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자들은 정신 차렸다. 남초 사이트에서 남자들이 예전에 정신 못차렸던 것 중 하나가 '나쁜 남자'에 대한 정의였다. 그들은 '순수하게' '나쁜'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권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잘 알아가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이제 이 '나쁜'의 필수사항을 안다. '나쁜'은 우리가 뻔하게 알고 있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다. 이 '나쁜'을 채우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추면 좋은 능력과 그 능력에 달라붙은 물질들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오늘 처음 시작한 <파스타>를 보면서 점점 '나쁜 남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내 주위의 남자들이 아는 게 흥미롭다. 남자들은 이제 화를 버럭낸다는 것에서 자신이 충분히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을 버리고 있다. 그들은 '화를 낼 수 있는 남자'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습득하며 살아간다. 강마에(김명민)나 최현우(이선균)나 그들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위상학에 알맞는 캐릭터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구성된 캐릭터가 내뿜는 과시의 언어는, 그들이 그만큼 걸어온 노력, 혹은 성공을 갈망한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이기적으로' 재현한다. 남자들은 이제 여자들에게 굳이 '나쁜남자'가 진정 어떤 남자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지 않아도 된다. '버럭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권리의 행사가 그 누구에게나 자신을 왕자님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상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는 것을.   

버럭의 차가움과 그 버럭을 망각하게 만드는 순간의 따사로움으로 채워진 이 트렌디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어쩌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해 준 빈약한 확률의 로또인지 모른다. 이 로또, 텔레비전으로만 쳐다 보거나, 혹은 실제로 한 번 크게 당해본 후 , 미련 가득한 소주잔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술자리의 '희망안주'로 올려놓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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