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
요시미 순야 지음, 박광현 옮김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08년 10월
절판


1990년대 초엽까지 일본에서는 문화연구가 총체적으로 거론된 바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문화연구는 일부의 매체 연(9)구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비판적 수용자 연구의 하나로 해석되고 수용되는 데 그쳤다. 그런 수용 과정에서 논자들은 주류의 사회심리학적인 효과연구를 비판하고 '해석'과정에서 수용자가 의미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텍스트의 기호론적인 다의성을 강조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연구의 요점을 수용자의 의미해석이라는 차원으로 환원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이용과 만족에 관한 연구와도 통합이 가능할 것처럼 이해하는 태도는 일상생활의 총체적 비판으로서 문화연구가 지니고 있는 비판적인 범주를 너무나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9,10쪽

1990년 후반 이후 일본에서 문화연구를 둘러싼 상황은 일변했다. 그것은 일종의 지적유행품이 되었던 것이다.더구나 그것은 수용자 이론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유행했다.오히려 1990년대 일본에서의 문화연구는 매체연구의 하나로서 주변화되고,포스트콜로니얼한 표상분석의 조류로(10)서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국민국가로 비판으로서의 성격이 문화연구에 부가되기 시작했고,또한 '피억압자'들의 저항운동과도 결부되기 시작했다.지금의 문화연구는 10여 년 전 매체연구 분야에서 수용되었던 때와는 달리 일종의 표상의 정치학으로서 젊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연구의 시야 확대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가령 마지막에 언급한 피억압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미 여러 차례 비판했듯이,문화연구가 피억압자의 주체성을 본질주의적으로 고정화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0,11쪽

문화를 이미 거기에 존재하며 고유한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영역이 근.현대에 존립하는 그 자체를 되묻는 것.문화를 경제나 정치로부터 분리된 고정적 영역으로 여기거나 또 그런 경제나 정치에 종속적인 표층의 질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이 작동하고 경제와 결합하여 담론의 중층적인(22)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으로 문제화해 나가는 것.문화연구가 단순한 문화의 실증주의적인 연구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문화연구는 역사 이해의 불가결한 차원으로서 문화에 주목한다는 것뿐만 아니라,그러한 문화는 차원 자체의 존립 기제,즉 그것이 일정한 담론과 권력의 소재적인 구성으로서 성립하며 재생산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것을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로 문화를 문제제기하는 연구인 것-22,23쪽

이와 같은 의미에서 문화가 인류학적,역사적 기술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중대한 문제로서 광범위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특히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일어났다. 더욱이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일정한 독자적 사회영역을 제시하는 말로서 확립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이기 때문에,문화가 문제시될 수 있는 전제 조건 그 자체가 19세기 전반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23쪽

스크루티니(scrunity)그룹: 1932년 리비스그룹에 의해 출범한 비평전문지 '스크루티니'를 통해 케임브리지 영문학을 주도한 그룹으로,영문학의 지도를 다시 작성했다고 평가된다. 엄격한 비평적 분석의 중요성과 '페이지 위의 단어들'에 대한 잘 훈련된 집중을 강조했으며,문학을 근대 상업사회 어디에서나 수세에 몰리고 있는 창조적 에너지들의 보호캡슐로 간주했다. 또한 단순히 문학적이기만 한 가치들을 거부했으며,문학작품의 평가방법은 역사 및 사회 전반의 성격에 관한 보다 통찰력있는 판단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27쪽

스크루티니 그룹은 훗날 문화연구가 마르크스주의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일상 속 문화적 실천의 정치성을 문제제기한 것과는 다르게 어디까지나 서구의 엘리트주의적인 가치에 근거해 대중문화의 침투를 비평하는 입장에 그쳤다.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몇 가지 점에서 문화연구의 문제를 구성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드워킨은 이 스크루티니 그룹으로부터의 연속성을 다음 세 가지 점으로서 정리하고 있다. 첫째,그것은 문학작품의 범주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실천,광고나 대중 잡지,대중음악,영화 등에 대해서도 비평적인 방법을 적용해 나갔다.-29쪽

둘째,그것은 기존의 문학연구와 같은 작품론이나 작가론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29)적 텍스트나 미디어,언어,역사를 포괄적으로 문제 삼는 지평을 개척했다.셋째, 그들은 이런 비평적인 실천을 실제 학교에서의 교육실천과 결부시키고 미디어연구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나로 통합해 발전시킬 방도를 제시했다(드워킨,1997).-29,30쪽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에서 미국의 중층적인 작용을 절묘하게 파악한 딥 헵디지는 이러한 오웰의 아메리카니즘 비판과 '읽고 쓰는 능력의 효용'(1958)에서 보여준 호가트의 관점이 지닌 연속성을 지적하고 있다.리비스나 엘리엇이 영국의 엘리트적인 문화전통을 옹호하면서(34)그런 토양에 야만적으로 침투해오는 미국류의 대중문화를 비난한 데 반해,오웰이나 호가트는 영국의 노동자 계급의 견고한 생활을 옹호하면서 그런 생활세계에 매스 미디어와 소비주의로 대표되는 아메리카니즘이 침투해오는 것을 위험시했던 것이다(헵디지,1988).이렇게 문화연구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문화'를 문제시하는 관점이 노동자 계급의 문화적 세계에 내재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때, 아카데미즘이나 전문영역의 주변,예를 들면 성인교육의 현장과 같은 교실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34쪽

호가트는 현대사회가 특별한 기능으로 "평범함에 만족하는 테크닉"을 발달시키고,이미 "거대하고 새로운 설득 기계를 가진 통속화의 사도들이 넓게 펼쳐진 무인의 평원을 점령"하고 있다고도 논하고 있다.거기에서는 진보의 관념이 "오늘날의 복잡하게 뒤엉킨 상업적 생활의 압력에 짓눌린 채 확대되어 거의 제약 없는 물질적인 '진보주의'에까지 미치고"있다.특히,이러한 진보주의의 수용에는 "대중적인 선전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영화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호가트를 놀라게 만든 것은 영국의 노동자 계급(36)사이에서 미국류의 진보주의를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 광범위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36,37쪽

호가트의 관점은 노스탤지어로 이상화된 계급문화에 의거하면서 현재진행중인 문화변용을 가치의 퇴락으로서 파악했다는 점에서,엘리트주의적인 입장에서 현재의 변화를 비판한 스크루티니 그룹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아니다. ->41 : 드워킨은 홀과 화넬의 공저 <대중예술(1964)>이 상업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관점과는 다르며 동시대 젊은이들의 가치관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서 문화현상을 평가하고자 했던 점에서,1970년대 이후 하위문화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논하고 있다.단지 그 한계는 그들이 재즈의 문화적 가치를 열심이 인정했던 것에 비해서 록큰롤은 부분적으로 평가하는 데 그쳤고,블루스와의 연속성이나 60년대 이후 록의 실험성에도 민감하지 못했다는 식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방법론적으로 홀과 화넬은 그 시점에서는 아직 음악이나 영상 텍스트를 분석하는 수법으로서 기호론이나 정신분석의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고,수용자가 그런 텍스트를 어떻게 수용하는지에 대해 민족지학적인 조사를 시도하지도 않았다.오히려 홀과(41)화넬은 절차적으로는 스크루티니 그룹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일정한 가치 척도-38,41쪽

를 끼워 맞춰서,예컨대 재즈의 문화적 가치를 록의 상위에 두고 있었다.(42) / 3.문화주의와 구조주의? - 유의해두고자 하는 것은 1960년대 중반까지 문화연구와 마르크스주의 사회이론의 관계는 아직 유동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분명 E.P톰슨과 같이 이른 단계부터 정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관여했던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윌리엄즈나 홀 등 버밍엄대학의 연구소 사람들이(43)마르크스주의 사회이론을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알튀세르나 그람시를 도입하기 시작하는 1960년대 말 이후의 일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1968년에 일어난 세계적인 문화 소요는 문화연구의 발전에 대단히 근본적인 계기가 되었다.그 소요로 인해 그때까지 문화나 사회에 관한 사고를 지탱해왔던 무엇인가가 붕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빈틈으로 한꺼번에 이입되기 시작한 것이 그람시나 알튀세르를 비롯한 대륙의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이었다.또한 프랑스의 구조주의는 기존의 영국 문화연구에 결여되어 있었던 텍스트에 관한 구조분석의 지평을 열고 1970년대 이후 문화연구의 지적 생산력의 기반을 만들어갔던 것이다.(44)-42,43,44쪽

문화주의적인 문화 이해에 대해서 구조주의적 입장에서의 문화나 경험은 이미 제1차적인,의미나 가치가 거기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기원일 수 없다. 왜냐하면,이러한 접근 방법에서 보자면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과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적 지평에서 제시했듯이 우리들은 정해진 기호론적인 코드에 따라서만 비로소 무엇인가 의미를 창출하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에서 사회를 구조화하는 코드의 작용은 사람들의 경험을 집합적인 무의식의 차원에서 관통하고 있다.사람들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생(46)생한 의미는 그 자체로 근원적인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이러한 코드화 작용의 효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분명,문화주의도 문화나 경험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이나 세대 등이 교차하는 집합적인 과정 안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에게는 경험의 주체로서 그러한 사회적 집합이 보다 본질적으로 전제되었던 것이다.-46,47쪽

구조주의는 오히려 그러한 주체 그 자체를 언어나 담론의 구성 효과로서 이야기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이러한 접근법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그것에 의해 에이전트로서 구성되는 과정 안에 편입되어 있는지를 일러줬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를 크게 진전시켰다고 홀은 말한다(홀,1980).-47쪽

넓은 의미에서 사회가 언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을 취하면서도,홀은 역사 안에서의 주체,즉 역사를 짊어지고 역사를 형성하는 주체적인 것에 계속 집착했다.그렇기 때문에 그는 푸코의 권력 분석이 구조주의적인 전제에서 출발하면서도 문화주의에서 강조해온 역사의 구체적인 장면에 대해 면밀히 기술한 점을 평가하는 동시에,푸코가 미시적인 담론의 장에 관심을 집중시켜 대문자의 권력과 국가에 대한 관점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 하고 비판하기도 했던 것이다.이런 푸코에 대한 비판이 타당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1970년대 문화연구의 전개에 관해 문화주의적인 계보로붙의 단절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일은 삼가고 싶다.폴 윌리스의 하위문화연구나 오디언스 민족지학을 비롯해,문화연구에는 문화주의를 계승한 결과물이 적지 않다.-49쪽

4. 대중문화와 경계의 정치학 - 존 피스크의 견해는 명백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대중적인 것'의 구성 계기를 각각의 복잡한 매개과정(55)으로부터 발췌하여 지배적인 것과 대항적인 것을 이항대립시키는 도식에 빠져 있다.모든 대중문화의 구성 계기를 균일성을 지향하는 헤게모니적인 권력과 이질성을 지향하는 대중적인 저항의 대립 도식에 끼워맞추는 그의 분석 틀은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어서 실제 현상의 역동성을 파악할 수 없다. -55,56쪽

특히 다음 두 가지가 문제적이다. 첫째,피스크의 견해에서 대중적인 것은 지배적인 것에 대해서 항상 대항적인 가능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중략)다음으로 피스크의 견해는 의미론적인 레벨에서의 대항성이 정치경제적인 시스템의 작용이나,젠더나 인종을 둘러싼 제도적인 구조 등 다른 문맥적인 힘으로부터 벗어나 논의되어 있다.-56쪽

1980년대 이후 진행된 대중문화연구로서의 문화연구는 이와 같은 이항대립적인 구도로부터 조금씩 해방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점차 대중적인 것을 단순하게 대항문화적 성격에 의해서 정의하거나 계급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담론적 실천을 매개로 하는 미세한 권력 작용에 집중하면서 계급과 인종,젠더 등의 여러 차원이 교차하는 다층적인 항쟁의 장으로서 파악하게 된다.-61쪽

문화를 다시 읽다 중 / 초기 시카고학파의 경우'하위문화'라는 용어 그 자체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고,무엇보다도 그들의 관점은 그것들을 사회병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일탈이라는 방향으로 회수되어 버렸던 것이다.(68) 현재의 관점에서라면 하위문화는 단순히 기능적인 의미에서 사회 시스템의 하위체계인 것도 소집단의 가치체계인 것도 아니고,오히려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를 상대화하는 계기가 포함된 일정 집단의 문화적 세계로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지금까지 전적으로 비행이나 일탈로 이야기되어 왔던 청년들의 문화를 하위문화로 재정의하는 관점을 뚜렷하게 보인 것은 역시 베커의 레이블링 이론으로부터일 것이다.-68,69쪽

청년들을 쾌락으로 파악한 관점은 1950년대에 풍족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힘을 지니게 되면서 광고나 대중잡지의 담론으로부터 부상했다.특히 이 시기에는 미국적인 상품이나 유행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틴에이지(십대')라는 용어가 수입되고 청년문화의 상업적인 측면을 초점화했었다. 헵디지는 두 가지의 이미지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말하는 데에 반대한다.오늘날 청년들의 반항은 소비의 스타일을 통해 표현한다.거기에서 상업적인 쾌락의 영역과 정치적인 반항의 영역을 분리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현대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가공하고 패션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신체적 영역을 정치화하며 그 아이덴티티의 정치학을 조직하고 있다(헵디지,1988)-97쪽

하지만 1970년대까지의 하위문화 연구는 1980년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비판을 받게 된다.예를 들어,그들의 연구에서는 지배적인 문화에 대한 하위문화의 대항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역으로 상품화되고 대중적으로 소비된 하위문화에 대해서는 충분한 통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확실히 헵디(98)지는 문화산업이 하위문화를 문화상품으로 대량생산해낸 과정이나 저널리즘이 하위문화에 레테르를 붙여나간 과정에 대해 논하면서 지배적인 문화가 하위문화를 순치하고 시스템 안으로 통합시킨 과정을 문제 삼았다.하지만 전체적으로 1970년대의 문화연구에서 하위문화는 우선 저항의 윤리를내포한 것으로서 본질주의적인 파악이 주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그 때문에 문화의 상업적인 소비형식으로서 하위문화가 발달한 과정이나 하위문화 내부의 모순과 어긋나는 점,그리고 그것들이 어떠한 매개작용 속에서 증식하고 변형되고 붕괴되었는가 하는 등의 물음에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통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98,99쪽

항쟁의 장으로서의 미디어 / 윌리엄즈는 효용연구로 대표되는 미국의 매스컴 연구의 한계를 명확하게 비판하게 된다.이러한 효용연구는 대중매체의 현상을 다양한 힘들이 서로 복잡하게 작용하는 사회적 문맥으로부터 분리하고 단순한 효과의 원인으로부터 추상해 버린다.문화를 다루는 많은 사회학적 연구들이 대상을 사회적,역사적 문맥 속에서 이해하거나 당사자의 의도나 관찰자의 상황에 관여하는 것을 중시해 왔던 것과 달리,매스컴 연구에 관해서는 이해학적 계기가 배제되고 사회적 기능이나 사회화라는 개념과 결합된 과학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이와 같이 탈문맥화된 지평에서 매스미디어가 폭력이나 비행과 같은 일탈행위,혹은 투표행위나 소비행위의 원인으로서 어떻게 기능하고(110)있는지가 측정되었던 것이다.-110,111쪽

윌리엄즈가 비판하는 것은 이와 같은 효용 연구의 시각이 기존의 미디어 체제를 이미 주어진 독립적인 변수로 간주해 버린다는 점에서,그러한 기존 미디어의 실상을 근저에서부터 의문시할 가능성을 처단해버린다는 것이다.따라서 그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효용연구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맥루언의 미디어론에도 매우 엄격한 평가를 내린다.윌리엄즈의 관점에 의하면 맥루언은 미디어를 처음부터 존재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특성이 우리들의 감각질서를 이방적으로 변용시킨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중략)이처럼 윌리엄즈는 역사사회적인 구성력이 결여되어 있는 맥루언의 미디어 파악에 대해 엄격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111쪽

윌리엄즈는 또한 '텔레비전이 있는 생활'을 공간적인 차(113)원으로부터 포착하여 '이동적 사생활화'와 결부시킨다.그는 현대사회의 기본적인 동향을(1)이동성의 확대와(2)사적 생활영역의 중심화에서 찾고,텔레비전은 그 두 가지 동향을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제도화되고 있다고 논한다.20세기 초에는 철도와 같은 공공교통과 영화와 같은 미디어,도시화된 생활양식이 결합되어 일상생활을 성립시켰다면 20세기 중반 이후 이 결합은 자동차교통과 교외주택지의 생활,텔레비전과 같이 미디어가 조직해내는 기술시스템으로 전환했다.우리는 오늘날 텔레비전 영화를 통해서 세계라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이러한 전자적인 창으로서의 텔레비전이라는 존재는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빈번하게 광범위한 이동을 필요로 하게 되고,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생활이 점점 교외의 사적영역으로 둘러싸이는 상보적 운동을 매개한다(윌리엄즈,1977) -113,114쪽

윌리엄즈의 접근법은 사회생활의 구체적인 컨텍스트로부터 추출된 추상적인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또는 테크놀로지의 자율적인 힘에 미디어연구의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컨텍스트,즉 일상생활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일상이 컨텍스트화되는 과정 속에서 미디어가 어떻게 구성되고 소비되는지(114)를 고찰하고 있다. 확실히 이러한 일상적 경험에 준거한 문화유물론적 접근이야말로 문화연구에서 미디어연구가 차지하고 있는 원점인 것이다.-114,115쪽

홀의 관점은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매스컴연구에 대해 두 가지의 근본적인 비판을 포함하고 있었다.첫째로 매스컴연구의 전달 모델은 상이한 입장이나 집단의 차이를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사회적인 대세를 통해 기본적인 가치에 관한 합의가 성립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친 효용연구가 문제 삼은 것은 미디어의 정보가 수신자의 선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이었다. 미디어의 효용이 측정 가능한 수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도 '선호'의 양적인 차로 환원될 수 있다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었다.-120쪽

효용 연구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지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가치의 대립을 선호의 차로 환원해 버리는 시장주의적 사회이해,예컨대 파슨의 사회시스템론으(120)로 대표되는 것과 같은 사회이해가 사회과학 전반에 지배적이었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이 모델에서는 권력의 문제가 영향력의 문제로 환원되고 개인적인 선호의 차이를 초월한 가치의 시스템 차원에서는 사회가 단일한 방향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종언을 맞고 있었으며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규범과 모순된 행동은 이질적인 가치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일탈의 문제로 취급되고 있었다.-120,121쪽

이데올로기란 사회적 현실을 구성해나가는 담론적 실천의 문제이지, 단순히 사회적 현실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언급하고 있는 메타담론의 문제는 아니다.미디어는 동시대의 현실을 분절화하고 정의하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담론의구조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역사화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그러한 구조가 처음부터 사회에 공유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립과 갈등,항쟁속에서 헤게모니를 확립하고 또한 새롭게 조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대중매체의 담론실천은 이러한 종류의 헤게모니적인 현실 구성의 기간을 이루는 것이다.또한 이러한 미디어를 둘러싼 관점의 언어론적 전회를 통해 우리는 내용분석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언급대상과의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미디어가 현실의 틀을 구성하는 암시적인 구조의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124쪽

1970년대 초 윌리엄즈와 홀은 모두 주류의 매스 커뮤니케이션론이나 기술결정론에 대항적인 입장에서,커뮤니케이션이 사회적인 경쟁 속에서 구축된다는 점을 강조하며,대항적 미디어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윌리엄즈의 논의는 분명 텍스트의 다성적인 읽기보다도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구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역으로 홀의 논의는 후자보(124)다도 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24,125쪽

피스크는 '프로그램'과 '텍스트'의 개념을 구별하자고 제안한다. 우선 '명확하게 규정되고 의미가 부여되어 텔레비전에서 출력된 것이 프로그램'이다.프로그램은 유니트로서 판매되고 시간 단위로 분배된다.그에 비해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과 프로그램과의 상호작용이 프로그램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의미작용과 즐거움을 창(128)출할 때,프로그램은 독해라는 요소를 통해 텍스트가 된다.즉,하나의 프로그램은 그것이 수용될 때의 사회적 제반 조건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상이한 텍스트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128,129쪽

문화연구는 텍스트의 구조에 특권성을 부여하는 '텍스트중심주의'에는 반대하지만 텍스트 읽기가 오(135)디언스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35쪽

문화연구의 오디언스 민족지학은 실제로 실증적인 매스컴 연구 속에서 성과를 쌓은 수용자연구의(137)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제임스 커런에 의한 비판으로,그는 몰리의 오디언스 연구를 신수정주의라고 부르고 그것들은 효용연구의 추세에 의해 선취된 것이지 몰리가 주장하는 수준의 새로움은 어디에도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이다.커런은 효용연구가 이미 1940년대부터 수용자가 단지 미디어에 수동적으로 조작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율성을 갖춘 능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강조해왔다고 논했다.커런에 의하면 효용 연구에서는 상반된 입장의 사람들이 같은 텍스트에 극히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왔다. 잘 알려진 라자스펠드의 커뮤니케이션의 2단계 흐름 모델도 이러한 미디어에 대한 수용자의 상대적인 자율성에 주목해왔다고 말한다.몰리의 시점은 분명 텍스트 중심주의적인 구조주의와 대비시켜 보자면 새로운 것인지 몰라도,거기에 선행하는 실증적인 효용연구로의 격세유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136,137쪽

하지만 이와 같이 문화연구를 주류 매스컴 연구와 중첩시키는 것은 그 기저에 착오가 있다.예컨대 몰리는 이미 <네이션와이드 오디언스>에서 오디언스가 미디어를 다의적으로 독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해석에 똑같이 열려 있는 것은(137)아니며 우선적인 읽기가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화연구가 텍스트의 다성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결코 이용과 만족연구가 전제하는 다원주의를 승인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또한 몰리는 이용과 만족연구의 배경에 있는 개인의 사회심리적인 특성에서 추상화해야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위문화적인 질서로 문맥화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137,138쪽

커런의 비판에 대해서 몰리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선,최근의 역사학 논의가 보여주듯이 과거는 현재에 의해 소환되고 이야기된다.초기의 효용연구에는 분명 수용자의 자율성을 강조한 얼마간의 연구가 있으며 그러한 계보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커런이 그와 같은 흐름을 통해 매스컴 연구의 과거를 말할 때, 그 역사는 그가 말한 '신수정주의'적인 연구의 경향이 없었다면 논의될 수도 없었던 역사인 것이다. 요컨대 여기에는 우선적으로 논의 선점이 있고,커런은 문화연구가 확장한 전망에 입각하면서 그것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는 연구를 채택하여 전자가 후자의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논하고 있는 것이다.-138쪽

앙 역시 수용자의 능동성을 핵으로 하여 문화연구를 이용과 만족 연구에 접근시키는 것이 허위라고 말한다.그녀는 주류 연구와 비판적인 연구의 차이는 양자가 입각하고 있는 의견의 차이 이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문화연구나 이용과 만족연구는 텔레비전 시청자가 반드시 발신자의 의도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며 텍스트에 능동적인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의식을 공유하면서도,결정적으로 그러한 능동성을 성립시킨 사회적 문맥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이를테면 이용과 만족연구가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에 기반한 채 개인을 원리적으로는 다양한 해석으로 열려 있는 자유로운 주체로서 간주하는 것과 달리,문화연구는 후기구조주의를 배경으로 주체를 계급이나 젠더,에스니시티 등을 둘러싼 사회적 권력의 불균등한 배분 속에서 구조화된 것으로 간주한다.후자의 경우 텍스트의 외부에 있는 것은 자유로운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중층 배치인 것이다.이것은 주체가 처음부터 변경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결정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주체는 결정되지 않는(139)것도, 결정되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중층결정되는 것이다.(앙,2000)-139쪽

1980년대 이후,지금까지 지역이나 내셔널,민족 등에 의해 규정될 수 있었던 문화의 기반이 획기적으로 변용하고,다양한 경계가 교차하며 충돌해가는 가운데 문화연구는 이 끊임없는 탈영역화/재영역화된 글로벌/로컬한 변동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파악해왔다.이 때 한편에서는 다국적기업의 초국가적인 자본의 전략과 세계동시적인 미디어가 문제시되고,다른 한편에서는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두해 온 반세계화와 로컬리즘,신자유주의가 문제시되었다.게다가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이항대립 자체를 문제제기하는 차원에서 크레올,디아스포라,혼종,다문화주의 등을 둘러싼 포스트콜로니얼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149쪽

실제,월러스틴의 인종주의를 둘러싼 논의는 현실의 인종차별에 입각해 생각해 보면 역동성을 상실하고 만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문화가 단순히 집단 사이의 차이를 식별하는 표식이 아니라,그 담당자에게 고유한 의미를 지닌 실천이라는 점을 간과할 여지가 있다.발리바르도 인종주의에 대한 월러스틴의 설명이 '사회적 논쟁의 복합성'에 형식적인 적어도 획일성과 상대성을 강요하(155)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발리바르의 생각에는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시스템의 일원적인 작용이 아니라,각각의 로컬한 장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논쟁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다양한 형태인 것이다. -155,156쪽

몰리에 따르면,가정이라는 공간 안에 이미 전지구적인 것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문화연구가 민족지학적인 다양한 연구 안에서 탐구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텔레비전 소비를 거시적인 이데올로기나 권력 편제의 문제와 결부시키는 전략적인 틀이었던 것이다.그리고 오늘날 미디어 전체에 있어서 편제의 중심은 전지구적을 우리들의 경험을 단편화하는 미디어로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편화는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오히려 젠더나 네이션을 둘러싼 경계서이 새롭게,중층적인 방식을 통해 공간적으로 조직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사적 공간이나 가정이라는 공간과 같은 미시적 공간이 전지구적인 공간에 우선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에 의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전지구적인 공간과 서로 작용하면서 재창출되어가는 것이다(몰리,1992)-179쪽

한편,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문화연구가 유행하는 속에서 피억압자에 의한 저항의 새로운 이론적 무기로서 그(188)것을 도입하자는 입장도 매우 강조되었다.이러한 입장은 흔히 문화연구의 가치를 피억압자의 급진적인 저항운동과 결부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분명 아카데믹한 제도화에 비판적인 거리를 견지하며,스스로의 지를 어디까지나 동시대의 사회 모순과 갈등,그리고 운동과 같은 문화정치적 투쟁 상황의 중심에 두려고 하는 문화연구의 입장을 정당하게 표현하고는 있다.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문화연구의 핵심이 피억압자의 주체성을 본질주의적으로 고정화하는 데 대한 비판에 있다는 점은 이미 다양한 논의를 통해 검토되어온 바 있다.일상의 평범하며 분산적이고 단편적인 문화실천 속에서의 정치와 다른 한편의 저항과 운동,그리고 억압과 배제와 같은 보다 직접적인 정치의 발현은 어디까지나 연속적인 것으로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현재화한 저항과 운동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일상적 실천 안에 다양한 차이와 아이덴티티가 구성되고 또 실정성을 띠는 정치의 장이 무수히 중복되어 있는 것인데,그러한 장의 내부로부터 문제 제기-188,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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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미디어 출현과 수용 : 1880~1980 - 2010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김영희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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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론사 연구 또는 커뮤니케이션사 연구에서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고 보급되는 과정이나 새 메체 출현으로 형성된 미디어 수용자들과 관련한 연구 다시 말해서 매체 수용 현상과 수용자의 매체 접촉 현상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 이전에는 이런 주제의 연구가 거의 없었다.-머리말5쪽

서론 : 한국사회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과 수용 역사 -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전체적인 미디어 발달 과정은 로웬스타인과 메릴(1990)이 설명한 E-P-S곡선(Elite-Popular-Specialized)을 그리며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새로 출현한 미디어는 새로운 개혁요소로서 체제구성원들이 그 개혁요소를 어느 정도 채택하여 채택 속도가 스스로 지속성을 갖는 시점 즉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가 형성되면 채택 속도가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다(로저스,2003/2005)(중략)한편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면 그 매체를 접촉하는 수용자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때 수용자의 미디어 이용 양상은 대체로 사회 발전 정도와 미디어 접근 가능성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의해 규정되기 마련이다.수용자의 미디어 이용은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큰 틀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과정이기 때문이다(맥퀘일,2000/2002)-1쪽

미디어가 출현하고 보급이 확산되면서 이를 매개로 한 공동체의 성격도 주목된다. 앤더슨은 "민족이란 일종의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라 하였다.(앤더슨,1991)민족을 상상된 것으로 보는 이유를 그는,민족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서로 모르고,만나지도 않으며, 전혀 얘기 들은 적도 없지만, 그들 각자의 생각에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를 재표현하는 수단이 18세기 유럽과 그 이후 세계 각 지역에서 발전된 소설과 신문이라고 설명했다. 몰리와 로빈스(1995)는 이 개념을 텔레비전에 확대,적용했다. 텔레비전이 수용자들에게 상상의 전자공동체(imagined electronic community)를 형성시킨다는 것이다. -2쪽

기술적으로 같은 속성의 매체가 보급,전파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각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면들이 있지만, 기본적인 유형은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개념들은 한국사회에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하고 보급되는 과정과 그에 따라 새로 형성되는 수용자의 성격 및 한국사회에 미디어가 출현하며 대두된 사회적 공동체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3쪽

로웬스타인과 메릴에 의하면 엘리트 단계의 사회는 경제적인 빈곤과 문명이 일반화되어 있는 대체로 농경사회의 모습이다. 미디어의 수도 적고 전달되는 정보량도 적다. 이에 따라 미디어 소비비용은 상대적으로 높다. 미디어의 주 수입원은 구독료이다. 미디어의 내용은 주로 계도적이며,비교적 높은 수준의 문예물과 정치기사가 그 중심이다.따라서 미디어의 주요 향유 계층은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소수 엘리트층이다.미디어 발달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이 단계가 대체로 1883년 근대적인 신문 <한성순보>가 출현한 이후, 1950년대 제1공화국 시기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4쪽

제1공화국 시기까지의 한국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는 대체로 대인 커뮤니케이션이 지배하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공적인 문제에 대해 수용자에게 전해지는 정보의 양은 매우 적었고,정보의 흐름은 미디어로부터 의견지도자를 거쳐,일반 수용자에게로 흐르는 2단계 유통의 유형이 많았던 기간이었다.사회집단에 속하는 수용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정보의 2단계 유통이라기보다는 구매력 부족으로 매체를 직접 접촉하기 어려운 데서 비롯된 정보의 2단계 흐름이었다.-5쪽

그런데 한국사회에 매체 보급이 대중화되기 이전 전국적인 상황과는 매우 다른 예외적인 지역은 서울이었다. 개화기에서 제1공화국 시기까지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전국적으로는 미디어 보급이 매우 부진했지만, 수도 서울에는 상대적으로 신문,잡지,라디오,영화 등 여러 매체들이 먼저 보급되었고,전기,교통,통신 등 사회간접시설의 설치와 확충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5쪽

대중화 단계 / 로웬스타인과 메릴의 e-p-s곡선에서 두 번째 단계인 대중화 단계는 대체로 산업사회의 모습이다.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수용자의 경제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이 향상된다. 이에 따라 미디어 구매력이 증가하여 다양한 매체가 출현하고, 수용자의 규모도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유통되는 정보의 양도 많다. 이 단계는 특히 라디오 보급이 급속하게 이루어져 대중화 단계 진입을 견인한다. 라디오의 급속한 보급에 따른 미디어 대중화 효과를 그들은 도약효과(leapfrog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엘리트단계의 미디어 보급 장애물이었던 빈곤과 문맹을 짧은 시간에 극복하고 대중화 단계로 나아가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6쪽

텔레비전과 영화도 대중화에 기여하지만 프로그램 제작시설과 제작비용, 극장 설립, 텔레비전 수상기 구입비용등이 많이 필요해 라디오보다는 대중화 효과가 적은 편이다. 이 기간의 매체 내용은 대체로 대중이 선호하는 오락이나 인간적 흥미를 일으키는 내용이 많아 선정적,소비적인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이 기간의 미디어 주 수입원은 미디어 대량 보급에 따라 광고비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이 단계의 수용자는 개별 미디어의 수용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대중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내는 한편 미디어 광고의 소비자이며 동시에 광고주에게 판매되는 시장으로서의 수용자 즉 수용자 상품의 성격을 띠게 된다.-6쪽

미디어가 보급되는 과정으로 말할 때 1960년대의 한국사회는 비로소 대중화 단계에 진입한 연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특히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의 군정당국과 제3공화국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이를 홍보하고, 국민들의 참여와 협조를 이끌고 동원하는 수단으로서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하고 그 보급을 지원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다.이에 따라 이 시기에 민간 라디오 방송,텔레비전 방송 등 여러 종류의 방송매체가 출현하고, 그 보급이 전반적으로 크게 증가했다.-7쪽

이처럼 미디어 보급이 급속히 증가하고,그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미디어의 접촉에서 당시 한국인은 그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가 매개하는 대중문화 시대 곧 라디오,주간지,영화 등을 매개로 한 소비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시기와 전쟁을 겪으며 궁핍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근검절약의 가치관이 소비가 미덕이며, 성공과 행복의 지표로 인식되는 가치관 소비 이데올로기가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한국사회에서도 대중화 단계의 수용자는 엘리트 단계의 독자와 청취자로서의 수용자와 함께 시청자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대중으로서 그리고 대중적인 소비자이며 동시에 광고주에게 판매되는 상품으로서 수용자의 성격이 주목받기 시작했다.-7쪽

전문화 단계 / 전문화 단계는 대체로 정보사회의 성격을 보인다. 그들에 의하면 전문화 단계는 대체로 정보사회의 성격을 보인다. 그들에 의하면 전문화 단계는 전문화 가속 요인인 고등교육,경제적 풍요, 여가시간, 인구규모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서 도달하게 된다.대부분의 국민들이 고등학교 교육을 이수하고, 다수의 국민이 대학교육을 받는 단계이다.이 단계의 미디어 수용자는 대중화 단계보다 수용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 대신 미디어와 내용이 보다 다양화,전문화되어 수용자의 세분된 지적 욕구, 정보 수요와 취향에 부응하게 된다. 이 단계 미디어와 주 수입원은 수용자의 사용료(구독료, 정보이용료 등)와 광고비이다. 전문화 단계의 수용자의 성격은 개별 미디어의 수용자인 독자, 청취자,시청자로서의 모습, 대중으로서의 모습과 함께 공적인 시사문제에 대해 적극적,조직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공중으로서의 수용자 (8) 모습이 나타난다. -8쪽

한국사회의 미디어 보급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 첫째, 경제소득수준 둘째, 미디어 테크놀로지 기술과 미디어 생산능력 셋째, 교육수준 넷째, 정부의 미디어 보급 정책과 의지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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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혁명
레이먼드 윌리엄스 지음, 성은애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구판절판


2장 문화의 분석 중 일부를 옮겨본다 / 문화의 정의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범주가 있다. 첫 번째는 '이상'이라는 정의로서,문화는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가치의 견지에서 인간의 완성 상태 혹은 완성 과정이다.이러한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문화의 분석은 본질적으로 삶과 작품들 속에서 영원한 질서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혹은 보편적인 인간 조건에 대해 영속적인 관련을 갖는 가치들을 발견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록'이라는 정의로서 ,문화는 세밀한 방식으로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다양하게 기록하는 지적이고 상상력이 깃든 작품의 총체이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문화의 분석은 비평활동이며, 이를 통해서 생각과 경험의 본질, 언어의 세부 사항들, 이러한 것들이 작동하는 형식과 관례 등을 묘사하고 가치를 부여한다. -83쪽

그러한(83)비평은 '이상'의 분석,즉 '이 세상에서 생각되고 씌어진 것 중 최상의 것'(매슈 아놀드의 말)의 발견에서부터,전통에 관심을 두면서도 연구되는 특정한 작품(연구의 주된 목적은 작품을 명확하게 해주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강조하는 과정을 거쳐, 특정한 작품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 그것들을 그 작품들이 출현했던 특정한 전통이나 사회와 연관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역사적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84쪽

마지막으로 문화에 대한 '사회적'정의가 있다. 이 경우 문화는 예술이나 학문에서뿐만 아니라 제도나 일상적 행위에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문화의 분석은 특정한 삶의 방식,특정한 문화 내에서 명시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드러나는 의미와 가치들을 해명하는 것이다.그러한 분석은 이미 언급한 역사적 비평을 포함할 것이며,이때 지적이고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은 특정한 전통이나 사회와 연관되어 분석될 것이지만,문화에 대한 다른 정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문화'가 아닌 삶의 방식의 요소들 - 즉 생산의 조직,가족의 구조,사회관계를 표현하고 지배하는 제도들의 구조,그 사회구성원이 의사소통하는 형식들-에 대한 분석도 포함할 것이다. -84쪽

또한 그러한 분석은 '이상'에 대한 강조,즉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혹은 적어도 고상하고 비천한 의미와 가치들을 발견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생활방식을 구명하고자 하는 '기록'적 측면에 대한 강조를 거쳐,특정한 의미와 가치들을 연구함으로써 이것을 하나의 등급표를 만(84)드는 방식으로 비교한다기보다는 그들의 변화 양식을 연구하여 사회적 문화적 발전을 하나의 전체로서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법칙들이나 경향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84,85쪽

과거의 시대를 연구하는 데서 가장 포착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특정한 장소와 시간의 특성을 체감하는 것-다시 말해서 특정한 활동들이 하나의 사고방식,생활방식과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한 삶의 조직에 대해 기본 윤곽 정(91)도는 꽤 복원할 수 있다. 심지어 프롬이 '사회적 성격'이라 부르는 것, 혹은 베네딕트가 '문화의 패턴'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복원할 수 있다. 사회적 성격-행동과 태도의 가치체계-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배운다. 그것은 이상인 동시에 양식이기도 하다. 문화의 패턴은 하나의 뚜렷한 조직,하나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내는 이해관계와 활동들의 선택과 설정이며,그에 대한 특수한 가치 부여이다.그러나 이런 것들도 우리가 복원해내면 보통 추상적인 것이 된다.그렇지만 아마도 우리는 또다른 공통요소,그러니까 성격도 패턴도 아닌,말하자면 이러한 것들이 체험된 실제적 경험에 대한 감각까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 실제적 경험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사실 우리는 어떤 시대의 예술에서 그러한 접촉을 가장 많이 의식하고 있다. 그 예술을 그 시대의 외면적인 성격과 대비해보고 개별적인 변종들을 감-91쪽

안하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가 쉽게 자리를 정할 수 없는 중요한 공통의 요소가 있다.나는 이것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생활 방식에 대한 비슷한 분석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삶에 대한 특수한 감각,거의 표현할 필요도 없는 특정한 경험의 공동체를 보며,그것을 통해서 외부의 분석가도 묘사할 수 있는 우리 생활 방식의 특성들이 관통하면서 그들에게 특수하고도 개성 있는 색깔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91쪽

(중략)감정의 구조(the structure of feelings)이다. 그것은 '구조'라는 말이 암시하는 바대로 견고하고 분명하지만, 우리 활동 가운데서 가장 섬세하고 파악하기 힘든 부분에서 작동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감정의 구조는 한 시대의 문화이다. 그것은 전반적인 사회 조직 내의 모든 요소들이 특수하게 살아있는 결과이다. -93쪽

새로이 조직되고 있던 노동자들이나 중산층 개혁가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전혀 새로운 제도 속에서 다른 공동체 이미지, 다른 형식의 관계들을 서서히 창조하고 있었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그만큼 중대하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과 제도를 통한 이러한 활동을 무시하고서는 문화의 창조적 부분도 이해할 수 없다. 산업과 제도는 주요한 예술이나 사상만큼이나 강렬하고 가치있는 인간과 감정의 직접적 표현이기 때문이다.-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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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이 <마음의 사회학>과 그 이전에 발표한, <87년 체제 이후의 스노비즘의 계보학>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적 주장은, 문화가 우리를 동물로 만드는가?라는 물음인 것 같습니다. 이 물음은 또한 단순한 인상 비평이라고 하기보다는, 그가 한국 사회의 문화적 기류를 살펴보며 내린 하나의 진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가 87년 체제 이후의 문화 기류를 분석한 내용을 전부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가 우리를 동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상당히 중요한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는 일정한 동의를 하는 바입니다. 

문화와 비문화를 가르는 경계에는, 문화와 인간이라는 두 연관된 요인이 있습니다. 인간이 단순한 '조에'로서의 삶이 아닌, '비오스'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분명 생각한다는 행위를 통해, 정치를 만들어내는 부분도 있겠으나, 여기서 우리는 '문화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될것입니다. 인간이 문화와 결부되었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일정한 자존감을 부여한 지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문명'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를 인식하고, 사회를 인식하며, 그 속에서 특정한 실천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에서 우리가 문화의 기본 바탕을 찾을 때, 인간은 다양한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가며, 특정한 삶의 형태들을 계속해서 생산했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어떤'문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잘 아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라는 대립쌍이 만들어지면서, 오르테가 이 가제트, 리비스 같은 사람들의 시선을 견지한 이들과 그것에 반하는 문화주의자들이 격론을 벌였죠. 하지만 이런 논쟁 속에서 우리가 그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라는 문제를 넘어, 더 초월적인 사실로 다가온 것은 문화는 우리의 삶에서 이제 '잔여'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우리 삶의 일부로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문화의 무분별한 '감염 효과'로, 달라지고 있는 문화적 기류를 폄하하는 자들도, 그런 폄하에 대응하고자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적 흐름을 승인하는 자들도, 이제 문화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그 유명한  표현, '일상의 방식'이 되어갔던 것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인 것에서 문화적인 것의 침식'. '문화적 우세종'(프레드릭 제임슨)이라는 표현 속에서, 마이크 페더스톤이 감지한 것처럼, '신지식인(부르디외)'들은 '그들만의 문화'에서, '그들(대중)'의 문화로 비평의 지점을 변환, 확대시키기 시작했고, 예술은 더 이상 진공상태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순수적 진공'을 지향하는 예술의 의미는 이제, 그 진공 상태의 외부를 파헤치고, 예술이 다른 기류와 '섞일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문화적 전환'. 그 기류 속에서 이제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문화는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 넘쳐남 속에서 어떤 새로운 개념들을 도출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지금 지식인들은 '타인지향형 비평'속에서, 순간순간의 문화적 장면들을 쉬운 표현, 명랑스러운 수사들로 언급하는 것으로 자족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시적 해석들, 사건적 비평 속에서, 그 해석과 비평을 아우르는 거시적 시선을 만들어 본 김홍중에게 있어, 지금의 이 '문화 과잉'은 90년대 대중문화담론의 과잉을 걱정하던 비판적 대중문화론자들과는 좀 다른 맥락에 위치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는 <마음의 사회학>을 통해 우리가 문화를 통해 (다시)'동물'로 돌아가는 것인가.문화는 우리를 인간이 아닌 동물로 만드는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즉자적으로 내뱉는 감정의 언어들 같은 예들로 다 환원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김홍중의 역사적 시각을 좀 더 인용해보자면, 87년 체제에서 유지되었던 정치적 실체로서의 적대가 사실상 형식적 민주화를 이루면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그가 문화적 스노비즘이라고 칭한 이후의 문화적 경향들이 형성하는 '문화적 적대'의 체제가 쭉 유지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가 분출하는 적대의 실체는 정작 그 안이 텅빈 기호로만 존재하는 시간이 오래 가는 듯 합니다. 

혁명과 해방이 어려운 이 시대에, 이제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마지막 출구는 '문화'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거기서 위안을 얻고 분노를 느낍니다. 사람들이 공분을 표출하고, 빨리 그 공분을 소모하여 공분의 대상을 쉽게 망각하는 것도 '실체'가 아닌 '문화적 가상'으로서 대상을 소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화적 가상'안에서 대중들이 내세우는 가장 최선의 저항은 결국 '도덕적 소비'일 것입니다. 그 안에서 '실천적 분노'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문화적 가상'안에서 실체로서의 적대로 추정되는 자들을 향한 풍자나 패러디는 위안을 주지만, 그 위안의 한계는 결국 진지한 저항적 자세를 필요로 했을 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냉소와 무관심'일 것입니다. 

'문화적 가상'안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적대'에서 우려되는 지점은 '도덕적 소비'를 통한 약자에 대한 가녀린 연민이 사회 내부에 깊숙이 들어있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개인의 구제 차원으로 환원시켜, 개인을 둘러싼 모순을 지속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연동된 문제들을 외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적 적대'는 오늘날 현대 사회를 휘감는 가장 각광받는 논쟁의 시장입니다. 이 시장은 늘 있어 왔지만, 사람들의 불안이 갈수록 증대되는 상황에서,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문화적 적대'속에서, 모든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리처드 세넷이 <뉴 캐피탈리즘>에서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듯이, 상류 지점에 대한 모순을 알지만, 그 모순이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못했을 때, 대중들은 하류 지점에 있는 자들을 향한 '원한'을 강하게 표출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지 못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때, 우리는 '적대감'을 표출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한 보험이라는 점을 하나의 위안거리로 삼게 됩니다. 

그러한 적대감이 가중될 때, 김홍중의 경고처럼, 우리는 문화를 통해 특유의 자존감을 확인했던 인간이 아닌,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의 인정 투쟁에 갇힌 동물이 될 지 모릅니다. 이건 지극히 상식적인 진단 같지만, 앞으로 가중될 현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은 국가로부터 개인의 욕망 억제를 요구받고, 사회가 부과하는 책임을 국가의 지도자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에 저항하려 하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인내로 받아들입니다. 그 안에서 문화의 보수화는 '두 개의 영역 이데올로기'(남성의 영역, 여성의 영역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다시 선호하게 되고, 모든 사안에서 '도덕 정치의 과잉'이 발생합니다. 이 안에서 시민사회도 절대 선의 위치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코뮤니타스를 꿈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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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고진은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사회구호 혹은 정화역할 들에 회의적이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책들을 읽어보면 한편으론 지나치게 학자다운 그러니까 지나치게 낭만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그러더군요. 미국이 자랑하는 기부문화의 대표격인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국이 얼마나 썩어있는 것인지의 반증이 아니냐고..

좋은 글 감사히 잘 읽고 돌아갑니다. 얼그레이효과님.

얼그레이효과 2010-02-13 17:53   좋아요 0 | URL
현대인들님, 반갑습니다. 고진이 그런 이야기를 했군요. 빌게이츠에 대한 지적은 저도 현대인들님생각과 같이 좀 그렇군요. 어떤 식의 사고 방향인지는 알겠는데, 요즘 그런 '입체적인'(?) 생각들에 조금은 회의감을 느끼게 되서.(그래도 그런 사람들의 기부까지 뚱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입장입니다 ㅎ)

지난 번 덧글 달려고 그랬는데, 고대는 더 심각하군요.. 대학원 등록금이 20프로 올랐던데..주위에 '그냥 내면 되지'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아 갑갑한 현실입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비로그인 2010-02-14 11:06   좋아요 0 | URL
아.. 그 글을 보셨군요.. 제가 학부때 이야기였거든요. 지금은 다른 곳 대학원에 있어서 그곳의 대학원 등록금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학교나 그렇듯 문제가 많습니다. 저번에 드렸던 글처럼 학교 게시판을 학교 측에서 걸고 넘어지는 바람에 학생들끼리 회의를 열고 모금운동을 벌여서 독립적인 서버를 구입하고 그랬습니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의 표현에 발목을 잡았던 사건이예요.

고진의 이야기는 저는 시민사회에 대한 것보다 여타의 것에 더 많은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걸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마치 한때 에스페란토어를 세계 공용어로 하자고 했던 자율평론의 운동처럼 조금은 비 현실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빌게이츠의 이야기는 'germany' 라는 책의 한 구절인 듯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미국의 경제 혹은 business 문화의 썩은 단면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글로 기억해요.

사실 얼그레이효과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이 정말 옳지요. 개인의 기부를 #으로 만들 수는 없지요.ㅎㅎ 특히나 그것좋차 여의치 않은 한국의 경우를 보면 더욱 안타까운 사실이예요. 그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고 있다는 의식"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니까요..
새해 복된 일 부디 많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얼그레이님..^^

빵가게재습격 2010-02-1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지젝이 만난 레닌> 순서로 떠오르네요.(<레닌 재장전>이란 제목이 훨씬 와 닿지만요.) 이론을 다루는 분들의 시대적 좌표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인데, 떡국 맛있게 드세요. 인사드리러 왔다 갑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2-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가게님도 맛난 떡국 드세요! 참고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저자 아즈미 히로키의 신간 '자크 데리다 비평서'가 한국에 곧 나온다는데, 기대되네요.(일본인 친구가 그 책이 꽤 재미있었다고 해서 기대중입니다.) 요즘 레닌에 대해 저도 한 번 읽어볼까 준비중인데, 한 번 보고,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어제 제가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저널 <온라인 당비의생각>앞으로 원고 하나가 긴급하게 투고되었습니다. 원고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중앙대는 더이상 학내언론을 탄압하지 말라!" 글쓴이는 중앙대 학생은 아닌, 자유기고가였는데, 원고의 내용을 통해, 학내언론에 대해 학교본부측이 저지르는 악행을 알 수 있었고, 이글루스를 비롯해, 프레시안 등 이 사안 관련 포스트와 기사들이 꽤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http://jamilaswan.egloos.com/3546579 

-> 미운오리의 블로그 '중앙대 교지 예산 전면 삭감'에 덧붙임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page=&pg=2&Section=&article_num=10100202232415#PositionOpinion 

-> 중앙대 학생이 두산 직원입니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답니다.  

중앙대에서 계속 발간되던 교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교지에 학교 총장을 비판하는 글이 수록되었다, 이를 안 학교본부측 언론매체본부장 교수가 교지 전량 회수를 시도했으며, 관계자 학생들은 반발했다. 문제는 더 커져, 학생들의 동의 없이, 학교측에서 교지 만드는 관련 예산을 전면 삭감했다. 학생들은 여기에 학교측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 대화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학생 측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시키고, 대화를 요구했지만, 박범훈 총장은 '촌스럽게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망언을 해 빈축을 사고 있다.  

학내 언론 탄압을 비롯해, 학교 측이 학생들의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을 기존의 방식처럼, 2박 3일 형태가 아닌, 1일 형태로 마음대로 정한 것도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듯 합니다.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능력평가라고 하는군요. 

 중앙대학생들이 만드는 매체들은 이런 학내 언론에 관심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의 평가에 의하면 상당히 훌륭한 비판적인 시선을 늘 견지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힘을 보태고 싶군요. 

덧붙임) 연세대도 워낙 학생들이 무관심하게 대응하여, 이슈가 크게 되지 못했지만, '연세대학원신문'을 놓고 시끄러운 일이 과거에 있었습니다. 연세대학원 총학생회 측에서 연세대학원신문의 비판적 논조에 문제를 삼기 시작했고, (그것도 총학생회가!) 연세대학원신문의 이런 비판적 논조가 기업에 보일 학교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여, 연세대학원신문사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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