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5) 어른이 된다는 것 외
1.
어른이 된다는 것
인간의 고독을 알기 시작하면 어른이 된 것이다.
비가 오는 걸 좋아하게 되면 어른이 된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게 흥미 없어지면 어른이 된 것이다.
라면을 먹는 게 싫어지면 어른이 된 것이다.
병원 주사가 무섭지 않게 되면 어른이 된 것이다.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어른이 된 것이다.
타인의 약점을 포용할 수 있으면 어른이 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기면 어른이 된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인간의 기본감각을 구성하는 것은 시각, 촉각, 청각, 미각, 후각이다. 젖비린내가 가시고 사내냄새가 나는 것만으로 어른이 다 됐다고 하기엔 미흡하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나는 오감의 변화를 거쳐 마지막으로 어른을 완성하게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마음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따금씩 얼굴을 마주하는 먼 곳에 있는 이들보다도 늘 서로 부대끼며 사는 이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 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에서.
|
이 글에 따르면 어른이 되는 시점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길 때라고 한다. 내가 생각할 땐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 객관적으로 보며 의식할 수 있어야 어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화가 날 때, 자신의 감정에만 취해 화를 낼 게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헤아리며 감정을 자제할 줄 알아야 어른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사람은 아마 커피숍에서 혼자 누군가를 기다릴 때조차도 누가 봐도 아름답도록 좋은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마치 거울 앞에 있는 것처럼 ‘자기 점검’을 할 것이다.
어른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는 알고 살아야겠다. 각자가 바람직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준 하나는 가져야겠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서.
2.
그의 1%의 단점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단점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처음엔 잘 몰랐던 어떤 점이 언제부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그것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99%의 좋은 점마저 없애 버리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로 그 1%의 단점이.
그 1%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다. 이렇게 예를 들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 좋은데 그 1%의 단점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만약 만날 때마다 꼭 한 번 이상의 거짓말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친구로서 만날 수 있을까. 또 어떤 사람은 다 좋은데 그 1%의 단점이 험담을 하는 것이다. 만약 만날 때마다 꼭 한 번 이상의 험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친구로서 만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다 좋은데 그 1%의 단점이 잘난 척을 하는 것이다. 만약 만날 때마다 꼭 한 번 이상의 잘난 척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친구로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성격적 단점을 얼굴의 점으로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두 남녀가 만나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 얼굴에 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 점은 개미보다 작아 보였으며 그 점이 있어도 그녀는 그 남자가 좋았다. 한 마디로 그녀는 그 점이 그 남자의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감정도 변해서 어느 시점부터 그 점이 점점 크게 보이더니 급기야 개미보다 작았던 점이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로 보이면서 보기 싫어졌다. 그의 1%의 단점이 그의 99%의 좋은 점을 다 덮어 버렸다. 그녀는 남자를 만날 때마나 자신의 변심 때문에 괴로웠다. 결국 그녀는 그와 결별했다.
이럴 경우 그녀는 그 남자가 상처를 받을 게 가엾어서 싫어도 억지로 참고 만나야 할까. 결별한 그녀에게 우리는 마음의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 1%의 단점이 그 나머지 99%를 무색하게 하는 이런 상황에 우리는 이별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자꾸 어떤 단점이 눈에 띄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우리는 그 상대를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점을 고치라고 충고를 할 수도 없다. 사람의 어떤 점은 하나의 습관이 되어 버려 그것을 없애는 게 쉽지 않다. 오히려 충고함으로써 그 상대의 기분만 상하게 할 가능성이 많다. 결국 어떤 단점이 크게 거슬리기 시작하면 그 인간관계는 끝장나고 마는 게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나에게도 물론 단점이 있다. 그런데 알면서도 고쳐지질 않는다. 그 이유를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찾았다.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든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하고 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참 공감 가는 말이다.
인간이 추악한 짓을 하는 것은 오직 자기의 참 이익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은 대체 누구인가? ~ 아아, 이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가! ~ 인간이란 자기의 참된 이익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밀어젖히고 아무에게도 아무것에도 강제되고 있지 않은데도 다른 모험의 길로 돌진하는 법이다. ~ 다름 아니라,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든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하고 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대되더라도 하고 싶은 걸 어쩌겠는가. -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
그런데 아까 말한, 그녀와 헤어진 그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답은 간단하다. 그 점을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분명히 있다. 짚신도 아름답게 봐 주는 이가 있는 법이니까. 연인관계에서도, 친구관계에서도.
3.
어떤 신문을 구독할 것인가
내가 구독하는 신문은 안티팬이 많이 있는 신문이다. 안티팬들은 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느 신문을 보냐고 물으면 신문의 이름을 말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다른 신문으로 바꿀까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냥 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신문의 편집방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다른 신문을 보는 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신문은 자주 새로운 변화를 꾀하며 도전하는 정신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만들어 가는, 볼거리가 풍성한 신문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셋째, 이 이유가 제일 중요한데, 사설을 읽으면 나와 생각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이 같은 신문을 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의 차이를 경험함으로써 사고의 균형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경영학의 대가 톰 피터스는 말했다. “두 사람이 업무에 대해 항상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불필요한 사람이다.” 신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와 생각이 같은 신문은 불필요한 신문이다.
(만약 같은 사안에 대해서 다른 신문의 반응이 궁금해지면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4.
읽은 책 중에서 인상적인 글
R. M. 릴케 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외롭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외로움이란 어렵기 때문이죠. 그것이 어렵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외로워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외로움에도 가치가 있음을 안다면 외로운 시간에 위로가 될 것 같다.
R. M. 릴케 저, <아름다운 여인들에게>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행복하고 충만한 처지에 있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진지하고 깊이 인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삶에도 그 나름대로 불행으로 인한 이득이 있음을 안다면 삶의 위안이 될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값싼 행복과 고결한 고민과 과연 어느 쪽이 좋을까?”
이 글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사색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답을 쉽게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고결한 것은 좋아하지만 값싼 행복을 물리칠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자신의 삶이 아니라 자식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면 답은 쉽게 나온다. 자식들이 고결한 고민 따위는 하지 말고 값싼 행복에 만족하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마음고생을 하는 건 싫기 때문이다 품위와 품격은 좋아하지만 그 무엇보다 행복이 우선 아닐까.
5.
아직 미래가 남아 있다
또 여름이다.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왜 그리 여름은 빨리 오는지 모르겠다. 작년 여름이 석 달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1년이라니. 시간에 바퀴가 달린 것만 같다. 그 바퀴가 이젠 두렵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늦여름이다. 늦여름은 지루하던 더위가 끝나서 아침과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간지럽게 해서 좋다. 8월 말이나 9월 초의 날씨가 그렇다. 그런 날 해질 무렵에 산책을 하고 싶다. 더위를 무사히 넘긴 자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걸을 수 있는 늦여름.
언제 이 여름이 가려나. 내 마음은 벌써부터 늦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만족하는 현재를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겐 아직 미래가 남아 있다.
“당신은 어떤 미래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당신이 기다리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 날입니까, 회사에서 승진하는 날입니까, 책 내는 날입니까, 사랑하는 이와 만나는 날입니까, 다이어트가 성공하는 날입니까,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입니까,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날입니까, 남에게 꿔 준 돈을 받을 날입니까, 아니면 실컷 웃는 날을 기다립니까?”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기다림을 갖고 있을 것이다. 미래를 향해 우리가 기다림을 갖는 것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그 무엇이 미래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