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줍다> 내가 뽑은 최고의 글
1.
예전에 비해 과학과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오늘날 우리의 생활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 풍요로운데 풍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이 생겨났다.
2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30평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3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40평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또 자동차가 없는 사람은 자동차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동차가 있는 사람은 더 고급의 자동차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만족’이 부재하고 상대적 빈곤감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마샬 살린스(사회학자)에 의하면 오스트레일리아나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는 원시 유목 민족은 ‘절대적 빈곤’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풍요로움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느긋하게 수렵하고 채집하고, 개인이 소유하게 되는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가진다. 이들에겐 개인 소유물이란 없으며 아무것도 저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풍요를 느낀다. 그들과 같이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움을 느끼며 사는 이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들처럼 풍요 속에 살려면 그들처럼 ‘나누는 삶’을 실천해야 가능하다. 나눔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알고,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이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게 가능할까.
확실한 건 함께 나눌지 모르고, 오로지 남의 나라에 비해 잘 사는 경제대국이 되는 것만이, 또 남보다 많이 가진 부자가 되는 것만이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우린 행복에서 멀어져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부유한 나라가 되는 것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마음의 자세가 우리에게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아질 듯하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게는 다음의 글이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로 읽힌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김구 저, <백범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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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어리석기 일쑤이고 모순투성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기에 세상은 살만한 게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이 정확하고 실수가 없고 반듯한 사람들만이 있는 세상이란 얼마나 싱겁고 재미없을까.
이런 세계를 상상해 보란 말이다. 신문에는 살인 기사가 나지도 않고 모든 인간은 전지전능하며, 불이라곤 난 적이 없고 비행기 사고도 없고, 남편이 아내를 버린 일도 없고 합창대의 처녀와 눈이 맞아 도망치는 목사도 없으며,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리는 왕도 없고 결심을 바꾸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사람들 모두가 논리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열 살때 스스로 짜낸 계획을 실현해 내고야 마는 세계 - 이렇게 되는 날에는 이 즐거운 인간세계와도 그만 작별이다!
-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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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란 좋은 형식과 좋은 내용을 갖춘 것이다. 여기서 형식이란 글을 담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내용은 그 그릇에 담는 무엇이다. 어떤 글은 형식이 뛰어나되 그것에 담긴 내용은 보잘것없고, 어떤 글은 형식은 서툴지만 그것에 담긴 내용은 깊음과 울림이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좋은 글이다. 이때 형식이 필자의 문장력을 나타낸다면 내용은 필자의 사고력을 나타낸다. 좋은 글의 기준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문장력보다 사고력이다. 왜냐하면 사고력에 비한다면 문장력은 노력으로 누구나 길러질 수 있는 기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문법(文法)에는 다소 맞지 않아도 애송할 만한 문장이 있다. 문법엔 빈틈없이 맞아도 읽기 곤란한 악문도 있다. 이런 것들은 속이 얕은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길이 없다.
-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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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여성에 대한 임어당의 글은 심미안이 느껴져서 여러 번 읽게 한다.
미인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기분으로 꽃을 사랑하면 꽃의 각별한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꽃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기분으로 미인을 사랑한다면 부드럽고도 귀여운 애정을 느끼게 된다.
미인은 말을 알기 때문에 꽃보다 낫고, 꽃은 향기를 풍기므로 미인보다 낫다. 동시에 미인과 꽃을 다 같이 손안에 넣을 수 없다면 향기를 풍기는 꽃을 버리고 말하는 꽃을 손안에 넣어야 할 것이다.
-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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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게 하는, 임어당의 일침의 말.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 지식, 감상을 동반하지 않는 비판, 사랑을 동반치 않는 미, 정열을 동반치 않는 진리, 자비를 동반치 않는 정의, 온정을 동반치 않는 예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은 얼마나 비참한 세상이냐!
-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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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좋은 글을 뽑아 소개하려고 써 보았다. 나도 누군가가 뽑아 놓은 글을 즐겨 읽기 때문에 한번 해 보고 싶었다.
1.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라는 김구 선생의 글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게 만든다. 마치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사는 우리에게 삶의 올바른 방향을 미리 제시해 놓은 것만 같다.
2.
만약 내가 단 한 권의 책만 가져야 한다면, 난 서슴지 않고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책을 선택하겠다. 이 책의 글은 언제 읽어도 향기 좋은 차와 같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푸른 나무와 같다. 이 책을 만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1993년에 처음 읽으면서 글에 너무 매료된 나머지 좋은 글에서 눈을 떼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어서 노트에 적어가며 읽었었다.
이 책엔 좋은 글이 매우 많아 여기에 다 싣지 못했다. 나중에 한 번 더 좋은 글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독자를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사람이 되게 해 준다. 풍경은 아름답고 사색은 깊어지는 그런 길을 걷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