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유하는 문화가 절실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상대가 친구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다. 문제는 도와주려는 자신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기분이 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움이라는 것의 의미는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한쪽에서 생각한 그 ‘도움’이 상대방에겐 ‘도움’이 아닌 경우가 될 수 있다. 또는 상대방이 고맙게 여기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내 친구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옷 정리를 하다가 키가 커진 아이들이 입지 못하는 옷들을 모아 이웃집 사람에게 갖다 주었다고 한다. 해진 옷도 아니고 다만 크기가 맞지 않아 버리기 아까운 옷이었으므로 당연히 받는 사람이 고마워할 줄 알았다는 게 그 친구의 말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 이웃 사람이 그 옷들을 받는 걸 거절하더라는 것이다. “난 우리 애들한테 남이 입던 옷 안 입혀요.”하고 냉정한 말투로 불쾌한 기분을 표출하는 것을 보고는 그 친구는 멍해졌다고 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우리 애들이 입지 못하는 옷들을 추려서 이웃에게 갖다 주곤 했기 때문이다. 어디 옷뿐이랴. 우리 애들이 학년이 바뀌어 필요 없게 된 동화책이나 참고서까지 갖다 주곤 하는 나로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혹시 내게서 받았던 그 사람도 어쩌면 언짢은 걸 억지로 참고 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또 이런 얘기도 들었다. 한 친구가 어느 모임에 갔다가 모임이 파해 귀가할 때였다. 자신만 빼고 모두들 차를 갖고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이 차가 없는 자신에게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큰소리로 말한 것이다. 자기를 배려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으나 그 말을 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문제였다. 그 친구는 차가 없는 자신의 처지가 자각되면서 자존심이 상하더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배려해 줄 때는 꼭 그 사람의 처지에서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진리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잘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은 ‘사유하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악’은 평범한 것으로 ‘사유하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타인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린 타인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악’을 저지르게 된다. 너와 내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성차별을 비롯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백인과 흑인, 부자와 빈자 등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는데, 그 차별이란 것도 결국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불쾌하거나 상처 받는 일은 대부분 ‘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한다. 무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과 달라서 말은 가까이 있지 않아도 전해 듣는 사람에게 독기를 품어낼 수 있다. 가령 자신에 대해 누군가가 험담한 사실을 제삼자의 전화로 전해 받고선 괴로워할 수 있다. 그래서 무기보다 말이 더 무서운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선의로 한 말인데도 마치 험담처럼 상대방에게 마음의 병을 앓게 할 수 있음을 생각할 때 말이 오가는 인간관계가 좋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서로 같은 처지에 있어 보지 않은 각각의 타인들이다. 또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열등감을 갖고 있기 쉽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말하는 것에 주의가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주위엔 결혼하지 않은 것에 열등감이 있는 사람도 있고 학벌 열등감이나 외모 열등감이 있는 사람도 있다. 또 가난함에 열등감이 있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열등감이 있는 부분에 대해선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에게 어느 대학 졸업했냐고 물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것은 ‘악’이다.

 

 


사물을 보는 시각은 각자 다르므로 사유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사물을 보는 시각은 자신의 삶에 따라 각자 다를 수 있다. 만약 방송을 통해 내일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접한다면, 직장인은 내일 출근할 때 우산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산 장수는 내일 우산이 얼마나 팔릴지를 기대하며, 비가 새는 집에 사는 이는 내일 지붕이 샐 것을 걱정할 것이다. 지붕이 샐 것을 근심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누군가가 비 오는 날의 낭만을 얘기하며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늘어놓는다면 그 말도 ‘악’이 될 수 있다.

 

 


타인을 알려고 노력하고 세상을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타인과 세상에 대해 사유를 게을리함으로써 약점 있는 누군가에게 악을 저지른 게 되고 마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다. 열등감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우열을 가리는 우리 사회의 산물이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열을 가려야 하는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타인과 세상에 대해 사유하지 않음으로써 누군가에게 치유될 수 없는 응어리가 생기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유하는 문화가 절실한 이유다.

 

 

만약 타인과 세상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예전보다 줄어든다면 그것은 좋은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걸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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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7일에 한국예총 홈페이지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그대로 옮겼습니다.

 

 

무척 덥습니다.

더위를 잘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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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19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세상을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순간에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조심스러워질 떄가 있는 것 같아요. 사소한 것들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조심하고 마음써도 참 어렵습니다. 내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내 마음도 잘 모른다는 것을 계속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오늘도 많이 더운 오후예요. 더운 여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8-07-20 15:24   좋아요 1 | URL
이렇게 정성이 담긴 댓글을 받으니 더위가 싹 가시는 듯합니다.

실제로 같은 사건을 함께 봐도 각자 본 내용의 전개가 다 다르다고 합니다. 무엇에 집중해서 봤는지 무엇을 놓쳤는지가 사람에 따라 다를 테니까요. 또 같은 생각으로 봤더라도 시각 차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오해와 왜곡이 일어나고... 말할 때 신중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알아 온 사람들이 편하고 좋더라고요. 새 친구를 사귀는 게 부담스럽고요.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좋지 제가 먼저 다가가기가 망설여져요. ㅋ

무척 더운 하루예요. 물 충분히 마시며 건강한 여름을 보내야겠습니다.
덥지만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