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 청소년 만들기와 길들이기
고미숙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5월
품절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적 기질은 생물학적인 보편적 특징이라기보다 문화적 산물, 혹은 역사적 산물이다. 이런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마가렛 미드와 필립 아리에스에 의해 세상에 던져졌고, 이런 문제제기 자체가 너무 낡은 것인지는 몰라도 청소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중략) 청소년기적인 기질의 탄생은 근대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 으며 근대 과학도 크게 공헌했다. 청소년들을 압박하는 사회적 요인은 더욱 강화되었고, 과학은 그들의 기질을 입증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냈다. 청소년기의 탄생은 바로 청소년기의 근대적 '기질' 발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기질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청소년을 다루는 장치와 방법을 고안해냈다.-16~17쪽

근대사회는 청소년들을 주변인으로 내몰았다.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미성숙하도록 프로그램화된 것이다. -46쪽

일제강점 말기로 접/ 어들어 법률이나 문서상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청소년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소년과 청년을 모두 훈육과 훈련, 규율의 대상으로 보면서부터다. 청소년을 아직 주체가 되기에는 미숙한 존재로 보고,충성스런 국민 만들기의 대상으로 삼으려한 것이다. (중략)학교제도를 포함한 갖가지 사회장치와 연령 발달에 대한 근대적인 아이디어는 미디어와의 공조를 통해서 생겨났다. 미디어와 일련의 제도는 청소년에게 질풍노도적 이미지를 덧씌웠고 서서히 주변인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이기 시작했다. / 이상 김현철-47~48쪽

이팔청춘과 청소년, 두 낱말은 같은 연령대를 지시하고 있지만, 둘을 에워싸고 있는 아우라와 표상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다. 전자가 자연적 생체 주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후자는 근대 문명이 부과한 아주 특별한 호명체계다. 쉽게 말해 10대의 어떤 인간을 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와 더불어 수많은 의미의 계열이 그물망처럼 산포된다. 예컨대, 일단 그는 결혼이나 동거 따위를 꿈꾸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란 미성년의 주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절대 성욕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청소년과 성욕, 이 둘 사이는 멀면 멀수록 좋다. 아니, 숫제 청소년 따위의 성욕 따위는 없거나 없어야 마땅하다고 간주된다. (중략) 무릇 사회적 표상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과 욕망을 철저히 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청년기에는 욕망의 부글거림으로 몸부림치다가도 막상 기성세대로 편입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청년은 순수할 거라는, 아니 순수해야 정상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 이게 바로 표상 혹은 호명체계의 위력이다. -59쪽

청소년의 존재 기반은 학교와 가족이다. 청소년은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효율적인 생산주체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교육의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는 세대이며 부모의 적극적(경제적)보호와 배려 속에서 대학입시를 향해 분투해야 하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청소년이라는 말 속에는 가족, 학교, 국가라는 개념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박혀있다. -60쪽

근대계몽기 민족담론은 모든 기호들의 차이를 봉인하는 블랙홀이자 초월적 좌표였다. 서구와 일제라는 대타자로 인해 국가와 민족이 발견되긴 했지만, 실상은 '텅 빈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발견과 동시에 부재를 감내해여 했기 때문이다.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를 표현해야 하는 역설에 처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족담론은 모든 기호들을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91쪽

순수함이란 달리 말하면 탈성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자면, 근대 이후 급부상한 가정교육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소년기의 성욕을 통제, 관리하는 것이었다. 위생담론이 적극 개입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이상 고미숙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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