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에 어떤 '부드러운' 충고를 들었다. 단단하고 날선 충고보다 그 효력이 오래가는 듯싶었다. 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냥 불을 끄고 멍하니 들었던 말들을 곱씹고, 다른 일을 시작하면 되는데. 쉽게 그리되진 않았다. 이불에 묻어 있는 섬유유연제향만이 날 위로해줄 뿐이었지만,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는 그 반복의 소소한 의지만이 위로가 될 뿐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밤행사'가 되어버린 불을 끄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의 리듬 속에서 내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진한 향수(노스탤지어)이자, 진한 향수이기도 했다.


2

'나잇값'인지 그래도 충격의 완화 효과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느낌은 받는다. 얼마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슴을 쳤던지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먹먹해진 가슴에 '그냥 오늘 학교는 띵굴까?' 같은 유혹에 쉽게 마음을 열었던 때에 비해선 참 변했다는. 그런 변화의 뿌듯함이 밤을 휘감으면 잠시나마 따가운 소리는 내 귀에 들어오다 그 유입의 과정을 멈춘다.


3

사람이 간사해서 어쩌다 보면 그러한 따가운 소리를 상상해서 내게 들어오게 만들려고도 한다. 그런 소리를 벌 짓을 늘 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지만, 파주는 요상한 동네다. 이 정적이 나를 그런 따가운 소리의 풀장으로 들어오라는 유혹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이 파주의 침묵이 때론 무섭다. 여긴 너무 조용하다. 말이 없으니 외려 언어의 두려움을 둘러싼 지나친 발설에 대한 경계보다는 지나친 침묵이 주는 이상한 경계심이 나의 감각을 휘감는 듯하다. 그리하여 난 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난주 들었던 그 따가운 소리를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확산/확성시킨다. 이래야 이 심심한 동네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몽정이라도 해볼까. 하긴 몽정은 의지가 아니지. 본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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