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다가 가져왔다.  

   



군주는 인간과 야수의 본성을 지닌 잡종 짐승  

자크 데리다의 미발표 원고, 마키아벨리의 '망각된 늑대' 

'속임수' 군주의 모습은 영원 불변한가?
"미국은 거짓으로 얼룩진 시뮬라크르 국가인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자크 데리다는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야수와 군주'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주관했다. 강의는 왕권과 '정치인의 동물적 형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갈릴레 출판사가 이 방대한 내용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그 내용의 일부를 입수했으며, 여기에서 데리다는 16세에 근대정치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기여한 니콜라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분석한다. <군주론>은 강자들의 지침서일까, 아니면 민중들의 교과서일까?

페리에스(Peries)가 번역한 니콜라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제18장에는 '군주들이 자신들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군주들이 지켜야할 발언에 관련된 대목, 곧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혹은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가?' 등과 관련된 질문은 '인간 고유의 속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 하나를 이루는 이러한 이중의 질문은 그 방식도 흥미롭다. 거기서 '늑대'뿐만 아니라 보다 잡다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 장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군주가 자신의 약속에 충실한 모습을 찬양할 만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에서 주목한다. 실제 그것은 찬양받을 만하다. 마키아벨리는 성실한 군주가 거의 없고, 대부분의 군주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속임수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군주들은 약속을 하면서 거의 대부분 속임수를 쓴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장 강한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군주들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로랑 드 메디치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투쟁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법과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과 싸우는 것이다." 2)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맹세한 신앙을 통해 권리, 정의, 성실성, 그리고 법, 약속, 규약, 제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약속의 배반, 거짓말, 서약 위반, 약속에 대한 무시, 힘의 무자비하고도 단순한 사용(최강자의 논리)을 통해 싸운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마키아벨리는 기묘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그것을 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 약속은 법에 대해 성실하고, 법을 존중한다. 그는 약속에 대한 충성도와 함께 법과 더불어 싸우는 것은 인간 고유의 속성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주장은 원칙적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 거짓말하거나 거짓 선서를 하지 않는 것은 인간 고유의 속성이자 존엄성"이라는 칸트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투쟁하는 두 번째 방식인 힘과 싸우는 것은 짐승들 방식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짐승인 것이다. 법이 아니라 힘이 최강자라는 논리는 짐승에 해당한 것이다.
 이런 두 논리를 펼친 후 마키아벨리는 법과 더불어 싸우는 첫 번째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세 번째 주장을 설파한다. 법만으로는 무기력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의지해야 한다. 군주는 법과 힘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투쟁할 줄 알아야한다. 따라서 군주는 인간과 짐승으로 동시에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구절을 인용하자면, "군주는 적절하게, 짐승인 동시에 인간으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3)
 

  약속에 대한 충실 등 법을 통한 행동이 무기력하거나 잘 굴러가지 않을 때, 약하거나 혹은 너무 약할 때에는 짐승으로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인 군주가 '마치 짐승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고대 작가들이 아킬레스와 고대의 여러 영웅들을 거론하며 우의적으로 가르쳐준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 일족인 케이론이 그들을 맡아 젖을 먹이고 키웠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교사를 그려내면서 작가들은 하나의 군주가 두 가지 본성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 하나의 본성이 다른 본성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4)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인간인 동시에 짐승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군주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 한편, 동물적인 부분은 잡종이어야 하고, 혼성적이며, 두 동물의 혼합물 내지 접목, '사자이자 여우'이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지 하나의 짐승이 아니라 하나 속에 두 개 짐승이 들어있는 것이다.
 

   "만약 사자에 불과한 동물이라면 덫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만약 여우에 불과한 동물이라면 늑대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덫을 알아내기 위해 여우일 필요가 있고, 늑대에게 겁주기 위해 사자일 필요가 있다. 단지 사자이기를 고집하는 동물들은 서투르기 그지없다." 5)
 여기서 선언된 적은 늘 '늑대'이다. 사냥하고 격퇴하며, 제압하고 투쟁해야할 대상은 늑대이다. '늑대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 더욱 흥미롭고 첨예한 문제는 늑대에게 '겁을 주는' 일이다.
 

  늑대에게 겁을 주는데 사자만으로 족하지 않을 경우 여우의 노하우를 이용할 수도 있다. 파스쿠아(Pasqua)가 주장한 대로 테러리스트들에게 테러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자크 시락(Jacques Chirac) 정부 하에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샤를 파스쿠아(Charles Pasqua)의 유명한 표현이다. 이 표현을 통해 파스쿠아는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동일한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시켰다.6)
 

   야만적 폭력의 상징인 늑대만큼 잠재적으로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며, 잔인하고 무법자일 필요가 있다.
 이 말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이 시대 사건들을 과도하게 열거하는 대신 나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가 자신의 저서 속에서 '불량국가(rogue states)' 7)라고 표현한 것을 언급하는데 그치련다. 불량국가들의 '국제 테러리즘'이라는 것에 맞서 미 전략사령부는 핵전쟁 위협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짐승처럼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대적자의 이미지를 적에게 제공하면서, 적이 겁을 느끼고 두려워하도록 만들라고 권고한다.

나는 '불량'이라는 단어가 동물사회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 따돌림을 당하는 짐승을 동시에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활이 걸린 이익이 문제가 될 때 그 짐승은 격분하거나 냉정함을 잃을 수 있고, 합리적인 인간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그칠 수 있는 것이다.
 

  적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정함에 있어 너무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말라고 지침서는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눈먼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과녁을 선정할 때 야수같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활이 걸린 이익이 관련될 경우 자신이 미칠 수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미치고 무분별하거나 비이성적인 모습, 다시 말해 동물로 변할 수 있는 척해야 한다.
 

  미 전략사령부의 권고사항 중 하나는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략적으로는 일부 요소들이 '통제를 벗어난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러한 가짜 태도, 시뮬라크르(simulacre, 흉내)의 능력은 군주가 여우와 사자의 자질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변신 자체는 인간의 책략이자, 책략이 아닌 척해야 하는 여우 인간의 책략이다. 바로 거기에 거짓말, 우화, 혹은 시뮬라크르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있다. 다시 말해 진실을 자처하거나 혹은 자신이 충실하다고 맹세하는 것은 늘 불성실의조건이 된다. 단지 여우처럼 영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은 것을 그런 척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런 것을 그렇지 않은 척하기 위하여 군주는 항상 여우가 되어야 한다.
 

   오직 여우만이 그런 식으로 변신할 수 있고, 사자와 닮기를 시작할 수 있다. 사자는 그럴 수 없다. 여우는 사자 역할을 하기 위하여, 심지어 '여우로서의 본성을 감추기 위하여' 충분히 여우다울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명백한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는 당대의 여우같은 한 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영리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해로울 경우 빈틈없는 군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 그때 군주로 하여금 약속하도록 만든 이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계율이다. 사람들이 모두 선하다면 아마 그는 좋은 군주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악한데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군주가 왜 그들을 위해 자신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자신의 약속 불이행을 무마하기 위한 적법한 이유들이 부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해 우리는 동시대의 무수한 사례들을 들 수 있다. 군주들이 불성실하기 때문에 쓸모없이 되어버린 너무나 많은 평화조약, 온갖 종류의 조약이 그것이다. 여우처럼 능란하게 처신할 줄 알았던 자들이 가장 번성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여우로서의 본성을 잘 숨길 줄 알고, 흉내 내거나 감추는 기술을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들이 순간의 필요에 의해 너무 쉽게 눈이 멀고 훈련되기에, 속이는 사람은 속는 사람을 늘 찾아내는 것이다."
 

  동시대의 수많은 예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유익하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강조한 바와 같이, 오늘날에는 가장 강력한 주권국가들이 국제법을 자신의 이익에 예속시키면서 약소국들의 주권을 제한한다. 심지어 바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국제법을 침해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에 대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약소국들을 불량국가, 다시 말해 무법자들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영어로 '불량'(rogue)은 바로 동물사회의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는 동물이 아닌가? 강대국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항상 이유를 대고 변명한다. 그들이 옳지 않다 할지라도, 힘이 약한 나라들  앞에서는 정당성을 지닌다.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분노로 가득 찬 짐승처럼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번역 : 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1) 마키아벨리(Machiavel), <군주론(Le Prince)>, 장 뱅상 페리에스(Jean-Vincent Pㅤㅁㅐㄼriㅤㅁㅐㄼs) 번역(1825), 파트릭 뒤푸에(Patrick Dupouey)의 소개와 주석,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의 서문, Nathan, Paris, 1982, p. 94-96.
2) 마키아벨리, <군주론>, 18장,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가?', 투생 기로데(Toussaint Guiraudet) 번역, Garnier Frㅤㅁㅏㅊres, Paris, 1837, p. 132.
3) 마키아벨리, <군주론>, 장 뱅상 펠리에스 번역, op. cit., p. 94.
4) Ibid.
5) Ibid.
6) 자크 시락 정부 하에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샤를 파스쿠아(Charles Pasqua)의 유명한 표현. 이 표현을 통해 파스쿠아는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동일한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시켰다.
7)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Rogue States. The Rule of Force in World Affairs>, South End Press, Cambridge(Massachusetts), 2000, 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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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9-12-2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언뜻 저도 데리다가 말년에 짐승과 주권자에 관한 세미나가 출간되고 있다는 얘길 들은 거 같은데 여기서 그 일부를 만나니 반갑네요 ㅎ 그런데 실례가 안된다면 도그지어란 무슨 뜻인가요?ㅎ

얼그레이효과 2009-12-2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그지어. dog's ear라고 하구요..우리가 책 읽을 때, 인상적인 구절 있으면 표시하잖아요. 책귀퉁이 삼각형 형태로. 그걸 뜻하는 거랍니다.~
 



 

 중학생 때부터 '법 영화'를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이 쪽의 대가는 지금은 그 인기가 많이 죽은 듯한 존 그리샴이 아닐까 싶다.  <야망의 함정>,<펠리컨 브리프>,<의뢰인>,<타임 투 킬>, <가스실>,<레인메이커> 등등 그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나오면 꼭 챙겨봤고, 비디오테이프로도 소장해놓았다. 영화가 흥미로우면 소설도 덩달아 샀던 때가 많았는데, <야망의 함정>의 원작인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린 시절, 외국 소설의 문체가 눈에 제대로 익지도 않았을 때인데, 막무가내로 읽었던 듯하다. <야망의 함정>을 감독했던, 이제는 고인이 된 시드니 폴락은 내가 소장한 dvd 타이틀 중 아끼는 작품인  <마이클 클레이튼>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8년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마이클 클레이튼>은 한때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했던 법정 영화의 맥을 전유하고 있다.  





<마이클 클레이튼>을 대충 본 이들에게 가장 의문으로 남는 씬은, 마이클 클레이튼이 곧 폭발할 자동차에서 내려  기이하게 세 마리의 말을 쳐다보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씬은 <타임 투 킬>에서 매튜 멕커너히가 사건이 풀리지 않아 괴로워할 때, 아내인 애슐리 주드가 갑자기 귀신처럼 나타나 어떤 영감을 주는 그런 '신비스러운' 장면과는 차원이 다르다. 클레이튼이 말 세 마리를 바라보는 장면은 본 작품에서 큰 핵심이며, 제이슨 본을 치밀하게 조직한 경험이 있는 토니 길로이는 이 씬을 위해 친절하게 힌트용 두 씬을 깔아놓는다. 죽은 친구인 변호사 아서와 클레이튼의 아들은  『Realm & Conquest』 란 책을 통해 클레이튼의 죽을 운명을 변화시켜주는데, 사실 이 대화 이전에, 아들이 클레이튼에게 삶에서 누구나 믿을 수 없다라고 하는 메시지가 책에 들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대목- 정확히 말하면, 클레이튼은 이렇게 말한다. "(아들이 책 속의 각 캐릭터들은 15개나 되고, 이 캐릭터들은 모두 서로를 믿지 못한다고 말하자) 삶과 같군"-은   삶의 어떤 윤리, 지켜야 할 정의, 그리고 자본과 법의 관계를 묻는 이 영화의 theme scene이기도 하다.  





법정 영화에선 특히 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자들의 양심을 해부하는 작업을 자주 시도한다. 법은 우리 사회의 부패를 막아주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지만, 그 부패의 온상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법은 사실 가냘픈 그 무엇이기도 하다. 아감벤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생각. 법이 갖고 있는 강건함을 약삭빠르게 아는 권력자들은, 법에서 법이 아닌 듯한 법을 위치시켜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이런 모호한 관계에서 자신의 강건한 '법체'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 '법체'의 모호함을 그 누구나가 다 알지 못하게  관리하는 권력자들에게 법은 상을 내린다.  그러나, 이 상은 법의 틈이자, 부정의함의 열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열림은 법과 마주친 개인의 양심이 어떤 경계 속에서 '죽은 체'연기를 해야할 지, 살아있다는 '선언'을 해야할 지를 갈등하게 만드는 진입구이기도하다. 클레이튼은 여기서'죽은 체 하는 연기'를 포기한다. 그는 아들의 말을 따라, 『Realm & Conquest』에 나오는 이들처럼, 같은 꿈을 꾼 듯한 모습으로 말이 있는 그 동산으로 갔으며, 거기서 죽은 친구의 어떤 부름을 각인해야 하는 의식을 치룬다. 법을 이기는 어떤 신비로움. 이 신비로운 장면은 사실 이 영화의 서사를 망치는 판타지가 아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하나의 문제적 씬이다.

# option -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Last Scene (이 영화의 품격을 보여주는 장면) 



마이클 클레이튼이 사건을 해결하고 50불만큼 길을 돌자는 말을 택시 기사에게 한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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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 ㅣ What's Up 6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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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는 법률 차원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법률적 조치라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되며, 어떤 법률적 형식도 가질 수 없는 것의 법률적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다른 한편에서 법이 생명에 가 닿고 스스로를 효력 정지시켜 생명을 포섭하기 위한 근원적 장치가 예외상태라면 예외상태에 관한 이론은 살아 있는 자를 법에 묶는 동시에 법으로부터 내버리는 관계를 정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14쪽

현대의 전체주의는 예외상태를 통해 정치적 반대자뿐 아니라 어떠한 이유에서건 정치 체제에 통합시킬 수 없는 모든 범주의 시민들을 육체적으로 말살시킬 수 있는 (합)법적 내전을 수립한 체제로 정의될 수 있다.이때부터 항구적인 비상 상태의 자발적 창출이 (반드시 그렇(15)게 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국가의 본질적 실천이 되었다)-15~16쪽

예외상태란 상이한 권력 형태들(입법,행정 등)이 아직 구분되지 않은 원초적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예외상태는 오히려 텅 빈 상태, 즉 법의 공백 상태에 근거하고 있으며, 아무런 구분 없이 충만한 원초적 권력이라는 생각은 자연 상태라는 개념과 유사한 법적 신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21쪽

권력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오늘날 의미를 잃어버렸으며 행정 [집행] 권력이 사실상 부분적으로는 입법권을 흡수해버렸다는 것이다. 의회는 더이상 법률을 통해 시민들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독점적 권한을 가진 주권 기관이 아니다. 행정 권력이 선포하는 여러 법령을 인가하는 존재로 축소되어버린 것이다. -42쪽

예외상태의 고유성이 법질서의 (부 (51)분적 혹은 전면적 )효력 정지라면 그러한 효력 정지가 어떻게 여전히 법질서 속에 포함될 수 있을까? 아노미가 법질서 안에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 만약 예외상태가 단순한 실제 상황이라면 , 즉 법률 바깥에 존재하거나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법질서가 결정적 상황에 고유한 하나의 공백을 포함하는 일이 가능할까? 과연 이 공백의 의미는 무엇일까?-51~52쪽

긴급 사태는 적법하지 않은 것이 적법한 것이 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특수한 개별 사례마다 예외를 통해 [법률] 위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되고 있다. / 긴급사태라는 형태를 띠는 한 예외상태는 - 혁명이나 헌정 질서의 사실상의 수립과 더불어 - '비합법적'이지만 절대적으로 '법률적이고 헌법적인' 하나의 조치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는 새로운 규범(혹은 새로운 법질서)의 생산으로 구체화된다.-54 / 59쪽

예외상태는 규범의 공백에 대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규범의 존립과 정상 상황에 대한 규범의 적용을 보증하기 위해 질서 안에 하나의 픽션적 공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공백은 법률 내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법률이 현실과 맺는 관계, 법률의 적용 가능성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65쪽

법질서 바깥에 있으면서도 그러한 법질서에 속해 있다는 것이야말로 예외상태의 위상학적 구조이며, 논리적으로 볼 때 예외에 관해 결정하는 주권자의 존재가 사실상 이러한 구조에 의해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주권자 또한 벗어남-속함이라는 모순 어법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 있다. -72쪽

예외상태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대한 효과적인 규범화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아노미의 지대를 법 속에 도입하는 셈이다. -75쪽

현대의 공법 이론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은 위기에서 비롯된 전체주의 국가들을 독재 체제로 정의하는 일이 관습으로 정착되어 있다. 그리하여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프랑코도 스탈린도 모두 똑같이 독재자로 제시되어왔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무솔리니도 히틀러도 독재자로 정의될 수 없다. 무솔리니는 국왕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된 수상이었으며, 히틀러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적법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제국 총통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와 독일 나치즘 체제의 특징은 현행 헌법 (알베르티노 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존속시킨 채, '이중 국가'라고 예리하게 정의된 패러다임에 기초해 법률적으로 정식화되지는 않았지만, 합법적인 헌법 옆에 예외상태에 힘입어 제2의 법적구조물을 둘 수 있었던 데 있다. 법률적 관점에서 이런 체제를 '독재'라는 용어로 묘사하는 것은 전혀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의 지배적인 통치 패러다임을 분석하기 위해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말라비틀어진 대립 도식을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95쪽

동란은 주권자의 죽음과 일치하며, 법의 효력 정지는 장례 의식 속에 통합되어 있다. 이는 마치 주권자가 본인의 '존엄한'인격에 모든 예외적 권력, 즉 호민관의 영원한 권한에서부터 보다 크고 무제한적인 전 집정관의 최고 명령권까지를 흡수해 이른바 살아 있 131 / 는 유스티티움이 됨으로써 죽음의 순간에 자신 속에 있던 가장 내적인 아노미적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동란과 아노미가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 도시전체를 뒤덮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131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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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684162 

이 주소로 보시면 방송보실 수 있습니다. 

단독 리뷰는 아니고, 중간에 짧게 나옵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란 곳에서도 당비의생각03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을 책으로 꼽아줬군요. 

http://www.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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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09-12-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에스비에스가 무슨일로 ㅡ.ㅡ
 

 한보희 선생이 영화 <국가대표>비평을 <온라인 당비의생각>에 연재한다. 분량이 많아서, 글을 나누었는데, 첫 파트가 올라왔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서 공유하고자 링크를 건다. 한보희 선생은 현재 《당대비평》기획위원회의 기획위원이자 what's up총서 시리즈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시리즈 중 하나인 슬라보예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를 번역했으며, 또 한 권을 열심히 번역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http://dangbi.tistory.com/30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당비의생각03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관련된 작은 이야기모임을 가지려 한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온라인 당비의생각>에  소개될 예정이다. 

패널은 한윤형(<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  /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저자) / 송인혁 (전 연세대학원신문사 편집장) / 한보희 (<당대비평> 기획위원) 예정이다. 

그리고 나와 웅진씽크빅 인문교양담당 임프린트 산책자 분들이 수고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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