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니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서재에 글을 하나 올려야지.’라고 하면서 이 글을 쓴다. 이 세상에서 느려 터진 것은 시간. 이 세상에서 쏜 화살과 같이 빠른 것은 시간. 

 

 

 

 

 

2. 글을 올리려고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글을 찾았다.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에는 ‘페크의 서랍’이라는 폴더가 있다. 이 폴더 안에 서른 개가 넘는 파일이 있다. 모두 미완성의 글이다.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 몰라 쓰다가 말았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유에스비(USB)를 넷북에 꽂으니 거기에도 수십 편의 글이 있네. 오래전에 쓴 글인데 모두 미완성의 글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종이로 된 노트에도 이런저런 글이 있네. 역시 완성된 글은 아니고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쓴 글이다. 이것들을 다 삭제하려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서재에 올릴 만한 글은 아니다. 어떻게든 보충하고 수정하는 손질을 해서 완성하고 싶은 글이니 그냥 놔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내가 글을 많이도 썼구나, 하는 생각.

 

 

 

 

 

3. 창작하는 동안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불안의 황홀>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20세기 일본 문단과 지성계의 신으로 군림한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 정체성 등을 이해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고,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비로소 자신의 사상이 무엇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존재다.

---------- 김도언 저, <불안의 황홀>, 75쪽. ----------

 

 

그런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면서 얻은 것 중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건 아니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가고 있을 뿐이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책 좀 읽었다고 내가 꽤 똑똑한 줄 알 뻔했다. 꽤 현명한 줄 알 뻔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마디로 모자라. 쯔쯧.) 글을 쓰면서 배운 두 가지는 ‘관찰’과 ‘분석’이다.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걸 배웠다. 이 배움은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4. 여러 책을 읽다 보면 표현만 다를 뿐 뜻은 같은 글을 반복해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김도언 저자와 밀란 쿤데라의 글도 그랬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작품보다 훌륭하지 않은 작가는 작품보다 훌륭한 작가보다 훌륭한 작가일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 김도언 저, <불안의 황홀>, 76쪽. ----------

 

 

다시 말해 작품이 똑똑해야지 작가만 똑똑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제 생각에는 소설가보다 위대한 것은 소설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소설가의 편견까지도 극복하게 해 준다고 말할 수 있어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를 소설가는 소설을 쓰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헤르만 브로흐라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소설이 열어 주는 세계관”이라고 표현했지요.

---------- 박성창 외 저, <밀란 쿤데라 읽기>, 92쪽. ----------

 

 

 

 

 

 

 

 

 

 

 

 

 

 

 

 

 

 

 

작품보다 작가가 더 똑똑하다면 ‘창작’을 하지 말고 ‘평론’을 써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로 말하면 ‘내 글’보다 ‘나 자신’이 (속되게 표현하면) 더 후지다. 아마 내 글을 평가한 사람들의 점수가 나를 평가한 사람들의 점수보다 나을 것이다. 맞는 말인가?

 

 

 

 

 

5.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예전에 문학을 배우는 강의 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단편 소설을 써 온 글쓴이에게 누군가가 소설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글쓴이가 변명처럼 설명을 했던 것. 이때 글쓴이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할 것.“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말로써 독자를 이해시키지 말고 작품으로 이해시켜라.“

 

 

 

 

 

6. 유명한 시의 구절을 변형한 말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캐머런 씨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

 

 

“여러분이 배워야 하는 것 가운데에는 지겨운 것도 많습니다.” 그는 관대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아마 그런 것들은 최종 시험에 통과하자마자 잊어버릴 겁니다. 하지만 해부학에서는 전혀 배우지 않는 것보다는 배우고 나서 잊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437쪽. ----------

 

 

해부학에서는 전혀 배우지 않는 것보다는 배우고 나서 잊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이것은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인 메모리엄>에 있는 다음의 구절을 변형해 말한 것이라고 한다. 

 

 

...................................

사랑을 전혀 해보지 못하는 것보다

실패를 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낫다.

...................................

 

 

책을 읽고 나면 책의 내용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고 나서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그래서 나의 책 읽기는 계속된다.

 

 

 

 

 

 

 

 

 

 

 

 

 

 

 

 

 

 

 

 

 

 

 

7. 실패한 일에도 유익함은 있다. 소설 속 필립은 이 년 동안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화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진로를 바꾼다. 그렇다면 그가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이 년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자네가 파리에서 이 년을 낭비한 게 안타깝게 여겨지는군.”

헤이워드가 말했다.

“낭비라고요? 저 아이의 움직임을 좀 보세요. 그리고 나무 새로 비쳐든 햇빛이 땅바닥에 만드는 무늬를 보세요. 저 하늘을 좀 보세요. 글쎄, 제가 파리에 가지 않았더라면 저 하늘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517~518쪽. ----------

 

 

필립은 만약 자기가 그림을 공부하지 않아서 예술을 몰랐더라면 ‘나무 새로 비쳐든 햇빛이 땅바닥에 만드는 무늬’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고 ‘하늘’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풍경을 보고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음악을 듣고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러므로 필립이 실패한 일에도 유익한 점을 찾을 수 있는 것.

 

 

실패가 실패이기만 하지 않다는 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실패를 한 번도 겪지 않고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위로다.

 

 

 

 

 

8. 서머싯 몸 저, <인생의 베일>의 리뷰를 반 정도 썼다. ‘우리는 왜 가짜에 빠져드는가’에 초점을 두고 쓰려고 한다. 어째서 가짜는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버섯 중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독버섯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풍경 그림은 가짜 예술품인 경우가 많듯이 사람 또한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여기에 인생의 함정이 있다. 이것을 알면서도 또 가짜에 속는 나. (앞으로도 속겠지.)

 

 

 

 

 

 

 

 

 

 

 

 

 

 

 

 

 

 

 

 

 

9. 요즘 신형철 저,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있다. 2006년~2009년에 쓴 산문이라고 한다. 저자가 1976년생이니 39세인데 무슨 글을 그리도 잘 쓰는지 감탄! 감탄! (이건 다음에 소개할 예정.)

 

 

 

 

 

 

 

 

 

 

 

 

 

 

 

 

 

 

 

 

 

10. 세상 전체가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날씨는 5월의 푸른 나무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화창한 날들이었다.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부조화. 

 

 

많은 부조화 속에 우리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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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5-1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생이 놋북에 새 프로그램을 깔아주는 바람에 그동안 썼던 파일들을 폴더에 담아 잠시 usb에 보관했다 다시 꺼내봤더니 그 사이 몇 개가 날아갔더군요.
분명히 폴더에 다 넣다고 생각했는데, 일기도 있고 모아 놓을 원고도 있는데 못 찾았어요.
좀 아쉽기는 했지만 속이 상할 정도는 아니더군요.
일기는 일부러 태워버리는 사람도 있던데 어차피 다시 볼 것도 아니다 싶고.
원고는 30장쯤 썼던 건데 마침 일부는 누구한테 보냈던 걸 다시 살려서 쓰기로 했어요. 어차피 다시 써야하거든요.
기계라는 게 다 그렇죠. 날려 버리면 흔적도 없는 것.

언니는 참 책 취향이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불안의 황홀>이라. 읽고 싶네요.
<느낌의 공동체>는 사 놓고 몇 년째 못 읽고 있어요.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4-05-10 14:32   좋아요 0 | URL
저는 예전에 엠피쓰리를 오래된 노트북에 꽂았다가 음악이 다 날아가 버린 적이 있어요. 호환성이 없었던 모양이에요. 안전하게 하려면 컴퓨터와 유에스비, 두 군데 보관이 좋죠.

<느낌의 공동체>보다 <몰락의 에티카>가 더 좋다고 글쟁이 친구가 추천하던데 그 책이 두꺼워서 우선 느낌~부터 읽으려고 샀어요. 이게 좋으면 그땐 두꺼운 책도 읽을 만할 것 같아서요.
<불안의 황홀>은 저자가 일간지에 연재하는 글을 인터넷으로 보고 반해서 구입했던 것이에요. 내용보다는 문장을(표현기법을) 감상하는 재미로 읽어요. 문학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에요.

책 속으로 들어가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아요. 평화롭죠. 책은 마음의 약인 셈...^^

2014-05-09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0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3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