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라는 테두리가 덧입혀진 상태에서, 정치가 이야기되는 자리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신실하다는 지표가 둘러진 가족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도, '침묵'이나 '정치 이야기의 자제'로 내 소신을 드러내지 않을 때의 그 불편함은, 29년 째 교회에 다니는 나에겐 늘 족쇄다.
그러다, 매주 일요일에 예배를 볼 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기독교인들에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설교를 중단하게끔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많다.
세상의 때를 지우라면서, 어찌나 그 입에서 세상의 때가 가장 많은 인물을 옹호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인물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그나마 행복하지 않냐고 과신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 그 말 하나,하나에 아멘하고 화답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그 목사의 손을 잡아보고, 인사나누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신도들을 빗겨나가, 투덜투덜거리며 휭하니 내 갈 길을 가는 것. 그것만이 아직 내가 그 목사에게 대응하는 소심한 방식이다.
며칠 전, 어머니랑 밥을 먹다가, 대학원과 사이가 안 좋고, 비용 문제로 나름의 투쟁을 하고 있다 밝히니, '그건 마귀짓이니 얼른 중단해라'고 말할 때, 어머님에게 미안하게도 그 목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식당 속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내 앞에 놓여진 고기를 정성스레 잘라주시는 직원 분 앞에서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하고 고함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핏기 없는 얼굴을 보고 이내 마음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나름의 평화주의자다. 당신은 '비판'이란 말이 주는 위험때문에, 내가 공부하는 이유를 '사회 비판'이 아닌, '사회 분석'으로 말하라고 늘 교육시키신다.)
고기가 타고, 구운 마늘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매운 고추만 찾는다.