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에서 당대비평 신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언급해줬습니다.  

원문: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0912/wk20091216140633105450.htm 

[작가, 왜 사회에 참여하나] '지금 내리실…' 등 세 권의 책 2000년대 젊은 지식인의 고민 드러내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리얼리스트>.

최근 잇따라 출간된 세 권의 책은 2000년대 젊은 지식인들의 고민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지닌 지식인들이 모두 용산참사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는 용산 참사에 관한 작가들의 헌정집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는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굵직한 인물들의 죽음에 가려진 용산 참사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반년간 문예지 <리얼리스트>의 특집 역시 '용산, 냉동고에 갇힌 민주주의'로 용산 참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문화예술인들이 입을 모아 용산 참사를 말하는 이유는 뭘까? 이 새로운 시각이 우리 사회에 던진 변화는 무엇일까?

2009년 한국사회 키워드는 용산

젊은 지식인들이 다시 용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편집한 김수한 편집주간은 "책의 출간 시점이 12월임을 감안해서 올 한해 정치 풍경을 조망하는 방향으로 기획했다. 올 초부터 용산참사,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한국사회를 좌우한 사건 중 하나가 '죽음'이라는 데 편집위원 모두 동의했다. 단순한 애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일어날 정치 징후를 보여주는 집약적 사건들이다"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는 올 한해 한국사회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지만, 미디어와 대중의 뇌리에서 망각되고 있다는 진단에서 책을 기획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리얼리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일한 책임편집인은 기획의도에 대해 "용산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동시에 문학이 놓여야 할 자리에 대한 성찰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당한 삶과 언어가 파괴되는 현실 앞에 작가들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한 노력에 나서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를 엮은 작가들의 시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책의 기획을 맡았던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선언 이후 활동 방향을 논의했는데 용산 참사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상처라는 판단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젊은 작가 200여 명이 모인 '작가선언 6.9'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관한 비평까지 다양한 정치 담론이 생성되다 7월부터 용산 참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용산 참사역입니다

지난 8일 저녁 용산 참사 현장에는 30여명의 문인을 포함해 100여 명의 시민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작가선언 6.9'가 엮은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의 헌정식에 모인 이들이다. 소설가 박상의 사회로 염무웅 평론가가 대표 인사를 전했고, 윤예영 시인, 최창근 극작가, 김용민 시사만화가, 노순택 사진작가, 김종도 화가가 유가족들에게 책을 헌정했다.

'작가선언 6.9'는 지난 해 촛불시위부터 올해 용산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일련의 사회변화를 겪으며 올해 5월 27일 젊은 문인 30여명이 첫 모임을 가지면서 결성됐다. 총 192명의 문인이 작성한 한 줄 선언을 모아 6월 9일 선언문 '6.9 작가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모아 <이것은 사람의 말>을 출간한 바 있다.

다양한 정치담론을 생성하던 '작가선언 6.9'는 7월부터 용산 참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용산과 관련한 인터넷 신문 기고,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고, 젊은 작가들이 올해 발표했던 칼럼, 시, 소설, 비평 중 용산 참사와 관련된 글을 모아 헌정집을 묶었다.

424쪽의 문집에는 '작가선언 6.9' 회원들이 쓴 시와 에세이가 담겨 있다. 1,2부에는 용산 참사와 관련된 시 31편과 시인들의 에세이를 실었다. 3,4부에는 인터넷 신문 등 매체를 통해 발표한 문인들의 칼럼을 엮었고, 5부에는 이윤엽 화가, 김종도 화가, 이동수 만화가, 노순택 사진가의 작품과 가수 조약골의 에세이를 담았다.

'작가선언 6.9'가 활동하는 방식은 이전의 지식인 단체와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구심점 없이 200명에 가까운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인데, 모든 활동은 자율적인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 예를 들어 6월 9일 발표한 공동 선언문의 경우 대표자가 작성하면 온라인 공간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이를 보완해 다시 한 줄씩 고쳐가며 최종본을 완성했다.

70년대 문인들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세상이 달라진 것만큼 문인들의 사회적 활동도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산발적이고 각자 자유롭게 활동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작가들의 운동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리얼리스트 100

<리얼리스트>는 문학단체 '리얼리스트 100'에서 펴내는 반년간 문학 전문지다. '리얼리스트 100'은 2007년 9월 리얼리즘 문학을 고민하는 작가들을 주축으로 탄생한 문인단체. 100여명 안팎의 문인들은 온라인(www.realist.kr)을 통한 작품 발표와 함께 '대운하 저지를 위한 작가행동',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연대활동',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한 작가행동' 등 대외활동을 병행해 왔다.

'민중문학'의 맥을 잇고 있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작가 면면을 살펴보면 시인 백무산, 김해화, 정우영, 김해자, 박일환, 송경동, 문동만, 황규관, 임성용, 이민호와 소설가 김성동, 이시백, 안재성, 홍명진, 이인휘, 이재웅, 평론가 박수연, 고명철 등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박일환 시인(<리얼리스트> 책임편집인)은 "현실문제에 고투하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도는 일시적 흐름, 현상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창간 배경을 설명했다.

이민호 시인(<리얼리스트> 편집위원)은 "특별한 작가를 지향하지 않고, 작품 선정에 있어서 객관성을 기했다. 지난 시기 노동문학과 민중 문학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리얼리즘의 정신을 더 펼쳐보자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 참사역입니다>가 젊은 문인들의 사회참여를 담아낸 책이라면, 문예지 <리얼리스트>는 사회참여와 창작을 병행했던 기존 작가들의 문학적 결실을 선보이는 장인 셈이다. 작가들이 회비를 걷어 잡지의 제작비와 원고료를 충당했다는 점도 기존 문예지와 차별화된 점이다.

창간호 특집 주제는 용산 참사. 백무산 시인의 시 '민주공화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자행한 학살 만행을 보라!'와 홍명진 소설가의 단편 '2009, 서울 피에타', 김순천 르포작가의 작품 '용산, 격렬한 혼돈'과 송경동 시인의 시론 '용산이라는 질문', 임동근 연구원의 논단 '개인의 욕망으로 굴러가는 주택정책', 박김형준 작가의 사진, 김대중 작가의 만화 '폐허 위에'를 통해 용산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사회비평지 <당대비평>이 정간되며 발행된 단행본 형식의 기획 시리즈 '당비의 생각' 3권의 제목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제목처럼 책은 두 전직 대통령과 용산 참사를 대조해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기획주간인 서동진 교수(계원디자인예술대)는 서문을 통해 "어떤 죽음이 대대적으로 애도될 때, 그것은 단지 죽은 자의 사회적 지위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애도하는 자의 정치적 욕망이 투영되어 있음을 가리킬 것이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적' 죽음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은 '역사적 죽음'이며 용산 참사는 '정치 자체의 죽음'이라는 것. 책은 죽음의 의미의 위계화와 차별화는 추모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만이 아니라 죽음을 순응시키며 갈등을 잠재우는 통치의 전략 혹은 방식이라고 말한다.

'애도에 대한 질문', '기억에 대한 성찰'로 나뉜 책은 10편의 비평을 실었다. 필진들의 면면을 보면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를 비롯해 김성태 문화평론가, 송경동 시인, 박동천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 등 사회각계각층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식인들이다.

조동환, 조해준, 이경수 작가의 구술드로잉과 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흥구 사진작가, 조습 사진 작가의 작품도 함께 실었다. 지식인의 글과 문화예술인들의 작품이 결합된 형태의 무크지인 셈.

김수한 편집주간은 "다양한 문화예술인, 지식인이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이번 비평집을 묶으며 함께 작업했다. 드로잉과 사진 등 이미지들은 주제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2009년 지식인, 어떻게 변하고 있나?

용산을 구심점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참여는 촛불시위, 잇따른 사회지도자들의 죽음, 미디어법 처리 등 한국사회 일련의 정치 지형 변화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작가선언 6.9',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처럼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작가선언 6.9'에 참여한 이영광 시인은 "수평적 의사공동체로 오랜 논의를 거쳐 활동 방향을 결정했다. 작가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차이를 딛고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때로 멀어 보이고 낯설어 보였던 사람들이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활동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사회를 보는 감각도 이전과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심보선 시인은 "작가와 시민의 정체성이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작가들이 현실과 정치문제에 접속하는 것이 곧 문제를 해결했다는 건 아니다. '문학과 정치'는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지만, 우리가 변해가면서 그 문제를 직시하고 부딪치고 계속 젊은 작가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광 시인 역시 "그 동안 작가 개인의 문학적 추구에만 매몰된 점이 많았다는 자각과 반성이 있었다. 작가가 특별히 힘 있는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몸으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작가들의 목소리가 퍼져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진은영 시인은 "(활동을 통해) 미약하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서도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고, 그런 작품에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젊은 지식인의 감성이 새로운 담론으로 발전할지,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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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684162 

이 주소로 보시면 방송보실 수 있습니다. 

단독 리뷰는 아니고, 중간에 짧게 나옵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란 곳에서도 당비의생각03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을 책으로 꼽아줬군요. 

http://www.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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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09-12-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에스비에스가 무슨일로 ㅡ.ㅡ
 

 한보희 선생이 영화 <국가대표>비평을 <온라인 당비의생각>에 연재한다. 분량이 많아서, 글을 나누었는데, 첫 파트가 올라왔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서 공유하고자 링크를 건다. 한보희 선생은 현재 《당대비평》기획위원회의 기획위원이자 what's up총서 시리즈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시리즈 중 하나인 슬라보예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를 번역했으며, 또 한 권을 열심히 번역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http://dangbi.tistory.com/30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당비의생각03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과 관련된 작은 이야기모임을 가지려 한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온라인 당비의생각>에  소개될 예정이다. 

패널은 한윤형(<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  /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저자) / 송인혁 (전 연세대학원신문사 편집장) / 한보희 (<당대비평> 기획위원) 예정이다. 

그리고 나와 웅진씽크빅 인문교양담당 임프린트 산책자 분들이 수고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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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주소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92842.html 

젊은 연구자들 눈으로 본 죽음의 정치학
노무현 추모열기서 엿본 ‘대안 없는 애도’
민주주의 확장 이어지지 못한 원인 짚어 

 어째서 추기경과 늙은 소를 향해 쏟아졌던 ‘애도의 눈물’이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외면했을까?

100만 이상이 합류한 김수환 추기경 장례 추모행렬과 역시 100만을 넘겼던 독립영화 <워낭소리> 대박 현상을 “도덕적·인권적 감수성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의 징후”로 읽은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정용택 연구원은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행렬엔 500여만이 공권력과의 충돌을 무릅쓰고 집결했다. 그 사건들 앞뒤로 화물연대 박종태씨, 7명의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목숨을 버렸지만 용산처럼 그들은 잊혀졌다.

2009년의 죽음들에 관한 이 뚜렷한 사회적 기억의 비대칭성. 진보적 젊은 두뇌 집단인 당대비평 기획위원회가 엮어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바로 그 현상과 배후를 여러 필자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질문한다. 상당한 세월을 지나서인지 해석과 질문들은 정제되고 순도가 높다.

‘종교가 되어버린 광장의 애도’라는 글에서 기억의 비대칭을 낳은 “시민사회의 문화적 동학”에 주목한 정용택 연구원은 “마땅히 애도돼야 했던” 용산참사와 “너무 과도하게 애도된” 추기경과 늙은 소와 노 전대통령 현상 사이에 모종의 길항작용이 존재한 것으로 본다. 우선 그는 용산에 대해 대중은 애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도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애도란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조국, 자유, 어떤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이런 반응은 대개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의욕의 소멸로 집약되는데 심한 애도의 슬픔은 채워질 수 없는 깊은 공허와 무기력을 수반한다.

이런 애도가 제대로 수행되려면 애도의 주체가 자신이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뉴타운’, 그리고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선진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이라는 성공신화가 허구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애착의 대상을 상실했음에도 그 신화에 애착을 지녔던 대중은 거기에 집중된 리비도를 철회하지 못하고 부유했다.

권력의 폭압 속에 대상의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대중은 용산을 외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상의 현존에 대한 불신 또한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들의 귓전엔 용산을 기억하라는 외침이 계속 맴돈다. 그때 추기경이 선종했고 <워낭소리>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대중은 정체 모를 상실감을 거기에 전이시켜 알 수 없는 대상의 상실에 대한 애도를 쏟아부었다.

‘알 수 없다’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하나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대로 된 애도가 불가능한 이런 상태는 우울증을 앓는 주체의 행동과 유사하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실을 애도하는 우울증 환자의 애도는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애도는 자아를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우울증은 더욱 심화된다. 용산참사로 인한 상실감을 추기경이나 <워낭소리>의 늙은 소에 대한 애도 행위로 극복하려던 대중의 빗나간 애도는 필연적으로 상실감과 슬픔을 더 키웠다. 그 결과 뒤이은 노 전 대통령 타계 때 대중은 더욱 폭발적인 애도를 표시했다. 정 연구원은 사회학자 뒤르켐의 종교적 집합의례 개념을 빌려, 노무현이라는 기표가 그의 자살을 통해 초월적 기의로 기능하면서 성화(聖化)됐다고 본다. 그것은 ‘탈정치화된 정치인’, ‘권력의 술수에 따른 정치적 희생양’, ‘바보 노무현’ 이미지로 재현됐다.

성화된 노무현은 물론 실재의 노무현이 아니었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양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평택 대추리 진압, 재임 기간 23명의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노동자 탄압 등 ‘신자유주의’로 포괄할 수 있는 정책들을 노무현·참여정부의 한계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만 돌릴 수 있겠느냐고 정 연구원은 반문한다.

그럼에도 대중은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자 ‘원래 없던’ 성화된·이데올로기화한 그의 자질을 실재한 양 착각하고 그것을 상실한 것처럼 애도함으로써 결핍을 상실로 기만적으로 전이하는 우울증적 주체와 유사한 오류를 범했다.

이 모든 현상의 근원에는 이명박이 자리잡고 있지만, 노무현의 실재가 이명박과 얼마나 다르냐고 정 연구원은 묻는다. “우리는 대중들이 갖고 있는 노무현과 이명박의 이 기묘한 대칭구도 자체를 문제삼아야 한다. 이상화된 노무현의 이미지를 깨버렸을 때, 드러나는 실재의 노무현은 사실 이명박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을. 나아가 지금 대중들은 노무현을 상실해서 우울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일로 인해 우울하기 때문에 노무현의 죽음을 상실로 인지하고 그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세계 내의 기호, 곧 노무현이라고 하는 상상의 이미지를 삼킨 것임을 말해야 한다. 우울증적 대중들은 자신들이 단 한 번도 소유해본 적이 없는 ‘노무현’ 또는 그것이 역설적으로 지시하는 ‘민주주의’의 상실을 연기(演技)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민주주의의 회복을 끊임없이 연기(延期)하고 있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애도의 집합의례를 수행하면서 상상의 도덕공동체를 만들었고, 반대자들과 대립구도를 이루면서 서로 배제하며 포함하는 동치(同値)관계를 이루었다. 그 결과 피아의 이분법 속에 제3의 정치적 삶의 자리는 허용되지 않고 대안적 시선은 존재할 여지가 없어졌다. 그렇게 해서 용산과 화물연대, 쌍용자동차의 희생자들은 잊혀졌다.

결국 대중이 잃어버린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민주주의이며 민주공화국의 이상이다. 이를 향한 대중의 우울증적 충동은 애도나 촛불집회와 같은 집합의례 형식으로만 살아남아 단지 광장에서 대중들이 모였을 때만 현존할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현실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

“모든 죽음의 수행자, 이 시대의 지배적 구조인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저항”을 촉구한 시인 송경동은 가장 단호하게 그런 입장을 견지한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가 자유주의를 적대시한다면, 파시스트들이 자유주의자로 행세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무의식적 보수성’ 극복과 자유주의적 법치 확립을 우선해야 한다고 한 박동천 전북대 교수는 노무현의 공도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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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12111733465&code=900308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당대비평 기획위원회 | 산책자 

  왜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의 죽음에는 눈물을 흘리지만, 용산의 죽음에는 무심한가. 무크지 ‘당비의 생각’ 3호는 2009년에 있었던 몇 건의 죽음에 관한 사회적 기억을 다뤘다. 만인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동일하지 않다.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그 후의 격랑이 그 몇 달 전에 온 몸에 불이 붙어 사라져간 생명들에 대한 사회적 망각을 촉진했던 사실이 그를 입증한다. 1년이 다 되도록 고인들이 천도조차 하지 못하고 냉동고에 누워 있는 현실만 끈질기게 그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용산의 죽음을 외면하는 핵심에 ‘사유재산’이 있다고 한다. “단지 이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도, 자유도, 인간의 권리도 침해당할 수 있지만 결코 재산에 대한 질서는 흐트러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재산에 대한 질서”는 곧 “자본주의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재산에 ‘해코지’했다고 비난받는 용산의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도 자신의 재산이다. 본질적인 차이는 앞의 재산이 곧 개발이라면, 뒤의 재산은 삶의 터전 그 자체라는 점이다. 고로 “용산은 삶에 대한 요구가 개발에 대한 요구를 결코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송경동 시인은 “최고의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어 보고도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그(노무현)의 죽음에도 이 시대 보편적인 산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며 “화살이 단지 또 하나의 관절로 기능할 이명박 개인에게로 쏠릴 뿐, 단 한 번도 이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구조들에 대한 천착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한 영웅의 죽음에 매달리려 하면 노무현,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많은 이가 학살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망각될 수밖에 없다.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중과 대중운동에 필요한 것은 구원자가 아닌,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자기 조직화”라고 했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200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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