄에서 죽으면 그렇게 되나보다.


  그나저나 마지막 반전이 참 놀라웠다.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귀신도 믿으면 안 된다. 인간도 못 믿고, 귀신도 못 믿고. 나 자신만 믿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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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rong Turn 3: Left for Dead, 2009

  감독 - 데클란 오브라이언

  출연 - 톰 프레데릭, 자넷 몽고메리, 길 콜리린, 크리스찬 콘트레라스



  음, 이 시리즈는 순전히 의리로 봐주는 거다. 영화 제작사와 나와의 의리가 아니라, 시리즈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한다는 나와 애인님의 의리 내지는 애정 때문이다.


  초반 래프팅을 즐기던 대학생 무리가 보인다. 호러 영화의 패턴대로, 숲 아무데서나 옷을 훌러덩 벗어젖히며 19금 행위를 즐기던 애들은 살인마의 습격을 받아 죽어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숲을 지나가는 죄수 호송 버스가 있다. 교통사고로 전복된 버스. 경찰과 죄수들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살인마와 싸워야한다. 물론 수적으로 열세인 경찰은 인질로 잡힌 상황이다.


  죄수와 경찰의 조합이라니. 외부의 적인 살인마들과 싸우는 것도 문제지만, 내부의 적까지 있으니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게다가 엄청난 돈까지.


  돈이 얽히니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참으로 난감하게도 살인마가 눈앞에서 자기들 동료를 죽이는 걸 봤으면서, 돈이라든지 여자에 대한 탐욕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죽이겠다고 싸우고 아주 난리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겠다는 집념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살인마가 두 명! 1편에 비하면 적은 수지만, 이 사람들 대단하다. 물론 한 명은 너무 바보 같아서, 자기가 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기도 하고 주먹 몇 번에 죽어버린다. 하지만 다른 한명은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솜씨를 보이면서, 죄수와 경찰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 입장에서는 동생의 복수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왜 지나가는 사람들을 공격했냐고? 그건 식량 조달 차원으로……. 인간이 숲에 있는 토끼나 새를 사냥해서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점은 인간이 사냥하는 게 아니라 사냥당하는 것이지만.


  이 영화의 교훈은 ‘말보다 행동을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살인마에게 당할 때마다 혹은 자기들끼리 싸울 ‘죽여 버리겠어, 되갚아주겠어’라고 떠들기만 한다. 그런데 말만 그렇게 하고, 정작 행동으론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역공을 당해서 목숨을 잃는 것이다. 차라리 처음에 말만 앞세우지 말고 행동으로 보였으면, 결말이 다르지 않았을까?


  내용은 뭐, 자세히 살펴보면 ‘이건 말이 안 되잖아!’라고 외칠 장면들이 간혹 있다. 도대체 경찰견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왜 살인마는 주도면밀하고 꼼꼼하게 사람을 죽이고 다니다가 막판에 방심했을까? 그리고 도대체 그는 어떤 길로 다니기에 언제나 사람들의 뒤에 숨어들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차를 탄 사람들을 앞질러 갈 수 있었을까? 등등


  영화는 4편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아, 이 영화 5편까지 나왔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시리즈를 만들면, 대충 이름만 따와서 1편의 위엄을 망치기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내가 더 성공시켜야지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보는 사람들도 다음 편을 기대할 테니까 말이다. 뭐 그렇다고 4편에 대한 기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얼마나 더 망쳐놓을 것인지 기대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 아니면 ‘좀 나아졌겠지?’라는 생각도 있고,


  그나저나 마지막에 그 주인공, 그럴 줄 몰랐다. 나쁘게 말하면 내숭쟁이, 좋게 말하면 계획적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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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Bride Of Chucky, 1998

  감독 - 우인태

  출연 - 제니퍼 틸리, 브래드 듀리프, 캐서린 헤이글, 닉 스테이블



  감독 우인태는 ‘백발마녀전, 1993’, ‘프레디 vs 제이슨, 2003’을 만들었다. ‘백발마녀전’은 재미있었지만, ‘프레디 vs 제이슨’은 음……. 제이슨을 너무 멍청하게 만들어서 이 사람이 프레디의 광팬이 아닐까 의심했던 영화이다. 10년 사이에 연출실력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몇 년 전에 전지현이 나왔던 ‘블러드, 2009’의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이건 안 봤다.


  그런데 이 감독이 나에게 인형극을 선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 원래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인형이니까, 원래 인형극이라고 봐야할까? 그래도 지금까지는 처키 혼자만 말하고 웃고 움직였는데, 이번에는 하나가 더 늘었다. 바로 처키의 살아생전……. 잠깐만 지금도 살아있는데? 아, 이렇게 말하면 맞을 것 같다. 처키가 인간이었을 때 연인인 티파니까지 인형이 되어버린다.


  결론은 인형 커플이 사람 죽이고 다니는 영화였다. 이젠 인형까지 커플로 놀다니! 이젠 인형도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싸움도 한다! 솔로들에게는 비수를 꽂는 영화다.


  이제 처키는 앤디를 찾아 헤매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나 잡아다가 몸에 들어가면 된다. 3편까지 이어지던 저주의 내용이 어느 순간 바뀌었다. 전에는 먼저 자기 이름을 알려준 존재의 몸에 들어가야 했는데 말이다.


  영화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형극이다. 커플 인형이 염장질을 하면서 사람 죽이고 다니는 인형극. 게다가 마니아 층이 존재하는 리빙데드 돌(Living Dead Doll)의 컨셉을 취하고 있다. 처키는 티파니가 어설픈 솜씨로 꿰멘 덕분에 얼굴에 흉터가 길게 생기면서, 인상적이 되었다. 그 때문에 리빙데드 돌 계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영화는 무섭다기보다는 우스웠다. 인간 티파니와 인형 티파니의 목소리를 맡은 여배우의 코맹맹이 소리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코를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두 인형이 칼을 들고 아장아장 다니는 장면 역시 귀여웠다. 실제로 눈앞에 인형이 날 죽여 버리겠다고 칼을 들고 쫓아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별로였다.


  생각해보니 진짜 그러면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그러면…….


  그렇지만 영화는 재미있었다. 역시 현실과 영화는 많이 다르다. 티파니가 보고 있던 고전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어쩐지 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의 도피를 하는 두 젊은 남녀의 얽히고설킨 오해도 웃겼다. 특히 처키와 티파니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한참 섹스를 하다가 갑자기 콘돔(rubber)이 있냐고 묻는 티파니에게 난 몸 전체가 고무라고 대답하는 처키의 대화는 재기발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음 편을 예고하고 있는데, 과연 볼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애인님은 시리즈인 작품들은 쭉 봐야한다고 주장하니까, 아마 보겠지.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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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hild's Play 3, 1991

  감독 - 잭 벤더

  출연 - 저스틴 왈린, 페리 리브스, 제레미 실버즈, 트래비스 파인



  앤디도 이제 나이가 먹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칼을 휘두르며 자신을 죽이려던 인형에게서 받은 상처는 나아지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의 엄마와 다시는 만나지 못했고, 입양 가정을 전전하다가 결국 군사학교까지 오게 되었다. 군사학교가 우리나라에 있는 육군 사관학교 같은 것이 아니라, 도저히 어디로 보낼 수가 없는 아이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개중에는 앤디처럼 오갈 데 없는 아이들도 있고, 너무 소심해서 그런 것을 고쳐보라고 온 아이, 또는 부모가 파병을 나가 온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처키도 다시 살아났다. 오프닝을 보면, 2편에서 해체당한 처키의 몸에서 피가 흘러 인형을 만드는 고무액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게 모여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지만, 인형에 영혼이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뭐……. 회사가 굿 가이 인형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사회에서 잘 드러난다. 그 인형이 회사에서 제일 잘 팔린 제품이라는 것이다. 헐, 그런 못생긴 인형이? 왜? 다른 장난감들은 얼마나 허접하기에?


  하여간 처키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앤디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 그리고 자기가 자신을 소포로 부쳐서 군사학교로 침투! 역시나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어린 신병을 홀리는데 성공하는데…….


  보면서 눈물이 나왔다. 역시 어릴 때 겪은 트라우마란 무섭구나. 어른이었다면 어떻게 감정을 추슬렀을 텐데, 너무도 어린 나이였고 옆에서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애가……. 무조건 말만하면 거짓말쟁이라고 윽박지르는 어른들 눈치 보느라, 혼자 삭혔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한 사람이 8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을 하면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아, 하긴 인형에 빙의한다는 건 누가 말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이트라면 인기 만점이었을 텐데. 그런 부분은 없이, 모두가 다 소년을 윽박지르고 믿어주지 않아서 안쓰러웠다.


  특히 처키를 좋아했던 어린 소년은……. 소년의 순수함을 짓밟다니 처키, 이 나쁜 놈! 그래서 네놈이 하늘로 못 가고 인형의 몸속에서 이승을 헤매는 거다! 그나저나 군사훈련 받는 애들이 인형 하나 어떻게 못하다니……. 하긴 1편에서는 경찰들도 어떻게 못 했었지. 뭔가 참으로 안쓰럽고 답답한 설정이었다. 인형이지만 힘이 무지막지 세다는 말은 없는데, 그냥 인상 쓰고 칼 휘두르면 다들 놀래서 죽어간다. 하아, 인형에게도 당하는 만랩, 아니 저랩들같으니라고.


  물론 내가 저 입장이 되면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다. 저들처럼 비명 지르다가 죽어나갈지, 무사히 도망칠지 아니면 인형과 싸울지. 다만 아쉬운 것은, 앤디와 그 친구 하나둘만 빼고는 처키와 맞서 싸울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군인이건 경비원이건.


  처키는 여전히 피부가 벗겨지고 온갖 일을 다 당하는데, 참으로 꿋꿋하다. 저런 걸 즐기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근데 인간적으로 영화 참 지루하다. 누군가 나에게 두 번 보라면 욕하면서 ‘날 죽이려고? 싸우자!’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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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hild's Play 2, 1990

  감독 - 존 라피아

  출연 - 알렉스 빈센트, 크리스틴 엘리스, 브래드 듀리프, 제니 에이구터



  1편에서 겨우 처키를 제거했던 앤디와 엄마. 하지만 그는 엄마와 떨어져 위탁 가정에 가게 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법원에서 인형이 살아있다고 얘기했다는 이유로 정신감정을 받으라고 했다는데, 이상하다. 1편에서 처키가 살아있는 인형이라는 걸 알고 있는 형사도 이번엔 나오지 않는다. 그가 말을 잘 해줬으면, 앤디가 엄마와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혹시 그도 같이 정신 감정을 받고 있는 걸까? 죽었다는 얘기도 없었는데. 하여간 정서불안으로 판정받은 앤디를 한 부부가 데리고 간다.


  그리고 굿 가이 인형 회사는 다시 공장을 가동시킨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고, 처키가 되살아난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집념으로 똘똘 뭉친 처키는 앤디를 찾아 나서고, 그와 동시에 가는 곳마다 피를 부른다.


  이번에도 역시 어린아이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어른들이 나온다. 그들은 앤디를 거짓말장이라고 몰아세우고, 당연히 처키에게 죽음을 당한다.


  1편 감상에서도 썼지만, 나도 아마 어린애가 인형이 살아있어서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쪼그만 놈이 상상력이 참 기발하네. 허허허'하고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살인이 일어나면 섬뜩할 것이다. '도대체 이 아이의 정체는 뭔가? 설마 데미안의 한국 재림인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데미안의 재림이나 인형 몸속에 처키가 있는 거나 오십보백보이다.


  이번 편은 수위가 높다. 그러니까 19금 섹스신이 나온다는 게 아니라, 처키와 싸우는 과정에서 보이는 죽고 죽이는 장면이 눈살을 찌푸린다는 말이다. 마지막 공장에서의 격투장면은 와, 진짜. 인형 하나 죽이는데 참으로 끔직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처키가 인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피도 나고, 고통에 비명도 지르고.


  마지막 처키의 모습은 진짜로 끔찍했다. 어지간히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밥도 먹는 나였지만, 저절로 입에서 '윽!'하는 소리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이건 마치 제작자들이 인형 나온다고 우습게보지 말라고 대놓고 시위하는 거 같았다. 인형만으로도 이런 하드 장면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거 같은데, 그런 의도라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다만 내용의 전개가 좀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형사의 부재, 갑작스런 엄마의 병원 행 그리고 왜 인형 회사는 굿 가이 인형을 그렇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공장에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데도 말이다. 그런 부분을 좀 더 보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처키는 불사의 존재 같다. 인형 속에 있어서 그렇지. 이왕이면 예쁜 인형 속에 들어갈 것이지. 아, 이건 인형 외모 지상주의인가? 인형까지 외모로 판매되는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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