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나이제이션
김덕호.원용진 엮음 / 푸른역사 / 2008년 5월
품절


(김덕호, 한국에서의 일상생활과 소비의 미국화 문제 몇 구절 공부용으로 옮김)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에는 갑자기 '소비 혁명 consumer revolution'이 일기 시작했다. 소비 혁명이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비주의 consumptionism'라는 이념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에 의해 일상생활의 중심에 소비가 위치하는 새로운 사회로 대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주의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생산 대신 소비를 노동 대신 여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절약이 아닌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며, 금욕이 아닌 쾌락을 위해 생활하고, 결핍의 문화가 아닌 풍요의 문화를 실천하며, 소비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147쪽

우선 외부적인 환경부터 살펴보자. 엄청나게 늘어나는 외채에 의해 국가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망국론은 1985년을 고비로 급속히 수그러들었다. 국제 수지 흑자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1985년 중반 이후 달러, 국제 금리, 유가가 거의 동시적으로 하락한 이른바 '3저 시대'가 전개되었다. 그 결과 1985년 6.6 퍼센트이던 GNP 성장은 1986년에 이르러 12.9퍼센트로 배가 되었다. 또한 1985년의 해외 순 부채액은 467억 달러였는데, 1986년에는 46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로 외채 위기 분위기가 사라졌다. 1인당 GNP또한 1980년 / 에 1,592달러이던 것이 불과 7년 만인 1987년에는 3,110달러로 거의 두배로 증가했다. 그리하여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147~148쪽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더욱 분명하게 소비는 기본적인 필요 need 단계를 넘어 욕망 desire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또한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50쪽

소비시장이 확대되면서 외제품에 대한 경계 담론도 증가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해외의 소비재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자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하는 물건을 통해 한국의 소비자들이 타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경고의 글이나 행동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한국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과소비 추방에 대한 캠페인이 주기적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소비자 민족주의 consumer nationalism'는 이러한 움직임을 떠받치는 이념을 제공했다. 그렇지만 1988년도 올림픽 개최는 '소비자 민족주의'를 시대에 뒤진 이념으로 만들었으며, 개방화를 대세로 만들었다. -152쪽

원용진, 한국 대중문화, 미국과 함께 혹은 따로 몇 구절 옮김 / 퇴폐 등을 이유로 대중매체를 일거에 정리한 군사정권은 문화의 메뉴를 스스로 선택하거나 지정해 대중에게 제공하기를 매체에 강요한다. 관제 축제로 일컬어지는 <국풍 81>, 프로 스포츠(프로야구, 민속씨름), 마당극 등이 그것이다. 대중매체는 70년대 말부터 가꾸어왔던 상품화 전략을 기반으로 이를 펼쳤다. 억압적 국가기구에 의한 대중문화 메뉴 정하기, 그에 3저 호황이라는 경제적 우연을 탄 대중매체의 적극적 편승으로 인한 상품화로 이어지게 된다. -200쪽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은 수입된 미국의 대중문화가 채웠다. 민중문화운동을 채 낚은 듯 보이는 관제 축제, 마당극, 씨름 등의 부활은 1970년대를 불온과 퇴폐의 문화 시대로 규정짓는 군사정권의 의도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이미 불붙기 시작한 청년 들의 문화 소비 그리고 새롭게 자신들의 문화적 메뉴를 원하는 청소년층을 다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민중문화의 대중화라는 정치적 제스처의 이면에는 이미 진행되어온 욕망, 새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여전히 '오리지날'을 원하고 있었다. (중략) 대중문화 내 미국화는 정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민족문화 부활을 통한 문화적 선전과는 관계없이 미국식 문화에 대한 욕망은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생활화되어 있었다. 문화적 억압으로 인해 대중문화에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내용이 결핍됨에 따라 그 욕망은 오히려 더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매체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대중문화의 미국화 가속화는 이전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진다. -201쪽

대중문화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보장받은 대중매체는 이미 타 시장(미국 등지의 시장)에서 보장받은 내용을 수입하거나 모방하는 손쉬운 전략을 폈다. 빠른 속도로 보급된 VTR 기기를 메웠던 내용은 대부분 미국 것이었다. VTR 기기 보급에 맞춘 콘텐츠의 수입으로 청소년들은 미국 프로 레슬링을, 성인들은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나 멜로물, 에로물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방송국 편성에 의한 선택적 미국식 대중문화 접촉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직접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202쪽

미국에 대한 의구심, 반발이 곧 모든 미국적인 것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에 제공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대안적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적인 대중문화를 거부하는 데까지 이어지기는 불가능했다. 민중문화운동이 있긴 했지만 대중의 일상에까지 미치진 못했다. 민중문화운동이 반미를 담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머물러 대중의 일상을 파고드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이 운동 과정을 거치면서 1970년대에 끊어졌더 여러 형태의 실험들이 미미하게 이뤄졌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적인 적을 재전유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시기를 지나면서 조금씩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다. 흔히 대중매체가 미국화를 주도하고, 미국에 대한 태도와 미국적인 것에 대한 태도가 분리되기 시작한 이 시기를 두고 정치적 저항의 시기라 / 고 부른다. 하지만 대중문화 영역은 오히려 이전에 비해 미국화가 강화된 시기였다. 대중매체가 직접 실어 나를 뿐만 아니라 미국적인 것으로 포장된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펴냈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대중매체가 미국화를 직접적으로 펼친 시기라 할 수 있다. -205~206쪽

지속적 경제 성장과 3저 호황으로 인한 경제적 풍요를 경험하면서 대중들은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 자신감은 비민주적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그 불신과 더불어 정치적 동맹인 미국에 대한 부정적 태도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문화, 미국적인 형식의 대중문화는 경제적 풍요와 자신감을 채워줄 자산이었을 뿐 배격의 대상은 아니었다. 대중매체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운동 등에 정당성에서 밀리고 있었지만 대중문화적 내용으로는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았던 셈이다. 이전의 대중문화적 실험들의 절멸, 민중문화운동의 도구화, 대중매체의 과점 시장 보호, 경제적 호황으로 인한 문화상품 구매력의 성장으로 대중문화의 미국화는 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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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의 이중적 의미 : 슬래이브걸과 일상적 성사회학
프리가 하우그 외 / 인간사랑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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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코르넬리아 하우저가 쓴 '섹슈얼리티와 권력' 몇 구절들 / 섹슈얼리티의 표출을 억제하고 박해하는 현상을 일반적인 용어로는 '억압(repression)'이라고 명명한다. 이 용어는 모든 개인들이 성적인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는 가정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가정에는 인간의 성적 욕망이 생명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보는 생각이 깔려 있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처럼 욕망이 행동의 차원에서 억제당하고 금기의 대상이 된다면, 이러한 욕망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270쪽

푸꼬의 가설을 간략히 한두마디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섹슈얼리티란 오로지 담론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섹슈얼리티는 담론을 매개로 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며 섹슈얼리티는 안정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 조건에 걸맞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278쪽

푸꼬는 국가 기구(state apparatuses)가 얼마나 억압적인가 아니면 얼마나 관대한가를 검토하지 않았다. 그는 그 문제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억압'이란 개념 자체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억압 개념이 단지 법이나 규율만을 가리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억압 개념을 거부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억압 개념이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운동으로서 정의되는 한은 그 개념을 가지고 현실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권력 관계'를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푸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권력이 전개되는 모양'(the form of deployment of power)이라고 보았다. 그는 권력을 금지가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실천과 형식들에 쉽게 다가가에 해주는 힘이라고 이해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푸꼬는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권력에 대한 정의 - 국가를 통해서 규칙이 결정되고 법이 집행되며, 금지와 검열 / 이 중심이 되는 장이므로 권력을 국가와 관련해서 정의하는 것- 에서 출발한 이론적 모델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론을 폈다. -281~282쪽

푸꼬는 기존 모델의 대안으로서 힘들간의 관계란 견지에서 구성된 전략적 모델을 제안한다. 푸꼬는 "그리고 만일 법률적 체계가 권력의 - 유일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대표적 형식이라 하더라도 법률 체계는 새로운 권력 방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새로운 권력 방식이란 권력의 전개가 권리가 아니라 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범화에 의해, 또한 징벌이 아니라 통제나 국가 기구를 뛰어넘는 형식들과 매 수준에서 사용되는 수단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282쪽

푸꼬의 논증에 의하면 은폐나 침묵이 성적 억압을 역동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관찰하고 분류함으로써 성적 억압이 진전된다. 여기에서부터 대상은 논의거리가 되고, 바로 그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하나의 대상이 만들어진다.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쾌락이나 발견되지 않고 있었던 쾌락이 남김 없이 탐색의 대상이 되고, 각 개인들이 느낀 여러 종류 쾌락들에서 '추상화된 것'이 하나의 규칙으로 묶이게 된다. 그것은 개인에 외재해서 일어나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다시 개인의 내면에 '이식되는' 구조가 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섹슈얼리티가 만들어져 개개인의 육체와 쾌락을 잠식해 들어가는 길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다. 경찰, 학교, 철학, 법, 심리 분석, 의학 등이 육체를 대상으로 논쟁을 벌이고 토론하면서 차례대로 자리를 잡아나간다. 그렇게 되면 육체를 담론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삶의 영역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갖가지 제도나 기관들 내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로 인해서 섹슈얼리티가 생산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푸꼬에 따르면 이러한 잠식의 방법들을 한 마디로 특징지을 수 있다. -284쪽

즉 모든 사회 내 기관들과 제도들이 '거대한 외피를 갖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연결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육체의 자극, 쾌락의 강화, 담론에의 유인, 조종과 저항의 강화가 지식과 권력이 주도하는 전략에 호응하면서 서로 연관을 맺어 나간다. 푸꼬는 이 네트워크를 섹슈얼리티의 전개(deployment of sexuality)'라고 명명했다. 이 네트워크의 기능은 그것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구역들을 설정해내면서 섹슈얼리티를 조절해내는 것이다. -284쪽

우리는 푸꼬의 권력 개념이 지배와 권력이 같다고 본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배 관념이 억압 관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는 사실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또한 그는 뚜렷한 권력과 지배의 유착이 실제로는 환상이고 현실에 있어서는 권력은 권력대로, 지배는 지배대로 각기 다른 법칙에 따른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권력은 지배에 반해서 움직여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권력과 지배가 차이가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해방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탐색한다. -294쪽

권력 관계는 확실히 제도나 기구들 내에 실체를 갖고 있으나 그 제도나 기구는 국가를 초월해서 확장되는 '권력의 공간'을 구성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푸꼬의 견해에 동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국가의 전략적 범위라는 한계 내에서 포괄되어 있다. 그로므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권력, 국가, 지배를 분석/ 적 차원에서 따로 구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294~295쪽

우리는 규범의 체계에서 개인들이 자신을 스스로 사회화(이것이 규범의 효과이다)시키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 방식이란 간략히 말하자면 규범적 권력을 불일치 정도를 평가하고, 수위를 결정하며, 특정성을 고정시키고, 차이를 분명히 밝히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규범적 권력이 동질화라는 효과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모든 개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개인들로 만들어내는 똑같은 표준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개인성(individuality)을 파악할 수 있다. 개인성은 표준에 동조하는 어떤 부분들과 표준에서 일탈된 어떤 부분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화의 문제는 지식('지식은 권력이다')의 가능성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편재하는 표준에 대해서 보다 엄밀한 지식을 갖게 되면 갖게 될수록 개인차가 생길 가능성은 보다 커진다.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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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 ㅣ 당대총서 13
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 당대 / 2000년 10월
절판


70년대 후반부터 비판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과 분단현실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주목해야 할 전환은 한국을 '제3세계'의 시각에서 파악하려는 사고 / 방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제3세계라는 인식은 세계를 하나의 체계제로 상정하고 세계체제는 중심과 주변(또는 반주변)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주변은 중심에 종속되는 관계에서 발전해 왔다는 데 주목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세계체제는 현실적으로 수세기에 걸쳐서 형성되어 온 자본주의 세계체제이며, 따라서 근현대의 한국사회 구조 또한 자본주의 세계체제, 특히 일본 및 미국과의 관게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34~35쪽

80년대 한국 사회과학 연구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한국사회 또는 한국 자본주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국자본주의 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논의는 단순히 학계나 언론계뿐 아니라 이른바 '운동권' 내부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이 논쟁의 주요 논점의 하나인 사회구조와 사회모순의 평가 내지는 성격 규정이 운동 주체세력 설정, 투쟁대상 규정 , 운동 노선 정립 등과 같은 전략, 전술을 결정해야 하는 당면한 사회변혁운동의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40쪽

80년대 초에 정성진, 조희연, 이대근 등은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던 종속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한국경제는 대외의존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며 더욱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에 포섭되어 자본, 기술, 자원 등 모든 재화를 중심부에 의존시키는 종속성을 심화시켜 왔다고 논한다. 한국은 중심부와는 이질적인 사회구성체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자본주의, 즉 주변부자본주의에 편성되어 있으며 정부는 이러한 종속적인 발전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더욱더 권위주의적인 억압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주변부자본주의론(주자론)'의 주장이다. -40~41쪽

이에 대해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의거하고 있던 박현채, 조민, 정윤형 등은 종속적일지라도 자본주의적인 한 그 내부에 자본주의 원리가 관철된다는 전제하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자론은 한국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와 모순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성격을 인식하지 못한다, 해방 후의 한국사회는 주변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국가독점자본주의(국독자론)'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였다. 즉 박현채 등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광공업부문이 GN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등 경제규모가 급속하게 확대됨에 따라 일정한 자본축적이 이루어져서 독점자본이 성장한 것을 강조하며, 주자론과는 달리 계급구조에서도 산업노동자가 도시빈민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로부터 운동론으로는 반제, 반독점, 반독재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 민중, 민주혁명의 단계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41쪽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80년대 말부터 엄청난 어려움에 부딪혀 새로운 전개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의 재벌기업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서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문화와 소비가 시대의 관심사가 되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라는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명제는 어느새 잊혀가고 있었던 것이다.-92~93쪽

90년대 한국의 사상적 특징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한 각종 포스트주의와 문화이론 등이 폭발적으로 유행한 것이다. 논단에서 논의의 중심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에서 푸코, 데리다, 리요타르, 보드리야르 등의 프랑스사상으로 옮겨갔고 언급되는 어휘는 자본주의, 계급, 노동, 국가 같은 난해한 것에서 육체, 욕망, 문화, 지식, 권력 등과 같은 포스트모던한 것으로 바뀌어갔다. 자본주의, 계급, 노동, 국가 같은 어휘는 오히려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말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담론'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들어서부터다. -157쪽

민족주의는 결코 하나의 확고한 이론도, 개념도 아니다. 민족이 그러하듯이 민족주의도 '현실'의 추이와 함께 변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이용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데올로기이다. 당연히 민족주의가 사회진보에 건전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관념주의로 빠질 때, 그것은 곧 보수반동, 국수주의로 후퇴할 위험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격동하는 역사를 살아온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민중이 정서적으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이데올로기로서, 역대 정부가 강요한 체제논리로서, 나아가 일종의 상업주의의 도구로서 끊임없이 이용되어 왔고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232쪽

사실 국민국가는 근대에 들어와서 생겨난 것이다. 이는 요즈음의 문화연구 등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허구성'을 띤 것이지만 그럼에도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실체'이기도 하다. 비록 국민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 할지라도, 앤더슨은 국민국가론을 반드시 내셔널리즘 비판으로 전개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서 국민(국가)을 구성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정치생활에서 가장 보편적인 정통의 가치라고 말하고 있다. 즉 국민국가는 상상의 공동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진공상태에서 떠다니는 공허한 존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국가에 얽혀 있는 갖가지 담론을 예의 주시하고 국민국가가 지닌 폭력장치나 타자에 대한 차이/ 차별화 기능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이며 또 어떻게 하면 정치권력이나 지배층에 이용되지 않는 아이덴티티를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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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자들은 정신 차렸다. 남초 사이트에서 남자들이 예전에 정신 못차렸던 것 중 하나가 '나쁜 남자'에 대한 정의였다. 그들은 '순수하게' '나쁜'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권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잘 알아가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이제 이 '나쁜'의 필수사항을 안다. '나쁜'은 우리가 뻔하게 알고 있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다. 이 '나쁜'을 채우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추면 좋은 능력과 그 능력에 달라붙은 물질들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오늘 처음 시작한 <파스타>를 보면서 점점 '나쁜 남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내 주위의 남자들이 아는 게 흥미롭다. 남자들은 이제 화를 버럭낸다는 것에서 자신이 충분히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을 버리고 있다. 그들은 '화를 낼 수 있는 남자'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습득하며 살아간다. 강마에(김명민)나 최현우(이선균)나 그들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위상학에 알맞는 캐릭터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구성된 캐릭터가 내뿜는 과시의 언어는, 그들이 그만큼 걸어온 노력, 혹은 성공을 갈망한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이기적으로' 재현한다. 남자들은 이제 여자들에게 굳이 '나쁜남자'가 진정 어떤 남자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지 않아도 된다. '버럭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권리의 행사가 그 누구에게나 자신을 왕자님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상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는 것을.   

버럭의 차가움과 그 버럭을 망각하게 만드는 순간의 따사로움으로 채워진 이 트렌디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어쩌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해 준 빈약한 확률의 로또인지 모른다. 이 로또, 텔레비전으로만 쳐다 보거나, 혹은 실제로 한 번 크게 당해본 후 , 미련 가득한 소주잔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술자리의 '희망안주'로 올려놓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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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 청소년 만들기와 길들이기
고미숙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5월
품절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적 기질은 생물학적인 보편적 특징이라기보다 문화적 산물, 혹은 역사적 산물이다. 이런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마가렛 미드와 필립 아리에스에 의해 세상에 던져졌고, 이런 문제제기 자체가 너무 낡은 것인지는 몰라도 청소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중략) 청소년기적인 기질의 탄생은 근대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 으며 근대 과학도 크게 공헌했다. 청소년들을 압박하는 사회적 요인은 더욱 강화되었고, 과학은 그들의 기질을 입증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냈다. 청소년기의 탄생은 바로 청소년기의 근대적 '기질' 발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기질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청소년을 다루는 장치와 방법을 고안해냈다.-16~17쪽

근대사회는 청소년들을 주변인으로 내몰았다.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미성숙하도록 프로그램화된 것이다. -46쪽

일제강점 말기로 접/ 어들어 법률이나 문서상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청소년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소년과 청년을 모두 훈육과 훈련, 규율의 대상으로 보면서부터다. 청소년을 아직 주체가 되기에는 미숙한 존재로 보고,충성스런 국민 만들기의 대상으로 삼으려한 것이다. (중략)학교제도를 포함한 갖가지 사회장치와 연령 발달에 대한 근대적인 아이디어는 미디어와의 공조를 통해서 생겨났다. 미디어와 일련의 제도는 청소년에게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덧씌웠고 서서히 주변인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이기 시작했다. / 이상 김현철-47~48쪽

이팔청춘과 청소년, 두 낱말은 같은 연령대를 지시하고 있지만, 둘을 에워싸고 있는 아우라와 표상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다. 전자가 자연적 생체 주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후자는 근대 문명이 부과한 아주 특별한 호명체계다. 쉽게 말해 10대의 어떤 인간을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와 더불어 수많은 의미의 계열이 그물망처럼 산포된다. 예컨대, 일단 그는 결혼이나 동거 따위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란 미성년의 주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절대 성욕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청소년과 성욕, 이 둘 사이는 멀면 멀수록 좋다. 아니, 숫제 청소년 따위의 성욕 따위는 없거나 없어야 마땅하다고 간주된다. (중략) 무릇 사회적 표상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과 욕망을 철저히 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청년기에는 욕망의 부글거림으로 몸부림치다가도 막상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청년은 순수할 거라는, 아니 순수해야 정상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 이게 바로 표상 혹은 호명체계의 위력이다. -59쪽

청소년의 존재 기반은 학교와 가족이다. 청소년은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효율적인 생산주체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교육의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는 세대이며 부모의 적극적(경제적)보호와 배려 속에서 대학입시를 향해 분투해야 하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청소년이라는 말 속에는 가족, 학교, 국가라는 개념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박혀있다. -60쪽

근대계몽기 민족담론은 모든 기호들의 차이를 봉인하는 블랙홀이자 초월적 좌표였다. 서구와 일제라는 대타자로 인해 국가와 민족이 발견되긴 했지만, 실상은 '텅 빈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발견과 동시에 부재를 감내해여 했기 때문이다.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를 표현해야 하는 역설에 처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족담론은 모든 기호들을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91쪽

순수함이란 달리 말하면 탈성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자면, 근대 이후 급부상한 가정교육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소년기의 성욕을 통제, 관리하는 것이었다. 위생담론이 적극 개입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이상 고미숙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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