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생 때 금붕어를 키운 적이 있다. 한 마리의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헤엄치며 노는 것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먹이를 주려고 먹이가 든 내 손을 어항 위로 가까이 대면 금붕어는 먹이를 먹기 위해 위로 쏙 올라오곤 해서 먹이를 주는 재미도 있었다. 어째서 한 마리뿐이었는지 그 이유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가 한 마리만 준 것인지, 아니면 몇 마리를 샀는데 다 죽고 한 마리만 남았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지금부터 말하려는 사건이다. (누구나 지난 일에 대해선 인상적인 부분만 기억하는 법이다.)
한 마리가 어항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보니 금붕어가 심심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김새와 크기가 비슷한 것으로 금붕어 한 마리를 더 사서 그 어항에 넣어 주었다. 둘이 친구처럼 의지하며 즐겁게 놀라는 뜻에서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가 키우던 금붕어가 새로 사 온 금붕어를 공격하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키우던 금붕어가 입으로 새 금붕어의 몸을 쪼고 있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새 금붕어는 도망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사람이고 그들은 금붕어니까. 혹시 둘이 장난치며 노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며칠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새 금붕어가 물 위에 떠서 움직이지 않았고 물은 뿌옇게 변해 있었다. 죽은 것이다. 둘이 즐겁게 장난친 게 아니라 괴롭게 전쟁을 치르고 새 금붕어가 패배하여 죽은 것이다. 아마 한쪽에서의 일방적인 전쟁이었을 것이다.
난 이 일에 충격을 받았다. 죽은 금붕어를 땅 속에 묻어 주고 나니 기분도 우울했다. 그리고 동료 금붕어를 죽인 그 금붕어를 더 이상 좋아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정이 떨어졌고 무서웠다. 그 뒤로는 더 이상 금붕어를 키우는 취미가 없어져 버렸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일으킨 그 금붕어에 관한 것이다. 홀로 있는 게 심심할까 봐 내 딴엔 생각해서 새 금붕어를 넣어 주었는데 새 금붕어를 죽임으로써 오히려 홀로 남는 것을 택한 그 마음 작동의 이유가 궁금하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으로 알고 그랬을까. 먹이를 나눠 먹어야 하는 경쟁자로 알고 그랬을까. 일종의 텃세였을까. 그 이유를 금붕어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모를 일이다.
사람들 중에도 그 금붕어처럼 나의 예상과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친절을 베푼 나의 말에 상대가 불쾌감을 표명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째서 그들은 내가 예측하던 것과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하는 것일까. 서로 삶의 역사가 달라서일까, 세계관이 달라서일까.
이런 생각 끝에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나 역시 분명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보여 상대를 실망하게 만들거나 상처를 준 적이 있을 것이다.
2.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른 방향으로 상대가 마음 작동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때 그렇다. 그럴 때 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려는 태도와 상대에 대해 관찰하는 태도가 내게 필요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것과 관련하여 강신주 저,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눈여겨볼 만한 이런 글들이 있다.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 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주장의 기초입니다. 관찰자의 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과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각하고, 말하고, 기술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강신주 저,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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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비트겐슈타인)가 혐오했던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함부로 말하는 인간의 허영이나 과시욕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속내에 대해 당사자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함부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 강신주 저,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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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맥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규칙을 따른다. ~ 문제는 같은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발생하기 쉽다. 겉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은 지역, 가족, 학교, 전공 등등에 의해 나의 문맥과는 일치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 강신주 저,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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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무의식적 정서, 즉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상대방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읽을 수 있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 강신주 저,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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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사람마다 세상을 읽는 문법이 다르고 사유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