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맵다 


                    김신식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기사의 선의가 

나의 괜한 심술을 찌푸린다

그런 거 있잖나 술에 취해 졸다가

다시 깨어나보니 모두 망가져버린

그래서 이런 선의가 가시는 정작 아닌데

객쩍은 방어의 주문


눈이 감기고 졸리는 시간 기사는 날 위해

볼륨을 줄여주고 난 거기에 맞춰

이어폰을 낀 채 심술을 또 부리고


아무 이유 없는데 엄마에게 왜 이리

맛없냐며 찬거리까지 따지던 심술은

주머니 속은 돈을 가득 구기고 구겨

기사 당신이 또 선의를 베풀면 이 돈을 더 구기겠다고


눈을 떠보니 세상은 그대로

어디서도 연탄 기운은 남아 있질 않아 그치만 매워

어디서부터 언제 어떻게 그런 거 다 망가뜨린

연탄 기운은 어디에 어디에 너와 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1. '테레비'를 틀어놓고 자면 나름 알람 효과가 있다. 꼭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있는 스포츠 채널을 틀어놓고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린다. 사실 새벽기도 주기라는 것이 몸에 스며들어 있어서 04:30분 가까이에 몸에 반응이 오지만. (그렇다고 드림 워커니 뭐니 하는 신조에 휩쓸린 시간 지키기엔 동참하고 싶지 않다) 


2. 칫솔을 찾는다. 아니, 그 전에 몸을 한 번 긁는다. 너무 '드라마스러운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어느 정도 '미디어화'된 인간 아니던가. 여기에 큰일까지 보면 더 드라마스럽겠지만, 내 뱃속이 차마 그것까진..


3. 클래식을 틀어놓는다. 요즘은 쥴리아 피셔의 연주를 듣는다.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란 바흐의 음악에 조금 몸을 느끼하게 만들어놓는다. 그래야 회사에 가서 온갖 들이대는 자극에 맞설 수 있다.


4. 세수를 한다. 클렌징폼이 다 떨어져간다. 그래서 통을 거꾸로 세워놓았다. 기분탓일 텐데 거품이 제법 많이 남았다는 안도감이 부쩍 늘었다. 거품을 '강박적'으로 낸다. 면도를 자주 했더니 턱 주위가 거칠다. 이제 나도 아빠의 턱을 갖게 되었다. 


5. 향기가 너무 세지 않은 바디로션을 찾는다. 몸 구석구석을 만져준다. 


6. 팬티를 찾는다. CK에서 이젠 리바이스 드로즈가 좋다. 


7. 옷을 뒤적거린다. 대학교 4학년 때 산 옷들을 아직도 입는다. 

오래되어 '비냄새'가 나는 옷들은 신호가 온 건데,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집에서라도 입자고 혼잣말을 건넨다.


8. 밤에 켜두었던 컴퓨터 본체를 만져본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랑 함께 살 때 집에 불이 날까 걱정되어 구식 테레비의 뒤를

손으로 만져보던 버릇이 이렇게 넘어왔다. 시스템이 뭔가 이상한지 윈도우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 되어 늘 짜증난다. 아침

짜증지수 조금 올라간다. 잘 하지도 않으면서.


9. 마을버스에 가득찰 사람들 모습에 인상을 미리 찌푸려본다. (어차피 앉아갈 거면서)


10. 신호등 안 지킬 저 무시무시한 차들을 미리 째려본다. (나도 안 지킬 거면서)


11. 탄다. 


12. 내린다.


13. 들어간다.


14.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힐링해드린다. (아 진짜 왜 이리 쓰레기가 많아!)


15. 컵 씻는다. 


16. 포트에 물 담는다.


17. 앉아서 회사 메신저를 켜둔다.


18. 오늘의 한마디를 바꾼다.


19. 달력을 본다. 


20. 조금 눈을 붙인다 


+ 9시다. 오늘도 지옥이거나 혹은 좀 더 괜찮은 지옥이거나. 둘 중 하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너의 허둥지둥 브래지어


                              김신식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먹다가

뜬금없이 브래지어를 검색해봤다


이 고기만큼 입에 달라붙는 건

뭘까

부라자 브라자 부래지어

다시 뜬금없이 우리 할매 브라자


열무국수로 입을 헹구다가

아바바바버버브처럼

부라자 브라자 부래지어

이번엔 (조금) 의도하고

너의 허둥지둥 브래지어


고기는 생각보다 많이 탔고

소주병은 처량하게 나를 보고

오늘은 그렇게

당신들과의 접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1


지난주에 어떤 '부드러운' 충고를 들었다. 단단하고 날선 충고보다 그 효력이 오래가는 듯싶었다. 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냥 불을 끄고 멍하니 들었던 말들을 곱씹고, 다른 일을 시작하면 되는데. 쉽게 그리되진 않았다. 이불에 묻어 있는 섬유유연제향만이 날 위로해줄 뿐이었지만,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는 그 반복의 소소한 의지만이 위로가 될 뿐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밤행사'가 되어버린 불을 끄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의 리듬 속에서 내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진한 향수(노스탤지어)이자, 진한 향수이기도 했다.


2

'나잇값'인지 그래도 충격의 완화 효과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느낌은 받는다. 얼마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슴을 쳤던지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먹먹해진 가슴에 '그냥 오늘 학교는 띵굴까?' 같은 유혹에 쉽게 마음을 열었던 때에 비해선 참 변했다는. 그런 변화의 뿌듯함이 밤을 휘감으면 잠시나마 따가운 소리는 내 귀에 들어오다 그 유입의 과정을 멈춘다.


3

사람이 간사해서 어쩌다 보면 그러한 따가운 소리를 상상해서 내게 들어오게 만들려고도 한다. 그런 소리를 벌 짓을 늘 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지만, 파주는 요상한 동네다. 이 정적이 나를 그런 따가운 소리의 풀장으로 들어오라는 유혹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이 파주의 침묵이 때론 무섭다. 여긴 너무 조용하다. 말이 없으니 외려 언어의 두려움을 둘러싼 지나친 발설에 대한 경계보다는 지나친 침묵이 주는 이상한 경계심이 나의 감각을 휘감는 듯하다. 그리하여 난 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난주 들었던 그 따가운 소리를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확산/확성시킨다. 이래야 이 심심한 동네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몽정이라도 해볼까. 하긴 몽정은 의지가 아니지. 본능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고등어를 굽다가


                     김신식


테레비를 틀고 고등어를 구웠다

한 남자의 미간이 클로즈업된 장면에

말랑한 고등어의 몸매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그 남자의 미간이 술렁일 때

고등어는 더 딱딱해지고

뒤집개의 반응은 요상하다


불을 끄고 고등어를 접시에

담는 순간

그 남자의 미간은 어느새

잘 익고 있었다


누군가의 고등어가 되어보겠다는

소소한 맹세가 절어 있는 채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