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코르넬리아 하우저가 쓴 '섹슈얼리티와 권력' 몇 구절들 / 섹슈얼리티의 표출을 억제하고 박해하는 현상을 일반적인 용어로는 '억압(repression)'이라고 명명한다. 이 용어는 모든 개인들이 성적인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는 가정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가정에는 인간의 성적 욕망이 생명 에너지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보는 생각이 깔려 있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처럼 욕망이 행동의 차원에서 억제당하고 금기의 대상이 된다면, 이러한 욕망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270쪽
푸꼬의 가설을 간략히 한두마디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섹슈얼리티란 오로지 담론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섹슈얼리티는 담론을 매개로 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며 섹슈얼리티는 안정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 조건에 걸맞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278쪽
푸꼬는 국가 기구(state apparatuses)가 얼마나 억압적인가 아니면 얼마나 관대한가를 검토하지 않았다. 그는 그 문제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억압'이란 개념 자체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억압 개념이 단지 법이나 규율만을 가리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억압 개념을 거부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억압 개념이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운동으로서 정의되는 한은 그 개념을 가지고 현실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권력 관계'를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푸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권력이 전개되는 모양'(the form of deployment of power)이라고 보았다. 그는 권력을 금지가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실천과 형식들에 쉽게 다가가에 해주는 힘이라고 이해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푸꼬는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권력에 대한 정의 - 국가를 통해서 규칙이 결정되고 법이 집행되며, 금지와 검열 / 이 중심이 되는 장이므로 권력을 국가와 관련해서 정의하는 것- 에서 출발한 이론적 모델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론을 폈다. -281~282쪽
푸꼬는 기존 모델의 대안으로서 힘들간의 관계란 견지에서 구성된 전략적 모델을 제안한다. 푸꼬는 "그리고 만일 법률적 체계가 권력의 - 유일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 대표적 형식이라 하더라도 법률 체계는 새로운 권력 방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새로운 권력 방식이란 권력의 전개가 권리가 아니라 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범화에 의해, 또한 징벌이 아니라 통제나 국가 기구를 뛰어넘는 형식들과 매 수준에서 사용되는 수단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282쪽
푸꼬의 논증에 의하면 은폐나 침묵이 성적 억압을 역동적으로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관찰하고 분류함으로써 성적 억압이 진전된다. 여기에서부터 대상은 논의거리가 되고, 바로 그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하나의 대상이 만들어진다.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쾌락이나 발견되지 않고 있었던 쾌락이 남김 없이 탐색의 대상이 되고, 각 개인들이 느낀 여러 종류 쾌락들에서 '추상화된 것'이 하나의 규칙으로 묶이게 된다. 그것은 개인에 외재해서 일어나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다시 개인의 내면에 '이식되는' 구조가 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섹슈얼리티가 만들어져 개개인의 육체와 쾌락을 잠식해 들어가는 길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다. 경찰, 학교, 철학, 법, 심리 분석, 의학 등이 육체를 대상으로 논쟁을 벌이고 토론하면서 차례대로 자리를 잡아나간다. 그렇게 되면 육체를 담론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삶의 영역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갖가지 제도나 기관들 내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로 인해서 섹슈얼리티가 생산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푸꼬에 따르면 이러한 잠식의 방법들을 한 마디로 특징지을 수 있다. -284쪽
즉 모든 사회 내 기관들과 제도들이 '거대한 외피를 갖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연결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 육체의 자극, 쾌락의 강화, 담론에의 유인, 조종과 저항의 강화가 지식과 권력이 주도하는 전략에 호응하면서 서로 연관을 맺어 나간다. 푸꼬는 이 네트워크를 섹슈얼리티의 전개(deployment of sexuality)'라고 명명했다. 이 네트워크의 기능은 그것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구역들을 설정해내면서 섹슈얼리티를 조절해내는 것이다. -284쪽
우리는 푸꼬의 권력 개념이 지배와 권력이 같다고 본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배 관념이 억압 관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는 사실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또한 그는 뚜렷한 권력과 지배의 유착이 실제로는 환상이고 현실에 있어서는 권력은 권력대로, 지배는 지배대로 각기 다른 법칙에 따른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권력은 지배에 반해서 움직여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권력과 지배가 차이가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해방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탐색한다. -294쪽
권력 관계는 확실히 제도나 기구들 내에 실체를 갖고 있으나 그 제도나 기구는 국가를 초월해서 확장되는 '권력의 공간'을 구성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푸꼬의 견해에 동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국가의 전략적 범위라는 한계 내에서 포괄되어 있다. 그로므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권력, 국가, 지배를 분석/ 적 차원에서 따로 구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294~295쪽
우리는 규범의 체계에서 개인들이 자신을 스스로 사회화(이것이 규범의 효과이다)시키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 방식이란 간략히 말하자면 규범적 권력을 불일치 정도를 평가하고, 수위를 결정하며, 특정성을 고정시키고, 차이를 분명히 밝히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규범적 권력이 동질화라는 효과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모든 개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개인들로 만들어내는 똑같은 표준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개인성(individuality)을 파악할 수 있다. 개인성은 표준에 동조하는 어떤 부분들과 표준에서 일탈된 어떤 부분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화의 문제는 지식('지식은 권력이다')의 가능성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편재하는 표준에 대해서 보다 엄밀한 지식을 갖게 되면 갖게 될수록 개인차가 생길 가능성은 보다 커진다.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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