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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 마광수 문화비평집
마광수 지음 / 에이원북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마광수 지음 / 에이원북스
“고정관념의 사슬을 슬쩍 풀게 하는 기회를 제공”
나와 다른 생각의 글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기쁨이다. 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격적이어서 새롭고 새로워서 충격적인 저자의 글을 따라가노라면 어느새 낯선 여행지에 가 있는 느낌이다. 난 이 느낌이 좋았다.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이 제목부터 평범치 않다. 모든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 거기에 불륜이란 말이 끼어들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설사 기혼자의 외도라 할지라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결혼제도는 마땅히 없어져야만 할 악이다. 굳이 둘이 살려면 계약동거가 차라리 낫다. 그러나 프리섹스의 실천만이 인류를 권태와 가학의 질곡에서 구해줄 수 있다.<p22>
나는 결혼제도 자체를 혐오하지만, 결혼제도를 유지하면서 성적 쾌감을 권태감 없이 ‘불륜’을 통해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스와핑 섹스도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p35>
저자가 말한 핵심은 기혼자 남녀 모두 각자 연인을 두어도 무방하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마음의 돌을 던질 독자가 많을 듯하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일 것 같다. 나는 프리섹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정대로 움직일 때가 많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결혼이란 제도는 불합리하며, 인생은 부조리하다. 그러니 이혼이나 불륜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고, 인간의 어떠한 잘못도 무죄인지 모른다. 단 타인에게 큰 피해가 없는 한, 이란 단서가 붙어야 하겠지만.
둘째,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는 순간을 사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로 가정한다면, 2년 후 그 사랑의 강도는 반으로 줄고,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나면 남은 사랑의 열기는 또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공통으로 결혼 4년째가 가장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이 점을 생각할 때 한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하는 오늘날의 결혼제도는 다른 형태로 바꾸는 일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
셋째, 어떤 사물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겠다. 가령 일부다처제가 악덕이 아닌 시대가 우리에겐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좋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래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알 수 없다. 프랑스의 미래학자 파비엔 구보디망에 의하면, 평균 수명이 120세가 되는 2070년에는 평범한 사람도 평생에 두세 번 이상 결혼하게 된다고 한다. 아마 그때의 결혼제도는 지금의 그것과 매우 달라서 평생 이혼하지 않고 한 명의 배우자와 사는 사람이 오히려 화제가 될 것 같다.
저자는 다른 저서 <이 시대는 개인주의자를 요구한다>에서 ‘사랑은 언제나 비밀스러운 것이고 개별적인 것이고 또한 동시에 본능적인 것이다. 어설픈 정신분석이론이나 사회학적 이론이 거기엔 통용되지 않는다.’라고 이미 쓴 바 있다. 사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 개인적인 성향의 연애생활에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볼 때 ‘간통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긍정적인 아닌, 부정적인 시각으로 생각해 보았다. 기혼자가 프리섹스를 할 경우, 처음엔 강한 유혹에 끌려 불륜을 행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후회와 자책으로 괴롭지 않을까, 자신에 대한 자긍심 없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이것은 그런 연애가 비밀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의 생활에 익숙한 고정관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쩌면 그런 류의 고정관념을 깨기만 한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왜 나쁜가,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행위가 왜 나쁜가,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불륜을 보는 시각도 달라질 듯싶다. 아니 ‘불륜’이란 말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저자는 문학을 ‘금지된 것’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라고 보는데, 나 역시 문학이 그 영역에 머무를 때 강한 생명력이 있다고 본다. 결국 문학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아야 행복할까 하는 문제 제기이며, 바람직한 세상 만들기가 궁극적 목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성문화를 진지하게 검토함으로써 ‘금지된 것’에 닿으려는 노력은 성과를 떠나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리라. 현실적으로 외도하는 남편들이 많은 것은 한 사람의 배우자와 평생을 사는 게 본능적으로 불가능함을 말해 준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성문화의 추구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저자의, 파격적이고 때로는 비상식적인 생각들을 무조건 틀렸다고 보는 시각이 아닌, 유연한 사고를 하는 시각으로 보고 싶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데 너무 시대를 앞서서 보고 있군,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래에 자유로운 성문화가 생길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부부 각자가 서로에게 새 연인이 생겼음을 축하해 주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건 아주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저자가 이런 문제를 우리에게 하나의 논란거리로 제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을 흡수해야 한다. 되도록 나와 많이 다를수록 그 새로움은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새로운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 비판의식을 가지고 보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도 유익하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약점일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련다. 오래 전에 쓴 글들이 눈에 띄는데, 심지어 1987년에 쓴 글도 들어 있다. 처음엔 이런 점에 실망했는데, 곧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다. 오래된 글이라고 해도 현재에도 그 내용이 유용하다면 발표할 수 있다는 것과, 또 오래된 글이라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오래된 글이어서 더 가치를 두는 게 문학의 고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오래된 글에도 몇 년도에 썼는지를 정직하게 밝혀 둔 점에 좋은 점수까지 주게 되었다.
이 책은 읽을 만한, 꽤 괜찮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의 사슬을 슬쩍 풀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