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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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惡魔がりて笛を吹く, 1973

  작가 - 요코미조 세이시

 

 

 

 

  역시 1951년도부터 잡지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범인의 트릭과 범행은 신출귀몰했고, 동기는 안타까우면서 역겨웠다. 2차 대전 이후 어려웠던 생활상도 엿볼 수 있었고, 그 당시 사회 분위기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음,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으로의 반성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 건 다른 이야기에서도 느꼈던 점이긴 하다. 전쟁의 후폭풍으로 어려워진 생활상에 대한 설명은 있었지만, 왜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했는지에 대한 반성이나 고찰은 없었다. 단지 전쟁의 여파로 청산가리가 무작위로 제조되어 유포된다고 한탄하는 의사만 나올 뿐이었다.

 

  천은당 사건의 용의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은 몰락한 화족인 츠바키 자작이 자살한다. 그런데 몇 달 후, 자작의 집에서는 그의 모습을 봤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의 딸인 미네코는 긴다이치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집으로 와서 진짜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인지 아닌지 밝혀달라는 것이다. 점을 치는 날을 맞이하여 츠바키 저택으로 온 긴다이치. 그곳에는 츠바키 자작의 부인인 아키코와 유모, 자작의 친구 아들인 도타로 그리고 아키코의 오빠인 신구 백작 부부와 그 아들, 거기에 아키코의 백부인 다마무시 노백작과 그의 첩 기쿠에까지 와서 살고 있었다. 점을 치던 도중, 츠바키 자작이 남긴 플롯 연주곡이 흘러나와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날 밤, 다마무시 노백작이 살해당하는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알리바이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는 범인의 천재적인 능력은 놀랄 정도였다. 하긴 비밀이 많고 지은 죄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작은 일에도 깜짝 깜짝 놀라고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모양이다. 그래서 더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근친의 부작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귀족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남발한 가운데, 자손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태어났다. 어떻게 보면 귀족이라는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성적으로 문란하고 부도덕했다. 그 순간 즐거우면 끝이었다. 뒤처리는 가문의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받을 고통이나 아픔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범인의 동기 부분을 읽으면서는 뒷맛이 참 좋지 않았다. 결국 기성세대가 싸놓은 똥을 다음세대가 처리해야하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직접 치우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문득 생각해본다. 나는 내가 싼 똥을 치우지 않고 어딘가에 버려두지는 않았을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치우도록 방치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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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
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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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Abgeschnitten, 2012

  작가 - 제바스티안 피체크, 미하엘 초코스

 

 

 

 

 

  표지를 보면, 구름이 잔뜩 낀 바닷가에서 태양을 등지고 서 있는, 또는 태양을 보고 있는 한 여인의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감동적인 성장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응?’하고 놀랐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이름은 절대로 저런 서정적인 표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다시 확인했다. ‘눈알 수집가 Der Augensammler, 2010’와 ‘눈알 사냥꾼 Der Augenjager, 2011’으로 재미와 놀라움을 안겨줬던 그 작가가 맞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조용한 분위기의 표지를 갖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뜻이다.

 

  법의학자 헤르츠펠트는 부검하던 시체의 머리에서 한 쪽지를 발견한다. 거기에 적힌 딸 한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본 그는 경악한다. 누군가 그의 딸을 납치하고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시체에 남긴 것이다. 경찰에 알리지도 말고, 범인이 숨겨놓은 힌트를 찾아 딸을 찾아야 하는 헤르츠펠트. 그에게 남은 유일한 힌트는 헬고란트라는 섬에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체였다. 하지만 태풍 때문에 고립된 그곳에서 그를 도울 수 있는 유이한 존재는 관리인인 엔더와 만화가인 린다뿐이었다. 침입자에게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한 엔더를 지키면서, 린다는 전화로 헤르츠펠트의 지시대로 시체를 해부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노리는 침입자도 피해야 한다. 한편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던 헤르츠펠트는 한나를 납치한 사람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은 4년 전에 체포된 사들러라는 변태성욕자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고, 세 번째 장을 넘기면서 ‘헐!’하고 놀랐다. 그리고 읽어가는 내내 ‘어떡해’라는 마음과 ‘헐!’이라는 생각 그리고 ‘으아’하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 정도로 이야기는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여자아이들을 납치감금해서 반복적인 강간과 온갖 고문을 가한 끝에, 결국 아이가 스스로 자살하게 만드는, 흉악범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사들러. 납치강간고문은 했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기에 그는 가벼운 형량을 받고 출소한다. 납치강간고문을 했다는 건 이미 그 아이를 죽인 것이다. 책에서 자세히 묘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그 XX가 어떤 짓을 했는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그런 짓을! 그런 상황에서 자살은 그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자살하도록 강요했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살인이다.

 

  그런데 직접 살인하지 않았다고 3년 형만 선고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아니 왜! 도대체 판사 머릿속엔 뭐가 들었기에! 이런 분노는 나만이 느낀 것이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그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놈이 가벼운 형량을 받는데 도움을 줬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몇 년 전에 사람들을 경악시킨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조두순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다. 8살짜리 여아에게 온갖 몹쓸 짓을 한 그가 앞으로 5년 후에 출소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상에나! 그가 출소할 때, 피해를 입은 여아는 스무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여아가 입은 피해를 생각해보면, 그가 받은 형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두 저자가 소설 전반에 걸쳐서 얘기하지만, 성폭행범에 대한 형량은 죄질에 비해 너무 낮다. 거기다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왜 감형을 시키는 것이다. 술이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건가? 모든 사람들이 다 술을 마시고 강간폭행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니잖아?

 

  법치국가에서 피해자는 어떤 기회도 갖지 못하는 반면, 범인은 그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대사에 공감한다.

 

  아, 사들러의 범행이 너무 잔인해서 상대적으로 묻혀버린 린다의 스토커가 벌인 짓도 잊으면 안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건 집착이고 정신병이다.

 

  이 세상은 너무도 넓고 미친 사람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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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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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Der Augenjager, 2011

  작가 - 제바스티안 피체크

 

 

 

 

  전작인 ‘눈알 수집가’의 표지도 으스스했지만, 이번 표지도 만만치 않다. 눈이 있는 부분은 제목과 음영처리로 잘 보이지 않은, 뭔가 덮인 채로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의 얼굴 부분이 클로즈 업 되어있다. 얼굴을 덮은 것은 무얼까? 비닐 같다. 누군가 뒤에서 저 사람의 얼굴에 비닐을 덮어씌우고 목을 조이는 걸까? 저러다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텐데……. 저 사람은 지금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거나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아, 어쩐지 표지만으로도 사람 마음을 불안하고 두근거리게 만든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책이 든 택배 상자가 오면 어머니는 늘 궁금해 하신다. 당신님도 보실만한 책이 있으면 빌려가곤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이러이러한 책이 왔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작년에 ‘눈알 수집가’ 제목만 보시고 기겁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 보여드리면 노인네 서운해 하시기 때문에, 어떤 책이냐는 질문에 조용히 표지를 보여드렸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어머니가 작년에도 비슷한 거 있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그런 책을 쓰는 사람이나 그걸 읽는 너나 참…….’이라며 혀를 차셨다. 아니 왜! 이런 소설이 얼마나 재밌는데!

 

  지난 이야기에서 눈알 수집가의 정체를 알아내고 납치당한 아이들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빼앗긴 초르하프. 소설은 범인의 지시대로 자신의 눈을 총으로 쏘는 그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두 달이 지난 후, 지난번에 큰 활약을 했던 알리나는 경찰의 요청으로 여자들을 납치강간하고 눈꺼풀을 도려낸 안과의사 차린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에게서 또다시 환영을 보며 불안함에 휩싸인다. 그런 그녀를 찾아와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한 여인. 사라진 소녀와 차린은 무슨 관계일까? 초르하프는 과연 아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와, 잔인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이번 이야기의 범인인 의사 차린은 진짜 잔인한 놈이었다. 그냥 눈꺼풀만 도려냈다고 했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그 이후 피해자들이 겪는 일을 묘사한 부분을 읽으면서 왜 그녀들이 자살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을 깜박이지 않으려고 해봤다. 일분도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평생을 그러고 살아야 한다. 범인도 잔인하고, 독자들에게 그걸 깨닫게 한 작가도 잔인했다. 다른 범죄수사물은 그냥 이러저러한 일을 당했다고만 나오는데, 이 작가는 그걸 꼼꼼하게 다 느낄 수 있도록 표현을 해놓았다.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심리를 동시에 느껴보라는 배려였을까? 그렇다면 성공했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잠시 책을 놓게 만들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 진짜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

 

  대개 소설들은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럭저럭 안정을 되찾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데, 이 책은 그러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 번 경험한 악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그게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쉽게 극복될 리 없으니까 말이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좀 더 잘 것이냐 밥을 먹을 것이냐부터 시작해서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점심 메뉴는 뭐로 할 것인가, 자기 전에 게임을 한 판 할 것인가 말 것인가까지, 눈을 떠서 다시 감을 때까지 매분매초 뭔가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선택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차린이 살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거였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괜히 휘말리기 싫어서,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불의를 보고도 외면한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른 체 했기 때문에 일어난 범죄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도 일부로 그랬다고 볼 수가 없는데, 무조건 그런 짓을 해도 괜찮은 걸까? 게다가 여자만 잡아다가 그런 짓을 하는 걸 보니, 그건 핑계 같다. 처음 일을 저질렀을 때는 보고도 못 본 척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이후는 그냥 자기보다 약한 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는 것에 맛을 들인 거 같다.

 

  또 이런 의문도 든다.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꼭 옳지 못한 일일까?

 

  남을 도우려다가 도리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혹 볼 수 있다. 내 조카 같은 경우도 그랬다. 그 녀석이 반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왕따 시키고 싸우는 애들에 대해 담임에게 말했더니, 도리어 ‘넌 왜 친구들을 이간질시키고 나쁜 말을 퍼트리니?’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충격을 받은 녀석은 학교 가기 싫다고 전학시켜달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 아이에게 그래도 어려운 사람을 돕고 불의를 보면 어른들에게 알리라는 말을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불의를 보면 돕거나 누군가에게 알려서 도움을 줘야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이 세상은 서로 돕고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이 나라에서는 그게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불의에 맞서면 도리어 피해자가 되는 세상이다. 바른 말을 하면 미움을 받고 어른 말을 들은 아이들만 죽어가는 이 나라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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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탐정 설록수
윤해환 지음 / 씨엘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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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윤해환

 

 

 

 

 

  첫 장을 보자마자, ‘음? 이건 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픽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팬픽도 출판이 가능하던가? 아하,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모든 것을 한국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우선 주인공 탐정 이름부터 설록수이고 바이올린 대신 우쿨렐레를 연주한다. 사건들 역시 셜록 홈즈가 해결했던 사건들을 한국 배경으로 한국의 설정에 맞춰 변형했다. 베이커가 소년 탐정단도 나온다. 설록수에게서 과외를 받는 공부방 학생들이다. 모리아티에 해당하는 인물도 백수당 당주라는 이름으로 출현한다.

 

  다만 그가 하숙하고 있는 집주인은 원작 이름대로 허드슨 부인이다. 그녀만은 한국화하지 못하고 외국인이라는 설정이다. 아무래도 베이커 가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 그 부분만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었다. 굳이 외국인으로 설정하지 않아도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책에는 총 다섯 개의 사건이 수록되어있다. 『타임라인 연구』는 ‘주홍색 연구 A Study in Scarlet, 1887’가 연상된다. 그리고 『얼룩 띠가 아니라 뱀』은 ‘얼룩 띠의 비밀’이, 『협찬은 아무나 받나』은 ‘녹주석 보관’, 『금촌의 늙은 마법사』는 ‘장기 입원 환자’를 각색했다. 셜록 홈즈 전집을 읽은 다음에 이 책을 보니, ‘아, 이건 그 사건이구나!’하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열여덟 번째 암자』는 금방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라이기트의 수수께끼’를 원전으로 했다고 한다.

 

  주인공인 탐정 설록수의 가장 큰 특징은 ‘트잉여’라는 것이다. 셜록 홈즈가 신문이라든지 연감 같은 걸 모으고 외우면서 모든 사건사고의 소식에 민감했다면, 이 책의 설록수는 실시간으로 타임라인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확인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팔로우하고 있다는 걸까? 그 사람들이 직접 올리거나 리트윗하는 글의 수가 어마어마할 텐데……. 하긴 그걸 다 읽고 있으니 트잉여이고 이상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거겠지.

 

  왓슨에 해당하는 김영진은 싸이월드에 설록수가 해결한 사건들에 대해 기록한다. 원작에서는 책으로 내지만, 여기서는 미니 홈피에 기록할 뿐이다. 이왕 기록할 거면 소설 연재 사이트에 올려서 출판제의를 받는 기회도 노려보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소설이 아니라서 안 되는 건가…….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굳이 셜록 홈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야기들이 꽤 짜임새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셜록 홈즈 사건들을 차용했기 때문에 짜임새가 있는 걸까? 하지만 허접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쓰면 셜록 홈즈를 차용했어도 어설펐을 텐데, 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호기심을 갖게 하고, 사건의 진행을 한눈팔지 않고 따라가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다. 현대 사회를 비판하거나 온라인으로 맺어진 인연에 대해 일침을 놓는 말도 가끔 나오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도 있었다. 거기다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셜록 홈즈 팬픽으로 끝내기엔 아까운 면도 있었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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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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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夜步く, 1973

  작가 - 요코미조 세이시

 

 

 

 

  가끔 한 작가의 소설을 차례대로 읽을 때,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다. 바로 책의 출판연도와 발표 시기가 다른 경우일 때 그렇다. 이 이야기만 해도 1948년도에 잡지에 연재가 되었다고 하는데, 책의 출판연도는 1973년이다. 이런 경우에 출판 연도를 따라야하는지, 아니면 연재된 순서를 따라야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 발표된 순서를 따라야 시대상이라든지 주인공 탐정의 변화를 알 수 있으니까, 연재된 순서를 따르기로 했다.

 

  이번 이야기는 ‘팔묘촌 八つ墓村’이나 ‘혼진 살인사건 本陣殺人事件’처럼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도중에 아가사 크리스트와 엘러리 퀸의 소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책들의 제목을 말하는 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야겠다. 아무래도 요코미조 세이시의 초기 작품들은 그 두 작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추리소설 작가인 ‘야시로’는 친구이자 후원자인 ‘나오키’의 부탁으로 그의 집을 방문한다. 이 이야기는 야시로가 그곳에서 보고 겪은 것을 적은 것이다.

 

  나오키의 집안은 대대로 후루가미 가를 모시고 있는데, 그 가문에서는 대대로 꼽추가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집안에서 아름다운 딸 ‘야치로’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꼽추의 부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고 한다. 야시로가 도착했을 때, 마침 그곳에 꼽추 화가로 유명한 ‘하치야’가 야치요의 남편감으로 머물러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신경전이 극에 달했을 때, 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된다. 처음에는 그 시체가 하치야라고 여겨졌지만, 유모의 증언으로 야치요의 꼽추 오빠이자 후루가미 가의 후계자인 ‘모리에’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리고 후루가미 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는데…….

 

  특히 피가 섞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여동생을 향한 욕정과 집착을 감추지 않는 오라비, 꼽추라는 것에 콤플렉스를 느껴서인지 지배적이고 가학적인 성행위를 요구하는 변태적인 약혼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즐기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포기한 듯한 소녀의 관계는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어딘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야치로의 어머니인 류 그리고 알콜 중독자이자 나오키의 부친인 센고쿠의 관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불륜과 근친으로 얽혀있는 그들이 빚어내는 감정의 대립과 퇴폐적인 분위기는 글을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암울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일까? 가끔 튀어나오는 긴다이치 긴다이치 코스케의 농담도 분위기 전환에는 전혀 도움에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라는 서술자가 따로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왜 굳이 서술자를 따로 두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후반부에 가서 그 이유가 밝혀진다. 그 부분을 읽자마자 ‘이건 불공평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났다. 크리스티 소설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은 더 심했다. 하아, 그 이유를 말하면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하겠다. 말하고 싶어서 입, 아니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후루가미 가문이 겉으로는 명망 있고 유서 깊은 집안이라지만, 속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서 망하기 일보직전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문득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평소에 화를 안내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까 평소에 자잘한 화를 많이 내야 정신건강이나 대인관계에서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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