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올모스트 페이머스>란 작품이 있다. (잠깐 논외로 빠지지만,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최고 작품은 내가 보기에는 <제리 맥과이어>보다는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의 지적 감수성이라고 할까. 감독이 사회에 던지려고 하는 메시지의 경로들이 차분하고 아름답다.)아마 한국에서 영화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다 봤을 작품일 것이다. 감독의 자전적 고백이 강한 이 작품은, 미국에서 유명한 대중문화잡지인 <롤링스톤즈>에 글을 기고하게 된 주인공 소년이 자신이 취재하게 된 스틸워터라는 밴드와 동행하면서, 갈등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갈등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 밴드 열라 좋은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구려? 왜 이리 속들이 지저분해? 이렇게 글쓰면 안되는데..좀 구라를 쳐? 아니면 본 것 그대로 쓸까? 아, 그렇지만 그대로 쓰기엔 너무 친해졌는데.." 소년은 글을 쓰려고 타자기 앞에 앉았지만,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소년은 스승으로 모시는 한 대중음악평론가에게 전화로 고민을 털어놓는다. 당시 이 역할을 <카포티>와 <다우트>의 주연이었던 필립 셰이무어 호프만이 맡았는데, 인상적인 대사를 뱉는다. " 정직하고, 잔인해라.." (영어 대사 그대로 직역하자면,,자비롭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한윤형. 내가 그를 알게된 것은 한국 지성계의 '명문가'로 칭송받던 고종석이 <씨네21>에서 질투가 날 정도의 글솜씨를 가진 젊은이가 있다고,, 그리고 그 젊은이 중 한 명이 한윤형이라고 (지금은 사라진 코너)' 유토디토'에 고백한 글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유토디토'의 마지막을 한윤형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하여 '유토디토'의 사라짐을 아쉬워했던 것은 고맙고, 또 고마웠다. 또 돌이켜보면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기록'과 '보존'을 못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늘 불만을 가지고 있던 나였기 때문에)
나도 한윤형과 같은 '20대'다. 한윤형을 비롯하여, 노정태, 김현진 등과 같은 사람들의 글쓰기를 볼 때마다, 대학'교'에서 '원'으로 갈아타고, 뭔가 사회에 의미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나 엄청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엄마, 아빠, 친구들아 나 함부로 건들지 말그래이. 안 그러면 느그들 손해다!"하고 으르렁거리는 내 모습이 챙피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다. 이 공간을 빌어, 한국 사회를 비판하자면,,그 가운데서 가장 썩은 곳 중에 하나가..당연 '대학 사회'이고, '대학원 사회'임은 나는 감히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가운데,,(이른바 '식자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 나름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는 친구들에게 "어이,,자네 참 글이 좋은데말이야..이런 이론이 아쉬워. 이런 학문적 구조를 보강하면. 자네 대성할 것 같다고" 결국 '남 도와주는 척'하다가, '자기 잘난 척'으로 끝나는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한윤형의 이 책에도 '먹물'을 뿌리지 않기를 당부하는 바다.
이런 생각을 언급하는 것이 내가 소위 한윤형의 사주를 받은 '서평청부업자'라서가 아니다. 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론이란 분명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문제는(아마 많은 사람들이..)..이론을 '영향'이 아닌 '기능'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이론이란 알면 끝!인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이론과 개념, 시선을 만들어보려고, 그것을 그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혀본 한윤형의 분투기는 인상적이다. 나의 주요 공간은 연구실이지만, 나는 현장의 복잡다단함을 '이론'으로 다 해결해버리려는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해지겠다. 경험은 분명 우리 삶의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어떤 '현장 환원주의' , '광장 환원주의'는 아니다. 나에게 '경험'이란,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포함한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아, 이 사람 자기가 속한 20대들을 향해 꼰대들이 늘 말하는 20대들 왜 이리 생각이 없어? 하는 그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야? 그런거야?라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생각은 누구나 하는 것 같았다. 다만 한윤형이 본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 능력에 대해 우리는 보다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한윤형의 글쓰기는 '논리'라는 것이 가로새겨진다. 말을 하는 논리, 글을 쓰는 논리. 그 엄청난 '방법서'가 나왔음에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시도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 가장 자전거를 빨리 탈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다 알 것 같다. (나도 어릴 적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녔지만, '자전거 탈 때 넘어지지 않는 법'이란 설명서를 같이 준 가게는 없었던 것 같다) 자전거를 잘 탈려고, (그것도 한 번에!) 이리저리 재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라리 대일밴드 붙이는 한이 있더라도,,생각보다 넘어지는 것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고..그냥 한 번 넘어질 때까지..자전거 타 볼 걸"일 것이다. 한윤형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물론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삶의 상처를 강조하는 것 같다. 그 상처를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가에 앞서, 아니 그것을 뛰어 넘어, 나의 상처와 연관된 모든 현상들을 글로, 말로 풀어보기. 그 시도를 통해 우리는 삶을 더 진솔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엄중하고 탁월한 논리는 결국 자신의 성실성에 기반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종의 '야망'도 있어야하리라.
문학평론가 권명아 선생님이나,,김우창 선생님이 우리 시대 '젊음'에 대해 이야기 할 때..자주 썼던 표현..'시행착오를 겪을 권리', '방황할 권리'가 없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사실 한윤형이 경계하는 386식 발언일 수도 있지만),,그러한 권리들의 복원 혹은 추구를 보다 '자기식'대로 지향하는 것은 필요한 자세라고 본다. (비단 이러한 제안이 나를 어설픈 낭만주의자로 몰지 않기를! 나는 이 서평을 보는 당신들의 내면과 지성을 존중한다. 고로 내 지적이 마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과 같은 아방가르드를 한국 사회에 들어오려는 게냐!라고 묻는 것이라면..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너무 '자기계발서 ver.'로 몰고 갔나? 아니다. 이 책의 진가는 자기 세대에 대한 통찰과 더불어, 한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가, 어떤 경로를 통해 글을 쓰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이 사회와 이어질 때 어떤 정기능과 역기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기해부학적' 기술에 있다. 그리고 그런 기술 속에서 저자는 요즘 세대들에게 빈곤과 부재의 대상이라는 '정치'를 가져온다. 아까 앞에서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언급한 부분이지만, 이 책의 미덕은 '정직하고 잔인하다'는 점이다.
좀 깊이 생각해보자면, 나는 우리 세대의 지적인 영토와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옛날에 대학교에서 전공수업을 듣다가 흥미로운 멘트가 교수님에게 나왔다. "요즘 세대들은 본받을 지적인 스승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죠..우리 때는 백낙청..리영희...신영복...김우창..이 있었는데 요즘은 누굴 따르죠?" 내가 당시 손에 든 책이 흥미롭게도 한윤형의 글에 자주 언급되는 강준만 교수의 것이었다. 리영희 선생님이 강연을 하러 왔을 때가 기억난다. 리영희를 추억하는 많은 할머니, 아저씨들이 강연을 보러 왔지만, 정작 그 자리를 내어준 대학교 내 학생들은 "리영희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멀뚱멀뚱 쳐다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책 조금 본다는 친구들, 수업 조금 열심히 듣는다는 친구들은) '강준만'하면, '진중권'하면..알았다. 그렇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우리 세대에게 강준만은, 진중권은 그리고 여전히 '어떤 존재'로 남아있는 것 같다. 저자는 그런 지적인 영향력을 자신의 삶 속에서 언급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언급은 지루한 지적 계보의 형성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글쓰기 인생 속에서 '야릇하게' 담겨있어 그리 부담이 없을듯하다.
행여 이러한 리뷰가 일부 지식인들에게 '반지성주의'를 외치는 것이냐! 혹시 한윤형의 책이 그런 것이냐라고 간주될 수 있을 위험, 혹은 위협이 우려되는데, 나는 '지성'을 좋아하며, 이 책은 거칠고 잔인하지만,,온갖 포장과 미화에 매몰되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글을 썼는지도 모르는 이들의 글쓰기 행위를 반성하게 하는 에너지가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책 속 사진만 보면, 그는 말년 병장의 포스와 일부러 가난뱅이 행세를 하며, 조선의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는 어진 암행어사 같은 기운도 보인다.(너무 과잉 해석인가^^?)
이 책을 덮고 나면,그에게 풍기는 '독설'의 기운도,,혹은 누군가를 닮고 싶어하는 그 '애정'의 기운도..결국 '사람을 챙기고 가려는 의지'가 뒷받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은 흐뭇함이 남는다.
사람을 챙기고 가려는 의지. 내가 요즘 대학원생이라는 그 가냘픈 '지적 호칭'아래,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혹시 (사람이 말살된) '학문-폭력'을 저지르고 있지 않는가라는 고민하는 가운데, 사람을 챙기려는 의지를 나와 같은 세대의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반갑고 또 반가운 일이다. 결국 배움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가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책의 인연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