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개의 낱말을 중심으로 리뷰를 써 보았다.

 

 

 

1. 오해 : 말은 오해를 낳는다. 행동도 오해를 낳는다. 그래서 세상은 수많은 오해로 만들어진 각각의 세계를 구성한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각본을 미리 짜 놓고 그것을 상대에게 꿰맞추기 일쑤다. 그래서 진실은 굴절된다. 종종 억울한 일이 생기곤 하는 이유다.

 

 

소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미스 풍켈 선생님은 매우 엄격하고 신경질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어느 날 소년은 10분 지각을 하여 피아노 선생님을 화나게 만든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가 소년을 한참 동안이나 울타리 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도중에 자동차를 두 대 만났으며, 네 명의 행인을 앞질러야만 했기 때문에 지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소년에게 늦은 이유에 대해 변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제멋대로 이렇게 말한다.

 

 

“그럼 그렇지, 개하고 놀았겠지! 얼음과자도 하나 사 먹었을 테고! 너 같은 애들은 내가 잘 알고 있어. 히르트 아줌마네 구멍가게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면서 얼음과자나 사 먹을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소년은 이런 오해를 받는 게 분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혀 버렸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가방이나 열고 악보나 꺼내서 뭘 배웠는지나 해 봐! 보나마나 연습도 안 했겠지!”라고 피아노 선생님은 소리를 꽥 질렀다.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이 숙제로 내 주었던 연습곡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서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소리개의 공격을 비롯하여 흥분되는 일들을 겪었고 지각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혹독한 꾸지람을 들어서 소년의 마음은 흙탕물이 튄 옷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 곡을 잘 칠 수가 없었다.

 

 

소년이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자, “내가 그럴 줄 알았지!”하면서 피아노 선생님은 어금니 사이로 뱉어 내는 듯한 말로 화를 냈다.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네 녀석이 암만 그래도 네까짓 녀석이 나를 갖고 놀게는 안 해, 알았어? 내가 이렇게 화만 내고 말리라고는 꿈도 꾸지 말아라! 네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 네 아빠한테도 전화할 거야. 네 녀석이 일주일은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패 주라고 할 거야! 앞으로 3주일 동안은 집 밖으로도 내보내지 말고, 하루에 세 시간씩 앉아서 사 장조를 연습시키라고 하고, (…) 내 맛 좀 보라구, 이 말썽꾸러기 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 ”

 

 

소년이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은 이렇다.

 

 

“네 물건 싸 가지고 꺼져 버려!”

 

 

 

 

 

2. 자각 : 우리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의 저마다의 경험에서 각자 특유의 자각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 처음 갖는 깨달음일 수 있다. 소년은 무엇을 자각했을까.

 

 

“나는 온몸으로 떨었다. 무릎이 너무나 떨려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 나를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오한이 날 정도로 몹시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은 미스 풍켈 선생님의 난리법석이 아니었다. 매 맞을 것과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감금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뭔가를 두려워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보다는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3. 결심 : 누구나 참담한 감정이란 수렁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수렁에 빠지면 혼자서는 빠져 나오기 힘들다. 정신이 극단적인 생각으로 향하게 만들며 비이성적인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소년이 그랬다. 피아노 선생님의 꾸지람으로 인해 참담한 감정에 사로잡힌 소년은 자살을 결심한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죽는 방법으로 소년이 택한 것은 덩치가 커다란 가문비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떨어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일어날 아주 멋진 장례식을 상상했다.

 

 

 

 

 

4. 상상 : “아주 멋진 장례식이 되겠지! 교회 종이 울릴 테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윗마을에 있는 공동묘지는 수많은 조객들로 미어터지겠지. 나는 유리 관 속에 누워서 수많은 꽃 속에 파묻혀 있을 테고, 까만색 조랑말이 날 끌고 가면 사방에서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요란하겠지. 부모님이 우실 테고, 누나와 형들도 울 테고, 우리 반 아이들도 울 테고, 하르트라웁 박사 부인과 미스 풍켈 선생님도 울 테고, 멀리서 찾아 온 친척들과 친구들도 엉엉 울면서 그들 모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지르겠지. ‘엉 엉!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우리 잘못이야! 만약에 우리가 좀 더 잘해 줬더라면, 너무 못되게 굴지도 않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그 착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상냥했던 아이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으련만!’”

 

 

이것은 매우 황홀한 상상이었다. 이 상상이 소년을 아주 행복하게 하였다.

 

 

 

 

 

5. 사소함 : 사소한 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가 많은 게 우리의 삶이다. 사소한 일로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을 하다가 이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소함은 사소하다고만 볼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소년은 죽기 위해 가문비나무에 올라갔다. 가문비나무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높이가 30미터쯤 된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세다가 ‘셋’하는 순간에 눈을 그대로 감은 채 허공으로 몸을 날린 다음 떨어지는 순간에는 다시 눈을 뜨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소년이 떨어지기 직전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탁’하는 소리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30미터 밑에, 그것도 내가 뛰어내린다면 나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도 넘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수직적인 위치에 나타났다. 난 나뭇가지를 손으로 꽉 부여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소년은 좀머 아저씨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소년은 좀머 아저씨가 자신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죽기로 한 것을 그만두고 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간다.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의 꾸지람이라는 사소한 일로 자살을 결심했듯이 역시 사소한 일로 자살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6. 좀머 씨 :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는 좀머 씨. 소년의 어머니는 그를 밀폐 공포증 환자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밀폐 공포증이 아주 심하단다. 그 병은 사람을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만들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좀머 씨가 누구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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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멀리 사라지는 기차의 뒷모습과도 같은 유년기의 흐릿한 추억이 되돌아오는 기차처럼 또렷이 보이는 듯했다. 소년을 통해서 유년기의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멋진 선물이었다.

 

 

좀머 씨는 베일에 싸인 존재로,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뿐이다. 소년이 고통(또는 참담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좀머 씨에게서 자신보다 더 큰 고통(또는 참담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자신만이 느낀다고 생각한 어떤 감정을 남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고 공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때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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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5-08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보면 사랑을 느끼며 배우고
슬픔을 보면 슬픔을 느끼며 배우지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면
우리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좋은 꿈 꾸리라 생각해요.

페크(pek0501) 2013-05-08 12:04   좋아요 0 | URL
그런데 우리 인간은 빛만 보는 게 아니라 그림자도 함께 봐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라서 말이죠. 빛과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아야 하려나요.

봄날이에요 함께살기 님. 좋은 봄날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