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다가 가져왔다.  

   



군주는 인간과 야수의 본성을 지닌 잡종 짐승  

자크 데리다의 미발표 원고, 마키아벨리의 '망각된 늑대' 

'속임수' 군주의 모습은 영원 불변한가?
"미국은 거짓으로 얼룩진 시뮬라크르 국가인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자크 데리다는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야수와 군주'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주관했다. 강의는 왕권과 '정치인의 동물적 형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갈릴레 출판사가 이 방대한 내용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그 내용의 일부를 입수했으며, 여기에서 데리다는 16세에 근대정치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기여한 니콜라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분석한다. <군주론>은 강자들의 지침서일까, 아니면 민중들의 교과서일까?

페리에스(Peries)가 번역한 니콜라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제18장에는 '군주들이 자신들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군주들이 지켜야할 발언에 관련된 대목, 곧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혹은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가?' 등과 관련된 질문은 '인간 고유의 속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 하나를 이루는 이러한 이중의 질문은 그 방식도 흥미롭다. 거기서 '늑대'뿐만 아니라 보다 잡다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 장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군주가 자신의 약속에 충실한 모습을 찬양할 만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에서 주목한다. 실제 그것은 찬양받을 만하다. 마키아벨리는 성실한 군주가 거의 없고, 대부분의 군주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속임수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군주들은 약속을 하면서 거의 대부분 속임수를 쓴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장 강한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군주들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로랑 드 메디치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투쟁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법과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과 싸우는 것이다." 2)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맹세한 신앙을 통해 권리, 정의, 성실성, 그리고 법, 약속, 규약, 제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약속의 배반, 거짓말, 서약 위반, 약속에 대한 무시, 힘의 무자비하고도 단순한 사용(최강자의 논리)을 통해 싸운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마키아벨리는 기묘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그것을 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 약속은 법에 대해 성실하고, 법을 존중한다. 그는 약속에 대한 충성도와 함께 법과 더불어 싸우는 것은 인간 고유의 속성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주장은 원칙적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 거짓말하거나 거짓 선서를 하지 않는 것은 인간 고유의 속성이자 존엄성"이라는 칸트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투쟁하는 두 번째 방식인 힘과 싸우는 것은 짐승들 방식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짐승인 것이다. 법이 아니라 힘이 최강자라는 논리는 짐승에 해당한 것이다.
 이런 두 논리를 펼친 후 마키아벨리는 법과 더불어 싸우는 첫 번째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세 번째 주장을 설파한다. 법만으로는 무기력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의지해야 한다. 군주는 법과 힘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투쟁할 줄 알아야한다. 따라서 군주는 인간과 짐승으로 동시에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구절을 인용하자면, "군주는 적절하게, 짐승인 동시에 인간으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3)
 

  약속에 대한 충실 등 법을 통한 행동이 무기력하거나 잘 굴러가지 않을 때, 약하거나 혹은 너무 약할 때에는 짐승으로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인 군주가 '마치 짐승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고대 작가들이 아킬레스와 고대의 여러 영웅들을 거론하며 우의적으로 가르쳐준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 일족인 케이론이 그들을 맡아 젖을 먹이고 키웠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교사를 그려내면서 작가들은 하나의 군주가 두 가지 본성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 하나의 본성이 다른 본성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4)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인간인 동시에 짐승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군주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 한편, 동물적인 부분은 잡종이어야 하고, 혼성적이며, 두 동물의 혼합물 내지 접목, '사자이자 여우'이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지 하나의 짐승이 아니라 하나 속에 두 개 짐승이 들어있는 것이다.
 

   "만약 사자에 불과한 동물이라면 덫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만약 여우에 불과한 동물이라면 늑대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덫을 알아내기 위해 여우일 필요가 있고, 늑대에게 겁주기 위해 사자일 필요가 있다. 단지 사자이기를 고집하는 동물들은 서투르기 그지없다." 5)
 여기서 선언된 적은 늘 '늑대'이다. 사냥하고 격퇴하며, 제압하고 투쟁해야할 대상은 늑대이다. '늑대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 더욱 흥미롭고 첨예한 문제는 늑대에게 '겁을 주는' 일이다.
 

  늑대에게 겁을 주는데 사자만으로 족하지 않을 경우 여우의 노하우를 이용할 수도 있다. 파스쿠아(Pasqua)가 주장한 대로 테러리스트들에게 테러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자크 시락(Jacques Chirac) 정부 하에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샤를 파스쿠아(Charles Pasqua)의 유명한 표현이다. 이 표현을 통해 파스쿠아는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동일한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시켰다.6)
 

   야만적 폭력의 상징인 늑대만큼 잠재적으로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며, 잔인하고 무법자일 필요가 있다.
 이 말이 너무나 잘 들어맞는 이 시대 사건들을 과도하게 열거하는 대신 나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가 자신의 저서 속에서 '불량국가(rogue states)' 7)라고 표현한 것을 언급하는데 그치련다. 불량국가들의 '국제 테러리즘'이라는 것에 맞서 미 전략사령부는 핵전쟁 위협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짐승처럼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대적자의 이미지를 적에게 제공하면서, 적이 겁을 느끼고 두려워하도록 만들라고 권고한다.

나는 '불량'이라는 단어가 동물사회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 따돌림을 당하는 짐승을 동시에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활이 걸린 이익이 문제가 될 때 그 짐승은 격분하거나 냉정함을 잃을 수 있고, 합리적인 인간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그칠 수 있는 것이다.
 

  적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정함에 있어 너무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말라고 지침서는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눈먼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눈이 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과녁을 선정할 때 야수같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활이 걸린 이익이 관련될 경우 자신이 미칠 수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미치고 무분별하거나 비이성적인 모습, 다시 말해 동물로 변할 수 있는 척해야 한다.
 

  미 전략사령부의 권고사항 중 하나는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은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략적으로는 일부 요소들이 '통제를 벗어난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러한 가짜 태도, 시뮬라크르(simulacre, 흉내)의 능력은 군주가 여우와 사자의 자질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변신 자체는 인간의 책략이자, 책략이 아닌 척해야 하는 여우 인간의 책략이다. 바로 거기에 거짓말, 우화, 혹은 시뮬라크르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있다. 다시 말해 진실을 자처하거나 혹은 자신이 충실하다고 맹세하는 것은 늘 불성실의조건이 된다. 단지 여우처럼 영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은 것을 그런 척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런 것을 그렇지 않은 척하기 위하여 군주는 항상 여우가 되어야 한다.
 

   오직 여우만이 그런 식으로 변신할 수 있고, 사자와 닮기를 시작할 수 있다. 사자는 그럴 수 없다. 여우는 사자 역할을 하기 위하여, 심지어 '여우로서의 본성을 감추기 위하여' 충분히 여우다울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명백한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는 당대의 여우같은 한 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영리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해로울 경우 빈틈없는 군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 그때 군주로 하여금 약속하도록 만든 이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계율이다. 사람들이 모두 선하다면 아마 그는 좋은 군주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악한데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군주가 왜 그들을 위해 자신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자신의 약속 불이행을 무마하기 위한 적법한 이유들이 부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해 우리는 동시대의 무수한 사례들을 들 수 있다. 군주들이 불성실하기 때문에 쓸모없이 되어버린 너무나 많은 평화조약, 온갖 종류의 조약이 그것이다. 여우처럼 능란하게 처신할 줄 알았던 자들이 가장 번성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여우로서의 본성을 잘 숨길 줄 알고, 흉내 내거나 감추는 기술을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들이 순간의 필요에 의해 너무 쉽게 눈이 멀고 훈련되기에, 속이는 사람은 속는 사람을 늘 찾아내는 것이다."
 

  동시대의 수많은 예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유익하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강조한 바와 같이, 오늘날에는 가장 강력한 주권국가들이 국제법을 자신의 이익에 예속시키면서 약소국들의 주권을 제한한다. 심지어 바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국제법을 침해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에 대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약소국들을 불량국가, 다시 말해 무법자들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영어로 '불량'(rogue)은 바로 동물사회의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는 동물이 아닌가? 강대국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항상 이유를 대고 변명한다. 그들이 옳지 않다 할지라도, 힘이 약한 나라들  앞에서는 정당성을 지닌다.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분노로 가득 찬 짐승처럼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번역 : 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1) 마키아벨리(Machiavel), <군주론(Le Prince)>, 장 뱅상 페리에스(Jean-Vincent Pㅤㅁㅐㄼriㅤㅁㅐㄼs) 번역(1825), 파트릭 뒤푸에(Patrick Dupouey)의 소개와 주석,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의 서문, Nathan, Paris, 1982, p. 94-96.
2) 마키아벨리, <군주론>, 18장, '군주들이 자신들 약속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가?', 투생 기로데(Toussaint Guiraudet) 번역, Garnier Frㅤㅁㅏㅊres, Paris, 1837, p. 132.
3) 마키아벨리, <군주론>, 장 뱅상 펠리에스 번역, op. cit., p. 94.
4) Ibid.
5) Ibid.
6) 자크 시락 정부 하에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샤를 파스쿠아(Charles Pasqua)의 유명한 표현. 이 표현을 통해 파스쿠아는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동일한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시켰다.
7)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Rogue States. The Rule of Force in World Affairs>, South End Press, Cambridge(Massachusetts), 2000, 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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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9-12-2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언뜻 저도 데리다가 말년에 짐승과 주권자에 관한 세미나가 출간되고 있다는 얘길 들은 거 같은데 여기서 그 일부를 만나니 반갑네요 ㅎ 그런데 실례가 안된다면 도그지어란 무슨 뜻인가요?ㅎ

얼그레이효과 2009-12-2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그지어. dog's ear라고 하구요..우리가 책 읽을 때, 인상적인 구절 있으면 표시하잖아요. 책귀퉁이 삼각형 형태로. 그걸 뜻하는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