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7) 불행이 필요한 이유


이번에 편안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친정의 친척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큰어머니와 큰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고모와 작은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다. 형제들을 하나씩 잃으실 적마다 아버지는 무척 힘들어 하셨다. 그런 친정아버지가 최근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 줄 알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그 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스스로 행복함을 자각하는 일이 드물고 어떤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비로소 지난 시간의 행복을 알게 되는 것 같다. ‘행복은 사라진 뒤에 빛을 낸다’라는 영국의 속담처럼.


행복과 불행이 말을 나눌 수 있다면 이런 대화가 오고갔으리라고 상상해 본다.



행복 : 자네는 어째서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불행 : 그 이유는 이런 것일세. 사람들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네. 그래서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일세. 또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늘 자만하다네. 내가 나타나야만 겸손해져서 기도를 한다네. 그러니 나의 존재는 필요한 것이지.

행복 : 왜 사람은 꼭 겸손해야 되나?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이유를 말해 보게.

불행 :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자만하기 쉬운데, 자만하면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라네. 자만하면 그를 좋아할 이가 없어 외로워져서 자신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도 예사로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마저 불행하게 만든다네.

행복 :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행복한 세상을 위해 불행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군.





언젠가 읽은 쇼펜하우어 저, <사랑은 없다>에 이런 글이 있다.





물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극단의 갈증이 필요한 것처럼 고통스러운 병고는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고, 늙었다는 것은 젊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극단의 구속은 자유의 소중함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그토록 싫어하고 피해 왔던 불행들이란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 162쪽




그의 말처럼 불행은 우리 삶의 사이사이에 꼭 끼어 있어야 할,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불행이 아예 없다면 우린 행복감을 갖지 못했을 테니까. 그것은 마치 ‘죽음’이 없다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는 어떤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산다면 어쩌면 사람들은 행복을 모른 채 삶의 권태에 빠져 우울하게 살지도 모를 일이다.


또 인간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불행’의 존재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어떤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저절로 그 일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이때 기도는 이미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가 나 자신이 행복해야 주위의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면, 우리에게 불행이 필요한 이유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우리로 하여금 행복을 절실히 깨닫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불행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 말에 우리는 동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겪는 불행에 대해 덜 분노하고 덜 슬퍼하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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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아버지는 다행히도 몸이 많이 회복되어 퇴원하셨지만 연세가 많은지라 몹시 수척해지셨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중인 요즘, 이와 관련된 하나의 글귀를 책에서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의 글입니다.


“인간에게는 행복 이외에 똑같은 분량의 불행이 항상 필요하다.”(도스토예프스키)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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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관한 책들>


<이기주의자로 살아라> 요제프 키르슈너 저.  

  
 

  “가령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 인생이 단 하나의 큰 사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루를 배열하고, 그날그날 생겨나는 수많은 작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며, 어떻게 끝내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 베르트랑 베르줄리 저.

 

“행복을 의무로 보자. 그러면 의무는 활동이 된다. 행복은 고양되고, 깊어진다. 행복 속에 깃든 도덕이 행복에 아름다움을 깃들게 한다. 행복은 단순히 즐겁지 않고 아름답기까지 해야 한다. 의무가 바로 그것을 깃들게 한다.”

 

 


 

 

<행복론ㆍ인간론> 알랭 저. 

 

 

 “원래 유쾌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기분이란 항상 불쾌한 법이다. 그리고 모든 행복은 의지와 자제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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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6-16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친정아버님이 편찮으셨군요. 걱정이 많았겠지만 퇴원하고 조리를 잘 하시면 회복되겠지요~ 역시 건강이든 행복이든 반대의 상황이 돼봐야 절실히 깨닫게 되는군요.

페크pek0501 2010-06-16 13:44   좋아요 0 | URL
옛친구를 만난 듯 반갑습니다. "벗들이 먼 곳에서 오는 것은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맞아요, 반대의 상황에 처해야 깨닫게 돼요.
겸손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을 듯해요.

글샘 2010-06-2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많이 졸이셨겠네요. 그래도 잘 퇴원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매 순간 감사하며 사는 일, 그게 스님이고 수녀님이고 하느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이런 생각, 맨날 병원가서 아픈 사람 만나야 들죠.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ㅠㅜ

페크pek0501 2010-06-26 22:34   좋아요 0 | URL
인간의 어리석음을, 소설이 아닌 바로 제 자신을 통해 깨닫곤 합니다. 과거에도 요즘에도요.

어리석으니까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린 신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