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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 외 ㅣ 하서명작선 23
0. 헨리 지음, 이가형 옮김 / (주)하서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마지막 잎새’를 읽고 - 마음가짐의 신비한 힘
“창 밖을 좀 볼래. 벽 위에 남아 있는 마지막 담쟁이 나뭇잎새를 좀 봐. 바람이 불어도 펄럭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아, 저게 바로 버만씨가 남긴 걸작품이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그날 밤 버만씨가 저기에다 저걸 그린 거야.”
이것은 <마지막 잎새>의 마지막 글이다. 독자가 예상 못한 극적 결말의 소설 기법이 감동과 재미를 주며 소설은 끝난다.
예술가촌의 삼층 벽돌건물의 꼭대기에 존시와 수는 그들의 아틀리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존시는 심한 폐렴에 걸려 환자가 되고 만다. 창 밖으로 보이는, 담쟁이 덩굴에 붙어 있는 나뭇잎을 세고 있었던 그녀는 담쟁이 잎이 모두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존시는 수에게, 담쟁이 나뭇잎이 사흘 전에는 거의 백 장이나 되었는데 이제 남은 것은 다섯 장뿐이라고 하면서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면 나도 가게 될 거야.”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채찍질하듯 매서운 빗발과 격렬하게 몰아치는 바람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는데도 여전히 벽돌담 위에 담쟁이 나뭇잎새 하나가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일층에 살고 있는 화가인 버만 노인이 벽에 그린 그림이었다. 이 노인은 수로부터 존시가 삶을 포기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녀를 가여운 아가씨라 여기며, 어떠한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을 ‘마지막 잎새’를 그린 것이다. 이 그림 덕분에 존시는 “내가 얼마나 나쁜 애였나를 보여 주려고 무언가가 저 마지막 잎새를 저기에 남아 있게 한 것 같아”하고는 살기로 마음먹고 병을 이겨 낸다. 하지만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맞으며 밤새도록 벽에 잎새를 그리느라 노인은 급성 폐렴에 걸려 죽는다.
나는 이 작품을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땐 버만 노인의 아름다운 이웃사랑에 주목하였다. 그 다음에 읽었을 땐 마음을 담은 작은 정성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큰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읽었을 땐 존시를 통해서 본,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마음가짐의 신비한 힘’에 주목하게 되었다.
만약 노인의 그림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고 말았다면 존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녀는 자신의 마음가짐대로 죽었을 것이다. 마음가짐의 힘은 이렇게 신비롭다. 작품 속 의사는, “그 아가씬 살아날 가망성이 거의 없어요. 희망이라고는 열에 하나밖에 안 된단 말이오.” 그러고 나서 “그 실낱 같은 희망도 본인이 살고 싶다는 의지를 보일 때만 기대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그렇듯이 장의사 쪽에 줄을 설 생각만 해선 어떤 약을 처방해도 소용없지.”라고 말한다. 소설에서가 아닌 현실에서도 의사들은 암에 걸린 환자의 보호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지입니다. 병을 이겨 내겠다는 의지가 병을 낫게 합니다.”라고.
마음가짐의 힘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잘 알 수 있는, 이야기(구미래 엮음, <행복의 문을 여는 이야기> 중에서)를 하나 알고 있다.
부잣집의 한 노파가 매일 지성으로 절을 찾아 부처님께 불공을 드렸다. “제 나이가 다 찼으니 언제라도 데려가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이 광경을 매일 지켜보던 동자승이 짓궂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도 노파는 불공을 드리고 마지막 끝맺음을 하였다. “제 나이가 다 찼으니 언제라도 데려가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그때 부처님 뒤에 숨어 있던 동자승이 목소리를 가다듬어 위엄 있게 말했다. “그렇게 소원이니. 내 오늘 데려가마.” 이 말을 들은 노파는 그 자리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마음의 영역에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학창시절이었다. 중학교 체육시간에 ‘철봉 매달리기’라는 것을 하였다. 철봉에 턱걸이한 자세로 최대한 오랫동안 매달리는 운동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철봉에 오래 매달려 있으려고 노력해도 되지 않았다. 삼십 초 동안 매달려 있어야 만점을 받는 것이었는데 겨우 몇 초 동안 매달리고는 몸이 곧 땅으로 떨어지곤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것으로 시험을 보는 날엔 만점을 받았던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삼십 초 동안이나 철봉에 매달려 있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강하게 작용했던 결과다. 아마 철봉 밑에 사람을 해치려고 으르렁거리는 짐승들이 있다면 인간은 초인의 힘을 발휘하리라.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이 일상 생활이 되어 버린 내 인생은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노동 자체에서 행복하고, 노동의 결실에서 행복하고, 그리고 노동한 뒤의 휴식에서 또 한번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렇듯 똑같은 조건에서도 각기 다른 얼굴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가짐의 차이일 것이다.
“바다보다 더 장대한 것은 하늘, 하늘보다 더 장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한 V. 위고의 말이 생각난다. 한 생명의 얻고 잃음의 큰 문제도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할 때, 마음가짐의 신비한 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일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잎새를 보며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죽음과 삶을 오갔던 존시의 모습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국에서 살 수도 있고, 지옥에서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우리의 재산에 따라 혹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좌우되기보다 마음가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