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것은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등이다. 그리고 이번에 <헤세의 문장론>을 읽었다.

 

 

“이 책은 1900년부터 1960년까지의 책과 문학, 작가와 독자, 비평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글을 12권으로 된 전집에서 모으고,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은 『책의 세계』에서 보충한 것이다”(머리말에서.)

 

 

이 책은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나는 책 읽기에 대한 책은 무조건 관심이 간다. 글쓰기에 대한 책도 무조건 관심이 간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 책에는 헤세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참 많다. 그중 열두 가지를 뽑고 그것과 관련하여 내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써 본다.

 

 

 

 

1.

“반드시 읽어야만 하고, 행복과 교양에 필수적인 도서목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45쪽) 그러므로 “최우수 도서 100선이나 최우수 작가 100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57쪽)

 

 

동의한다. 누구나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란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옷은 자기의 개성대로 입으면서 왜 책은 자기의 개성대로 읽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취향에 따라 옷을 골라 입듯이, 취향에 따라 책도 골라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2.

“호기심으로 안달하여 온갖 시대와 나라의 습작과 졸작을 마구 집어삼킨 이보다, 가령 우리나라의 최고 작가 서너 명을 거듭 완벽하게 읽은 사람이 훨씬 풍요로우며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몇 권 안 되는 책을 철저히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읽던 수많은 시간의 감흥을 되새기기 위해 그 책을 손에 집어 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머릿속 가득 수천 권의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더 만족스러우리라.”(60쪽)

 

 

동의한다. 나도 다독보다 정독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우선 책을 다양한 종류로 백 권쯤 읽어라. 그럼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

- 좋아하는 작가를 정해서 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어라.

- 그리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두 번 이상 읽어서 ‘깊이 읽기’를 하라. 그러면 작품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다. 안목이 높아지면 즐겁고 유익한 독서를 할 수 있다.

- 책을 두 권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게 더 좋다. 열 권을 읽는 것보다 다섯 권을 각각 두 번씩 읽는 게 더 좋다.

 

 

 

 

 

3.

(자신의 습작을 읽고 나서 자신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를 평가해 달라는 작가 지망생에게 헤세가 말한다.)

 

 

“하지만 ‘진실’을 찾는 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어느 초보자의 습작을 가지고 재능에 대한 이런저런 결론을 내리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106~107쪽)

 

 

“가장 위대한 작가들의 경우에도 초창기 습작을 보면 언제나 참으로 특징적이거나 눈에 띄게 독창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실러의 청년기 시에서도 놀랄 정도의 조잡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108쪽)

 

 

“스무 살의 나이에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를 지은 젊은 시인이 서른이 되어서는 더 이상 그런 시를 쓰지 못하거나 아니면 더 못한 시를 쓰거나 여전히 똑같은 시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서른이나 마흔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 재능도 있습니다.”(108~109쪽)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글을 보고 단번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또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 

 

 

창작을 하고 싶으나 과연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해 고민하는 작가 지망생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 창작을 하려는 당신은 자연히 독서를 많이 할 것이다. 독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해 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므로 그 자체로 유익하다.

- 그러므로 창작이 잘 되지 않아서 작가가 되지 못하고 나중에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창작하는 시절의 경험은 좋은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 창작을 하고 싶다면 일단 해 보라. 창작을 하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다.

 

 

헤세도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직접 형편없는 시라도 지어보면 안 될까? 그렇게 해 보라. 그러면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158쪽)

 

 

 

 

 

4.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120쪽)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의 경우엔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는데, 어떤 때엔 고민이나 걱정을 잊기 위해 책을 집어 든다. 책을 읽고 나면 정신이 분산되어서 고민이나 걱정의 크기가 반쯤 줄어든 것 같아 좋다. 이것도 내겐 독서의 장점이다. 그런데 헤세는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 하는 독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나와 다른 시각이다.

 

 

 

 

 

5.

“우리는 냉담한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소심한 학생이나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또한 피난민이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할 것이 아니라 호의를 품고 친구나 조력자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120~121쪽)

 

 

독서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표현이 참 좋다. 한마디로 진지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나는 연필을 옆에 두고 책에 밑줄을 그으며 집중해서 읽는다.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읽지 않고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읽는다고 할 수 있겠다.

 

 

 

 

 

6.

“사랑도 예술과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더없이 위대한 것을 아주 조금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에 불타오를 수 있는 자보다 훨씬 불쌍하고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131쪽)

 

 

동의한다. 시 한 줄에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책에 열광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7.

“알다시피 정신분석가들 자신이 정신분석 이전 시기의 문학작품을 어디서나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이자 전거로 이용했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정신분석이 깨닫고 학문적으로 표현한 내용을 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137쪽)

 

 

정신분석학이 등장하기 전에 시인(작가)들은 이미 그것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신분석학이 출현하기 이전에 그와 관련한 내용을 자신의 작품에 썼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을 알지 않고도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자신의 경험에서 알아냈을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여 알아냈을까. 인간을 깊이 이해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감탄스럽다.

 

 

 

 

 

8.

“거창한 문제를 제기하는 입센이나 헤벨 같은 작가들, 저 이상한 거인들은 작품에서 너무나 심오한 문제들을 울려대지만,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그다지 기쁨을 안겨주지는 못했다.”(185쪽)

 

 

헤세가 <인형의 집>이란 문제작을 쓴 입센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에 놀랐다. 이런 작가보다 새나 하늘의 구름을 노래하는 시인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으음... 이것은 생각해 볼 점.

 

 

이해를 돕기 위해 헤세가 좋아하는 시구를 소개한다.

 

 

“세계는 너무나 고요하고

어스름 속에 덮여 있다

너무나 아늑하고 사랑스럽게“(304쪽)

 

 

 

 

 

9.

“세계사의 가장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시시한 작품이 나올 수 있고, 잃어버린 바늘이나 눌어붙은 수프 같은 아무것도 아닌 소재를 가지고도 진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280쪽)

 

 

“바로 이들, 이들 목가시인들, 풀잎 하나도 계시로 여기는 단순하고 눈 밝은 이들 신의 자식들, 우리가 보다 소박한 작가라고 일컫는 바로 이들은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안겨준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가르쳐준다.”(185쪽)

 

 

무엇에 대해 글을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글감의 선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감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 소설의 한 문장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게 글감이다.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사람은 마흔 살이 넘으면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아도 글 쓸 게 충분하고, 마흔 살까지 경험한 것들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재료로 글을 쓰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독서와 사색을 할 것, 이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연애를 하라, 여행을 하라 등의 말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험이 부족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10.

“그런데 나는 특히 나 자신의 책들에서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가장 혐오한다.”(214쪽)

 

 

“나는 세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흥미진진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 객관적으로, 너무나 짧게,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215쪽)

 

 

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니, 의외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는 편이라 동의할 수 없겠다. 하지만 문학이란 게 ‘흥미진진하게 쓰기’보다 ‘심오하게 쓰기’가 더 좋다고 한다면 이건 생각해 볼 만하다. 헤세의 <데미안>이란 작품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심오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것.

 

 

 

 

 

11.

“어떠한 사상가의 어떤 책, 어떠한 시인의 어떤 시도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다르게 파악될 것이며, 다른 울림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괴테의 『친화력』을 읽고 단지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내가 이제 다섯 번째로 읽게 될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268~269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긴 시간을 두고 읽을 적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읽을 적마다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셈이다.

 

 

 

 

 

12.

마지막으로 헤세의 메시지 중 가장 무게가 느껴지는 글을 뽑았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정신적으로 획일화하기 위해 민족의 특성을 없애는 것이 결코 저의 이상은 아닙니다. 오,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스런 지구에 다양성과 차이, 구별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인종과 민족, 수많은 언어, 많은 종류의 성향과 세계관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입니다. 저는 전쟁과 정복, 합병을 증오하고 철저히 반대합니다. (…) 저는 ‘위대한 단순화’에 반대하며, 질과 완벽성, 모방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합니다.”(295쪽)

 

 

동의한다.

 

 

 

 

 

 

..........................................

<후기>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눈에 띄어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221쪽)

 

내가 고치면 :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지만,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또는) “나는 그 원칙을 근사하다고 여기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원칙을 단 한 달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2)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현상이다.”(227쪽)

 

내가 고치면 :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사람이다.

 

 

 

3)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300쪽)

 

내가 고치면 :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하거나 겸손해지려는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또는) “그를 움직이고 이끄는 것은 거만함이나 겸손함을 위한 힘든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빛에 대한 사랑, 현실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참된 것을 통과시키는 능력입니다.”

 

 

 

 

 

..........................................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 있긴 하지만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4-04-3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 책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전 헤세 오래 전에 졸업했는데...
한동안 헤세가 좋아서 <데미안>을 비로해 몇 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지금 읽으라고 그러면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말입니다.

쓰신 3번 글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건, 엊그제 전에 써 놨던 대본을 연출가한테 보여줬더니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그러고, 설명조라는 둥 그러는 거예요.
어찌나 기분이 잡치던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도 어지간히 소심하다 싶었어요.
오늘은 어떠냐구요? 날씨만큼이나 맑음이어요.
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조짐이 보여서요. 웃기죠?ㅋㅋ

페크pek0501 2014-04-30 17:45   좋아요 0 | URL
예, 읽을 만한 책이에요.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요. 이런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아요.
기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기도 하죠. 요즘 좋아하는 건 봄 공기와 걷기와 에세이예요.

아무리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즐기면서 노력하는 자를 따를 수 없겠죠.
그러고 보면 재능이란 별것 아니에요.
"천재는 l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이다."(에디슨) ^^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 작가들이 동시대 작가를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때가 있죠.헤세가 입센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태도로, 서머싯 모옴은 토마스 하디와 헨리 제임스의 명성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하지만...

페크pek0501 2014-05-02 15:29   좋아요 0 | URL
서머싯 몸이 쓴 <과자와 맥주>는 토마스 하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던 것인데 좋게 쓰지 않아서였죠.
시각의 차이라는 게 있겠죠. 누구에게나 좋은 작품이란 없는 건가 봐요...^^

노이에자이트 2014-05-0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길 가다가 이쁜 여자를 보면 저절로 시를 읊게 됩니다.오~ 여인이여!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곁에 있어주오~하면서요.

페크pek0501 2014-05-03 13:35   좋아요 0 | URL
ㅋㅋ 젊다는 증거입니다. 좋은 일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